1. 국력은 북쪽에 레반트 지역에 걸쳐있어 그곳으로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남유다 왕국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였다. 물론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아래 논문에서와 같이 토지수탈로 상층부만 배가 부른 사회체제였다.
2. 특히 북왕국의 아합은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혼인하고, 딸 아달리야를 유다 왕비로 시집보내는 등 페니키아, 아람, 유다를 연합한 맹주가 되어 신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물리치기도 했다.
3. 하지만 북이스라엘이 먼저 신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고, 왕족과 귀족들은 살해당하거나 아시리아 본국으로 끌려갔다. 이에 반해 유다 왕국은 히스기야를 이은 므낫세의 친-아시리아 정책을 펼쳐서 아시리아로부터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4. 초기에는 10부족이 돌아가며 왕위찬탈행위가 반복되던 북이스라엘의 정정(政廷)이 불안했으나, 유다 1부족의 단일체제에 의한 왕위세습과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보유한 남유다가 정치적으로 북이스라엘 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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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세기(BC800~701) Middle East 세계, 그리고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관점
BC 8세기(BC800~701) Middle East 세계 그리고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관점 작성자 : 제임스강 Y14228 더보기 목록 [1] 들어 가면서 [2] 앗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배경 [3] 선지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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