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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사태, 제대로 보아야 한다. 1993년 1월글
한호석(뉴욕거주)
아프리카에 스며있는 피어린 역사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머리 속에 무엇을 떠올리는가. 아마 어린애들은 타잔 얘기에 나오는 우거진 숲과 맹수들을 생각할테고, 어른들은 슈바이처나 쿤타 킨테에 얽힌 얘기, 그리고 요즈음에는 굶주림과 내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버림받은 땅을 눈앞에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만일 그 대륙에 스며있는 식민지 역사와 뼈저린 아픔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모른다. 아프리카는 유럽 제국주의 세력에게 짓밟혔던 식민지 사슬을 끊고 해방과 독립을 이루어낸 피어린 싸움역사에서 다시 태어난 대륙이다. 이 지구 위에 자본주의 길로 일찌감치 들어선 몇몇 나라들을 빼놓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세 대륙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한결같이 식민지 역사와 그 식민주의에 맞서 싸운 피어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까지 식민주의 세력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던 땅이다. 그래서 지금 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은 이 역사에 잇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이 역사는 오늘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가 지금 소말리아 사태를 알아보려고 하면서 먼저 아 프리카에 스민 그 역사를 짧게 나마 되짚어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1884년, 러시아, 이태리가 조선정부와 이른바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고, 개화파 세력이 갑신정변을 일으키던 바로 그해, 독일 베를린에서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유럽 열네 나라가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이른바 '주둔과 통치 원칙'을 따라서 제각기 침략. 강점하고 있던 아프리카 땅을 제 나라 식민지로 삼아버렸다.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아프리카 대륙을 여러 식민지들로 갈갈이 찢어놓을 때, 그들은 역사배경, 인종구분, 지리조건 따위는 아예 눈에 두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프리카 지도를 볼 때마다 국경선이 똑바른 선으로 그어져있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날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지도 위에 자를 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국경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콩고족은 벨기에가 강점했던 땅에 살던 사람들은 자이로, 프랑스가 강점했던 땅에 살던 사람 들은 콩고로, 포르투갈이 강점했던 땅에 살던 사람들은 앙골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같은 종족이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지는가 하면,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한 나라로 묶여지면서 종족들 사이에 다툼도 생겼다.
1950년대 끝무렵부터 1960년대 처음무렵까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영국, 프랑스 같은 옛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가고 독립국가들이섰는데, 그 나라들에서는 자연히 오랫동안 반제투쟁과 반식민주의투쟁을 해온 정치세력들이 정권을 세우게 되었다. 이 정권들은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으로 나타난 미국은 멀리했고, 그 대신 소련이나 중국같은 사회주의 진영과 손을 잡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미국은 전략자원이 많이 묻혀있는 땅이나, 대서양이나 인도양 바닷길을 지키는 길목에 있는 나라들을 제 손에 거머쥐려는 검은 속셈에서 친미세력들에게 무기를 넘겨주어 여기저기서 반란군들을 키워냈다. 1960년대 뒤 부터 소련이 망하기까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내전들은 겉으로 보면 마치 종족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으로 보이지만, 더 본질적인 원인은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 그리고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 세력과 서구 제국주의 세력 사이에 날카롭게 맞선 모순이 무력대결로 터져나오는데 있었다.
소말리아가 걸어온 길
소말리아 역사도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처럼 1880년대부터 1960년까지는 어두운 식민지 시대다. 유럽사람들이 '아프리카 뿔'이라고 부른 소말리아 땅에는 예로부터 회교를 믿는 부족이 살고있었으나, 1880년대부터 1920년대에 걸쳐 유럽 제국주의 세력은 그 땅과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홍해로 들어서는 비좁은 바다 건너 예맨과 마주보이는 지부티는 프랑스가. 아덴만 지역 너른 땅은 영국이, 그 밑으로 인도양에 닿아있는 너른 땅은 이태리가. 서북부 에티오피아 국경에 있는 사막지대 오가덴은 에티오피아가 제각기 나누어 삼킨 것이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라는 한 세력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고 식민지로 되었는 데, 소말리아는 네 나라에게 나뉘어 점령당한 것이다.
1958년 에티오피아가 점령하고 있던 오가덴 지방 사람들은 '서소말리아 해방전선(WSLF)'을 만들었고, 이들은 1963년부터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소말리아는 당연히 이들을 뒷받침해 주었다.
