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장 1-8절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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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세 종류의 곤충에 비유합니다. 첫째는 거미같은 사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약한 사람을 이용합니다.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개미 같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남에게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꿀벌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남에게 유익을 줍니다.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드로라’의 이름이 ‘꿀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드보라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최초의 여자 사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남자 사사보다 크게 사용하십니다. 성경의 분량만 보더라도 삼갈은 단 한 구절로 소개했지만, 드보라는 4장 5장을 통틀어 55절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드보라를 부른 이유는 4장 1절입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이스라엘은 고질병이 있습니다. 평안하면 죄를 짓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방법은 주변의 나라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때 이스라엘을 학대한 나라는 가나안의 하솔왕 야빈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20년 동안 학대합니다. 학대는 히브리 말로 ‘라하츠’라는 단어인데 직역하면 ‘비틀어 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려줍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직접 벌을 내리시지 않고 꼭 나라와 사람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무엘 하 7장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 돌이키게 하시려고 사람 막대기를 쓰십니다. 매 중에 가장 아픈 매는, 사람 막대기입니다. 길을 가다 넘어지면 두 종류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재수 없이 넘어졌다라고 불평하는 사람, 두 번째는 이제부턴 조심해야겠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낸 사람 막대기를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내가 욕심이 많았구나,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 살았구나. 라는 배움을 가진다면 그 막대기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고질병을 치료하시고자 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주부를 사사로 부르셨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하고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첫째 나를 동물이나 짐승으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감사합니다. 둘째는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감사합니다. 세 번째로 그보다 더욱 감사한 것은 여인으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같이 여인들을 천시하는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보라가 여자라는 점 외에도 다른 사사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사들은 직접 자기 자신이 칼을 빼들고 적과 싸웠습니다. 최초의 사사 옷니엘도 직접 싸웠고, 왼손잡이 사사 에훗도 직접 칼을 들었습니다. 세 번째 사사 삼갈도 소치는 막대기로 600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직접 나가서 싸울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드보라는 말씀으로 잠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일깨웁니다. 그 결과는 대승리였습니다. 드보라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의 목회 원리를 봅니다. 목회자는 힘을 주어야지 돈을 주어선 안 됩니다. 교인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기 돈을 빌려주거나 학생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직접 영어 수학을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영혼을 깨울 뿐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나가서 싸울 때 스스로 일어섭니다. 말씀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드보라는 바락이라는 장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면서 군사 만 명을 데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고 합니다. 7절을 봅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바락 장군에게 가라고 합니다. 두 가지를 가지면 승리합니다. 군사와 말씀입니다. 이걸 실력과 능력이라 합니다.
사업은 열정과 지식, 정보,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말씀을 동반하십시오. 말씀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말씀은 내가 준비한 것보다 더 확실한 무기입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기억하세요. 열심히 스펙을 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해선 안됩니다. 여러분이 이 두 가지를 소유했다면 이제 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요. 인간은 자기 힘이 있어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남자 장군이 여자 드보라에게 당신이 안가면 나도 안가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를 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락의 눈에는 철병거 부대가 너무 막강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무기가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커 보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작아 보입니다.
예수님과 한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이 파도를 볼 때 예수님이 안 보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면 교회 안에서 말하는 말씀보다 비교할 수 없는 파도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때 당황하지 맙시다. 파도를 향해서 말씀을 선포해 보시기 바랍니다. 능력은 나에게 있지 않고 말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