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어
아람어(Aramaic)로 표현된 유대인의 삶
거의 모든 유대인은 어느 순간 아람어를 접하게 됩니다. 히브리어의 신성한 언어도 아니고 이디시어(Yiddish)나 라디노어(Ladino)처럼 유대교의 상징적인 언어도 아니지만, 깊은 감정이 깃든 순간에 아람어가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장례식에서 조문객의 카디시(Kaddish)를 낭송할 때, 그리고 결혼식에서 부부의 의무를 규정하는 혼인 계약서인 케투바(ketubah, 결혼 계약서)를 낭송할 때 입니다.
아람어는 명절에도 사용됩니다. 욤 키푸르(Yom Kippur)에는 콜 니드레(Kol Nidre) 개막 예배에서 아람어가 등장하는데, 이 예배는 종종 연중 가장 많은 회당 인파로 북적입니다. 유월절 세데르(Seder)는 배고픈 사람들을 명절 만찬에 초대하는 "하 라크마 아냐(Ha Lachma Anya, הָא לַחְמָא עַנְיָא, 이것은 고난의 빵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흥미로운 노래 "하드 가디아(Chad Gadya, חד גדיא, “작은 염소 한 마리”)"로 마무리됩니다. 두 가지 모두 아람어로 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도 구어(spoken language)이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시바(yeshiva)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주로 아람어로 쓰인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깊이 있게 연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 모든 예들은 아람어의 여러 층위를 반영합니다. 아람어 발전의 각 단계는 고유한 문법과 어휘, 그리고 고유한 풍미와 질감을 지닙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파악하려면 한 걸음 물러나 아람어의 오랜 역사를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기원과 확산
아람어는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던 아람인들의 언어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아람어의 가장 초기 증거는 기원전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왕실 비문에서 발견됩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고대 아람어 시대라고 부릅니다.
아람어는 성서 히브리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어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유사성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으며, 일부 동사 형태는 성서 히브리어와 고대 아람어에만 나타납니다. 미슈나, 탈무드, 미드라쉬를 제작한 랍비들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도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문학적 동반자로서 공존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두 언어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및 그와 관련된 가나안어(Canaanite languages)와는 달리, 아람어는 기원전 1천년 초부터 아람 부족들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을 넘나들며 널리 퍼졌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은 아람어를 행정 언어로 삼았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키루스(Cyrus) 휘하의 페르시아인들이 바빌론을 정복했을 때, 페르시아인들은 셈족이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제국 아람어(Imperial Aramaic)로 알려진 이 공식 아람어는 근동 전역에서 표준화되었고 수 세기 동안 행정 언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아람어로 쓰인 최초의 유대교 문헌을 접하게 됩니다. 두 권의 성경에는 상당 부분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기 작품인 에스라(Ezra)서는 기원전 5세기의 사건을 묘사하지만, 기원전 4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기 작품인 다니엘(Daniel)서는 환상과 초월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묵시록입니다. 비록 다니엘서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궁정을 배경으로 한 고대 기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이 작품이 문학적 허구이며, 고대 인물들에 관한 창작된 신화로, 훨씬 후대인 기원전 2세기 경 헬레니즘 시대에 지어졌다는 데 동의합니다.
아람어와 유대인의 삶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이 지역을 장악하자 행정에 아람어를 대신하는 자체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 아람어의 위상은 특히 법률 문서에서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바르 코크바 반란(Bar Kokhba Revolt. 서기 2세기), 바빌로니아 탈무드(the Babylonian Talmud, 서기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편집됨), 그리고 게오닉 시대(Geonic period, 서기 7세기에서 11세기)의 할라카(halakhic) 문헌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산은 유대인 결혼 계약서인 케투바(ketubah)가 의도적으로 고어 아람어로 작성되어 법률 문서의 권위 있는 언어인 제국 아람어의 전통을 보존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람어는 바빌론 유배부터 제 2성전 시대 후기를 거쳐 로마 시대까지 유대인들의 구어체(spoken vernacular)였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의 이러한 변화는 아람어 성경 번역본이 등장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번역본의 존재 자체가 많은 유대인들이 더 이상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람어로 된 성경을 필요로 했음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번역본은 정경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예멘 유대인(Yemenite Jews)들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 번역본들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서기 70년 제 2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 삶의 두 주요 중심지가 바빌론과 이스라엘로 부상했습니다. 이 두 중심지에서 유대 전통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작품, 바빌로니아 탈무드(Babylonian Talmud)와 예루샬라임 탈무드(Jerusalem Talmud)가 탄생했습니다.
비록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각각 다른 아람어 방언으로 쓰였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동방 방언으로, 예루샬라임 탈무드는 서방 방언으로 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언어는 동방 교회의 공식 언어인 시리아어(Syriac)에 더 가까운 반면, 예루샬라임 탈무드의 문법은 서방 교회와 그 지역 사마리아인들(Samaritans)이 사용하는 방언과 유사합니다.
이후의 변형
서기 7세기경 아랍 정복(Arab conquest)으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람어는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매일 연구하고 새로운 저작들을 창작하면서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조하르(Zohar)가 가장 두드러진 예일 것입니다. 중세의 핵심 신비주의 문헌은 13세기에 아람어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예루샬라임 탈무드와 미드라쉬의 언어를 모방하여 작품에 고대의 분위기를 부여하려 했지만, 문법은 대체로 바빌로니아어였습니다. 그 결과 중세 특유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여러 시대의 방언이 섞이고, 저자들이 가장 잘 아는 언어인 히브리어가 자주 등장하는 아람어 문헌이 탄생했습니다. 전례시(פִּיּוּטִים, 피유팀) 또한 아람어로 작성되어 유대인의 기도와 노래에 아람어가 더욱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월절 할 라크마 아냐(Ha Lachma Anya)와 욤 키푸르의 콜 니드레(Kol Nidre)에서 여전히 접하는 다층적인 아람어의 배경입니다. 이는 여러 단계에서 도출된 문법적 특징들이 뒤섞여 신비감을 고조시킵니다. 또한 히브리어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난해하고 초월적인 것처럼 들릴 만큼 기묘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대적 메아리
유대인의 삶 외에도 아람어는 이란에서 터키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역에서 수 세기 동안 구어체로 사용되었지만, 방언은 페르시아어 문법과 어휘의 여러 겹을 흡수했습니다. 쿠르디스탄 (Kurdistan)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자랑스럽게 "탈무드의 언어(language of the Talmud)"라고 불렀고, 지역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예슈아의 언어(language of Jesus)"라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언어적 정확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즉 신성한 과거에 속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방언이 너무나 많이 변했기 때문에 탈무드의 현자들이나 예슈아조차도 단순한 대화를 따라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소수의 기독교 및 무슬림 거주 지역만이 아람어를 모국어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의 마알룰라(Maaloula), 주바딘(Jubbʽadin) 그리고 과거 바크하(Bakhʽa) 마을들은 기독교인과 무슬림 주민 모두 일상생활에서 서부 신아람어(Neo-Aramaic)를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라크(Iraq) 북부와 쿠르디스탄(Kurdistan)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는 에르빌(Erbil)과 같은 지역에서 아람어 보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람어 사용 거주 지역은 존속하지만, 유대 방언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쿠르드계(Kurdish)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마지막 모국어 화자들이 이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람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탈무드와 회당, 공부방과 기도실에서 아람어는 여전히 울려 퍼집니다. 정통 방언이든 혼합된 형태든, 히브리어의 자매 언어는 유대인들의 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By Elitzur Bar-Asher Si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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