1960년 우리나라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나던 해 시월에, 영국 식민지 지역과 이탈리아 식민지 지역이 독립하면서 서로 합쳐져서 통일국가인 소말리아 공화국을 세웠다. 북쪽 지부티 지역은 1977 년에 가서야 국민투표를 하여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소말리아 공화국에 들어왔다.
1969년 10월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군부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다. 바레정권은 그 무렵 옛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1976년 7월 바레정권은 소말리아 사회주의 인민혁명당(SRSP)을 만들고 장기집권체제에 들어갔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셀라시에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반미 자주노선을 취한 기투스 정권이 세워지면서 내전상태에 빠진 것을 틈타 소말리아 는 1977년 옛날 식민지시대에 빼앗긴 땅을 되찾는다는 구실을 내세워 오가덴지방에 쳐들어갔다. 이로써 다음 해까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소말리아군은 옛 소련과 쿠바로부터 뒷받침을 받은 에티오피아 혁명군에게 도리어 밀려났다. 옛 소련이 에티오피아를 도와주는 것에 불만을 품은 바레정권은 톨아져서 옛 소련과 손을 끊고 미국에 군사기지를 넘겨주는 친미노선으로 기울었다. 미국도 에티오피아에 반미자주 정권이 들어선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웃나라 소말리아에 엄청나게 많은 군사지원을 쏟아부으면서 반미자주노선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지금 소말리아 내전에서 여러 세력들이 쓰는 무기는 이 무렵 미국과 옛 소련이 준 것들이다. 또한 그 무렵 에티오피아군이 오가 지방 소말리 부족을 더욱 억누르기 시작하자 그들은 국경을 넘어 소말리아로 밀려와 난민이 되었다.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유엔과 미국
1990년 8월 소말리아 의회연합(USC), 소말리아 애국운동(SPM)은 오랫동안 집권해온 바레정권 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서로 힘을 합했다. 1991년 1 월 반군세력인 소말리아 의회연합은 여섯달 동안 싸운 끝에 대통령궁을 점령하면서 바레정권을 무너뜨렸고, 그 뒤로 다시 모하메드 파리 아이디드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알리마디 임시대통령을 쫓아내자 두 세력 사이에 대립이 날카로와지더니 그해 9월부터 다시 내전상태에 들어갔다.
이 내전을 본 유엔이 마침내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유엔은 정전사찰규정을 내놓았으나, 이 두 세력 사이에 밀고 당기던 협상은 깨졌다. 하는 수 없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4월에 들어 소말리아에 정전감시단 50명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8월 아이디드를 중심으로한 군부세력은 유엔과 협상하여 유엔군 5백명을 받기로 합의했고, 유엔은 파키스탄 용병으로 꾸린 유엔군을 보냈다.
유엔군이 들어간 뒤에 무력개입을 노리고 있던 미국은 지난 11월 25일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소말리아 군부세력은 곧 미군을 환영한다는 뜻을 발표했다. 제 나라땅에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는 짓을 저지르는 것은 어느 나라 군부세력이나 다 마찬가지인 듯하다.
12월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나라들이 만장일치로 파병을 결의하자마자, 미해병 1천8백
명은 기다렸다는듯이 소말리아 앞바다에 들어갔다. 미국은 뒤이어 곧 병력 2만 8천명을 보낼 것이다. 유 엔 결의안은 소말리아 사태가 더욱 나빠지면 미군을 최고 6만여명까지 보낼 수 있도록 무력으로 개입하는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유엔은 지난해 걸프전 참전과 올가을 캄보디아파병에 이어 세번째로 미국이 주도 하는 이른바 '다국적군'을 편성했다.
아프리카는 왜 굶주리고 있는가
오늘 아프리카 대륙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5천만명이나 된다. 더우기 올해는 그 대륙 남녘에 20세기에 가장 심했다는 가뭄이 들어 1천8백만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물어보아야 한다. 아프리카는 왜 식량을 스스로 일구어 먹지 못하는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60년대 처음 무렵 여러나라들이 옛 식민지 상태에서 풀려 새 나라를 세우던 때에는 식량을 자급자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고 말았는가.
거짓말 잘하는 미국언론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아프리카에는 무서운 가뭄이 해마다 밀어닥쳐서 굶어 죽게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까닭은 가뭄이라는 자연재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문제'에 있다. 그럼 정치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이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란세력에게 군사지원을 쏟아부어놓아 끝없는 내전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며, 미국이 그 대륙에 친미정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쏟아부은 경제원조가 농업정책을 완전히 짓뭉개 버렸기 때문이다. 농업정책이 뭉개진 나라에서 농업기술과 농업생산력이 발전할 리 없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금만 가물어도 다른 대륙에서는 쉽사리 넘길 수 있는데도 그 땅에서는 모두 굶어 죽어야 할 판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인구성장률은 해마다 3.1 퍼센트인데, 식량생산량은 1960년 뒤로는 차츰 떨어져서 해마다 평균 2 퍼센트 밖에 늘어나지 아니한다. 그래서 얼마전 유엔 사무총장 갈리는 서방진영에 8억 3천5백만달러나 되는 아프리카 비상원조를 달라고 호소했다.
