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올레길' 만든 그녀,
서명숙
이번엔 日 규슈에 로열티 받고 수출
후쿠오카=김윤덕 기자/조선일보 : 2012.02.29.
日 규슈에 4개 코스 조성 계약, 브랜드명·표식까지 그대로 써 "따뜻하고 아름다운 규슈… 내 고향 제주와 많이 닮았어요"
"봉이 김선달이 우리 자연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면 제주올레는 남의 나라, 그것도 일본의 자연과 문화를 이용해 돈도 벌고 명성까지 떨치게 됐지요."
5년 전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들어 전국에 '걷기 여행' 붐을 일으킨 서명숙(55)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28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활짝 웃었다. 서씨는 작년 8월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와 '규슈올레' 조성을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한 뒤 규슈올레 4개 코스를 확정, 한·일 양국에 공동으로 발표했다. "제주 올레라는 우리 브랜드를 수출한 거죠. '올레'라는 제주방언을 비롯해 간세(조랑말)·리본·화살표 등 표식까지 그대로 사용하면서 규슈올레가 제주올레에 1년씩 계약연장을 하며 로열티를 제공합니다."
제주 조랑말 ‘간세’를 형상화한 제주올레 로고와 이를 색깔만 바꾼 규슈올레 로고 사이에서 서명숙씨가 웃고 있다. /김윤덕 기자
이날 후쿠오카 시내 호텔에서 열린 '규슈올레 코스 발표회' 한·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서명숙씨는 "지난 1년간 연애만 하다가 오늘은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 같아 무척 떨린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규슈는 내 고향 제주와 많이 닮았어요. 그 나라의 가장 남쪽에 있고, 기후가 따뜻하고, 풍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규슈는 올레길이 없던 제주처럼 골프, 리조트, 케이블카 등 '빠른 관광'으로만 가득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세계적인 도보여행길인 스페인 산티아고 길이나 네팔 트래킹 길을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이 일본인들인데 왜 규슈에는 그런 길이 없을까 의아했습니다."
규슈올레를 자문하기 위해 서씨는 작년부터 일본 공무원들과 함께 규슈 섬 곳곳을 돌아봤다. 그는 "유서 깊고 목가적인 풍경이 많은 곳이라 걷기 좋은 길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문제는 역시 아스팔트였다"고 했다.
"숨은 길을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던 일본 공무원이 한번은 한숨을 내쉬었죠. 한 달 전에 정말 예쁜 길을 찾아내고 만세를 불렀는데, 한 달 뒤 가보니 아스팔트로 덮여 있더라면서. 자동차 위주로 길을 만들고 토목에 예산을 쏟아붓는 건 양국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가슴 아팠습니다."
29일부터 내달 3일까지 차례로 개장하는 규슈올레는 모두 4개 코스다. 사가현의 다케오 올레(길이 14.5km)는 수령이 최대 3000년에 달하는 거대한 녹나무 숲과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온천마을을 지난다. 오이타현의 오쿠분고 올레(11.8㎞)는 일본의 전형적 농촌마을과 고성(古城)을 지나는 길이다. 구마모토현의 이와지마 올레(12.3km)는 아마쿠사 제도의 이와지마 섬을 일주하는 코스. 가고시마현의 이브스키 올레(20.4km)는 제주처럼 노란 유채꽃 만발한 코스로 4개 코스 중 가장 길다.
서씨는 이날 제주올레 성공 비결에 관한 특강도 했다. "올레길 관리가 힘들지 않으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서씨는 "여행자들이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주민들이 몸살을 앓는 게 사실이라 '클린올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올레코스를 내면 어떻게 홍보하느냐"는 질문에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구축해 4개 국어로 알린다, 입소문의 힘도 엄청나다"고 했다. 질문이 쇄도하자 서씨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제주에 직접 와서 걸어보시라, 올레 스피릿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관광천국' 규슈는 왜 제주 올레를 수입했나
구마모토=김윤덕 기자 : 2012.03.03.
日규슈 "올레로 활로" 대지진 이후 급감한, 한국관광객 유치 목적 '올레' 명칭도 그대로 써
제주, 1400만원 받고 왜? "규슈 올레 걸은 일본인, 원조인 제주 찾게 될 것" 해외수출 발판으로 삼아
지난달 29일 일본 규슈에 있는 인구 5만4000명의 소도시 다케오에 '올레'가 탄생했다. 규슈관광추진기구가 한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올레'를 수입해 가장 먼저 선보인 길이 14.5㎞의 '걷는 길'이다. 다케오에 이어 3월 1일엔 오쿠분고 올레(오이타현)가 열렸고, 2일엔 아마쿠사 이와지마 올레(구마모토현), 3일엔 이브스키 올레(가고시마현)가 차례로 개장했다. <조선일보 2월 28일자 보도>
규슈는 '올레'라는 이름 사용과 코스 개발 등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제주올레에 100만엔(약 1400만원)을 지급했다. 일종의 로열티인 이 업무제휴비는 1년 단위로 갱신한다. 제주올레 사무국은 규슈섬 7개 현이 제출한 24개의 올레 설계안을 심사하고 답사한 뒤 4개 코스를 최종 확정했다. '아스팔트는 피한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경치가 있다' '여성 혼자라도 걸을 수 있다' 같은 올레 조건에 부합한 코스들이다. 온천과 올레길을 연계한 규슈상품을 3월에 출시한 여행사들이 있을 만큼 국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다케오 올레길에 있는‘물에 뜬 다리’를 여행자들이 건너가고 있다. /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제주와 규슈가 올레로 '通'한 이유?
벳푸·유후인 등 최고의 관광지를 품고 있는 규슈는 왜 제주 올레를 그대로 본뜬 관광상품을 만들었을까. 제주 올레는 왜 100만엔이라는 '푼돈'을 받고 경쟁국 일본에 천금 같은 노하우를 전수했을까.
규슈관광추진기구 오오에 히데오 본부장은 "일본 대지진 이후 급감한 한국 관광객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제1 전략으로 규슈 올레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대지진 이전인 2010년 규슈의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 중 한국인이 65만명. 참사가 난 지 1년이 지나도록 관광객 숫자가 회복되지 않자 한 해 200만명 가까운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제주 올레 열풍에 착안한 것이다.
해외유치추진부 모치마스 차장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규슈에도 올레가 있네?' 하고 반가워할 수 있도록 표지판과 이름을 그대로 썼다"면서 "제주 올레가 제주의 숨은 풍경과 토속문화를 보여줬듯이 규슈 올레 또한 대규모 관광지에 가려져 있던 규슈의 비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은 "규슈 올레의 탄생은 제주와 규슈 모두에 윈·윈(win·win)전략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규슈 올레는 일본에 올레꾼을 양성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될 겁니다. 규슈 올레가 성공하면 그 원조인 제주 올레를 찾게 될 테니까요." 제주 올레는 이미 2010년부터 해외에 올레길을 알리는 사업에 주력해왔다. 스위스 레만 호수 와인길(11㎞), 영국 내셔널 트레일 '코츠월드웨이∼더슬리 스틴치콤 언덕길'(5.5㎞)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고, 작년 캐나다 브루스트레일 구간에 제주올레 길을 냈다.
다케오 신사 안에 있는 3000년 수령의 녹나무(사진 왼쪽)와 올레길의 종착지인 다케오 온천(사진 아 래쪽). /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규슈 올레와의 업무제휴비를 100만엔으로 책정한 이유는 제주올레의 목표가 '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 친화적인 걷기 여행이 세계 여행업계의 트렌드를 바꿔가고 있어요. 게다가 걷기 여행은 지역의 밑바닥 경제를 살리는 '착한 자본주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가 그 실례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올레를 찾은 도보 여행자들이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는 2011년 3800억원에 이른다. 2015년에는 9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800만명 중 200만명이 올레를 찾았어요. 체류기간이 길고 재방문율이 높은 올레꾼들로 인해 제주의 재래시장과 대중교통이 되살아나고 있지요."
◇다케오에는 3000년 된 '神木'이 있다
걷기 여행으로 재기를 노리는 규슈의 첫 작품 다케오 올레는 1300년 된 온천 마을의 속살을 보여준다. 다케오온천역에서 시작된 올레길은 다케오 최고의 우동집이 있는 주택가를 지나 대나무숲 울창한 시라이와 공원으로 이어진다. 공원을 벗어날 즈음 만나는 기묘지 절엔 빨간 털모자를 쓴 지장보살들이 즐비하다. 잘생긴 주지스님은 옛날 중학교 교사였다고 했다. 벚꽃길로 유명한 이케노우치 호숫가엔 일본 학생들 수학여행지인 우주과학관이 있고, 그 앞 계곡엔 6월이면 반딧불이가 장관을 이룬단다. 다케오 올레 최고의 볼거리는 다케오 신사에 있는 3000년 수령의 녹나무다. 밑둥치의 둘레가 20m. "소원을 빌 때마다 이 나무로 신이 내려온다고 해요. 외지로 나간 다케오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오면 반드시 이 나무에 들러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지요." 다케오시관광협회 시다하마씨 얘기다.
일본 산촌의 전형을 보여주는 오쿠분고 올레는 '아사지'라는 무인(無人) 간이역에서 출발한다. 오쿠분고 올레의 하이라이트는 규슈 최대 마애석불이 있는 후코지 절과 주상절리 계곡을 지나 마침내 400년 된 오카 산성터를 오르는 길이다. 이끼와 성벽만 남은 폐허지만 멀리 소보산·아소산까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오이타현 관광진흥국 나오야마씨는 "올레로 인해 동네의 옛길들이 되살아나면서 마을의 식당과 가게들도 하나 둘 다시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안은주 사무국장은 120개의 섬으로 이뤄진 아마쿠사제도의 이와지마 올레를 최고의 코스로 꼽았다. "일본 가톨릭의 성지로 원시의 풍광이 살아 있는 곳이라, 평화롭게 걷고 안식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여행지가 될 겁니다." 이브스키 올레는 제주올레를 가장 많이 닮은 해안 코스다. "온천보다 검은 모래 찜질로 더 유명한 곳이죠." 걷고 난 뒤 온천이나 모래찜질로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 규슈올레의 최고 장점이다. 규슈올레측은 벚꽃 피는 4월과 단풍철인 10월에 가장 많은 올레꾼이 몰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