미국이 소말리아에서 노리는 것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2백만 명 (전체 인구 가운데 3분의 1)에게 구호물자가 제대로 나뉘어지는지를 감시하겠다는 구실을 내걸고 무력을 들이밀었지만 진짜 속셈은 다른 데 있다. 미국은 굶주려 죽어가는 소말리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인도주의 깃발을 든 해병대를 들이민 것 인양 날마다 크게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맺음말부터 하자면,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굶주림이라는 문제라면 어디 소말리아 뿐인가. 바로 옆에 있는 수단 같은 나라만 보아도 소말리아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런 나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미국은 벌써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다 제쳐놓고 오직 한 나라 소말리아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만을 신문, 텔레비 전에서 날마다 마치 제 나라가 당한 일처럼 떠들어대 왔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도 소말리아를 특별히 더 불쌍히 여겨서 그랬을까.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소말리아가 가장 심각하게 굶주림을 겪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미국은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낼 그럴듯한 구실을 찾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미국언론들이 입을 모아 소말리아 사람들이 다 굶어 죽는다고 크게 떠들어대면서 여론을 한참 불러일으키더니, 아니나 다를까 미국정부는 결국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땅에 식량이 아니라 먼저 총과 대포를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레나다에 쳐들어갔을 때도, 빠나마에 쳐들어갔을 때도, 이라크에 쳐들어갔을 때도 미국은 그 무슨 정의인도주의니 평화니 지역안정이니 하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우면서 사람들을 속였다.
소말리아 파병문제에 대해서 미국정부는 요즈음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소말리아는 내전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미군 같이 강한 무력이 들어가 조용하게 만들어야 구호활동도 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전을 치루고 있는 나라가 어디 소말리아 뿐인가. 올해 소말리아에서 죽은 사람이 30만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정작 내전으로 죽은 사람이 도대체 몇 사람이나 된다고 그렇게 엄청난 무력을 내전 불길을 끄겠다고 들이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내전이 아니라 굶주림이다.
내전으로 말하자면 옛 유고슬라비아가 소말리아보다 몇 배나 더 심한 상태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해 부
터 그렇게도 말들이 오가던 옛 유고슬라비아땅 내전은 왜 모른체 하고 소말리아 내전만 붙들고 늘어지는 가를 우리는 곰곰히 따져보아야 한다.
사실을 밝히자면, 바로 지난 12월 1일 소말리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사우디 아라비아 지다에서 이슬람국가기구(OIC) 외무장관회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사우디 국왕 파드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내전으로 모두 죽게 된 회교도들에게 미국과 서방나라들이 무기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천둥소리 같은 손뼉치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 나라들은 이슬람 진영에서 그렇게 애원하는데도 보스니아에는 대포 한 문 보내지 않더니 소말리아에는 뭣 때문에 그리 서둘러 병력까지 들이미는 걸까. 거기에는 다 까닭이 있다.
미국과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은 보스니아 회교도들이 내전에서 사그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럽에서 회교나라가 생기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아니한다. 더우기 미국이 보스니아는 모른체 하고 소말리아 문제에만 눈독을 들여온 까닭은 보스니아는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는 나라지만, 소말리아는 인도양과 홍해를 잇는 아덴만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로서 중동에서 나오는 원유를 실어 나르는 바닷길목을 지키기에 아주 좋은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에 무너진 바레정권은 13년 동안이나 미국이 중동지배정책을 펴는데 후방기지가 되어 모든 것을 갖다바친 친미정권이었는데, 만일 내전이 끝나면서 반미 자주노선을 든 새로운 세력이 정권을 잡는 날이면 13년 쌓아놓은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기 때문에, 미국은 이번에 아예 확실하게 친미정권을 심어 놓자는 속셈이다.
소말리아에 들어간 미국은 세계 사람들을 속이지 말고 그 빛바랜 인도주의 깃발 일랑 이제 그만 내려야 한다. 그리고 좀 솔직하게 제 꿍꿍이속을 드러내는 침략 깃발을 들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그 나라에서 독점하려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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