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13장 14 - 25절
14 지혜자의 가르침은 생명샘 같아서, 사람을 사망의 올무에서 건져 준다.
15 슬기로운 마음은 은총을 입지만, 사기꾼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16 슬기로운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미련을 드러낸다.
17 못된 심부름꾼은 재앙을 가져오나, 신실한 심부름꾼은 평안을 가져다준다.
18 징계를 무시하는 자는 가난과 수치를 당하지만, 책망을 달게 받는 자는 존귀하게 된다.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이 즐거우나, 어리석은 자들은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20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걸으면 지혜롭게 되지만, 어리석은 자들과 친구가 되면 해만 당한다.
21 재앙은 죄인을 찾아다니고, 선한 보상은 의인을 따라다닌다.
22 선한 사람은 자기 재산을 후손 만대에 물려주지만, 죄인의 재산은 의인에게 돌아간다.
23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양식이 많아지지만, 불의한 사람은 재물을 모두 잃게 된다.
24 회초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자니,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부지런히 자식을 훈련시킨다.
25 의인은 배불리 먹으나, 악인은 항상 배고프다.
<묵 상>
2.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그리고 의인과 악인의 보응(14-25절)
"지혜자의 가르침은 생명샘 같아서, 사람을 사망의 올무에서 건져 준다. 슬기로운 마음은 은총을 입지만, 사기꾼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14-15절) 지혜로운 사람의 말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를 말해줍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는 ‘어떤 일에 정통하면서도 능통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전문가’, '생활의 달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교훈이 ‘생명의 샘’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 곁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가야 할 길에 이정표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소생하게 합니다. 반면에 사기꾼의 길이 험난한 것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욕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미련을 드러낸다."(16절)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걸으면 지혜롭게 되지만, 어리석은 자들과 친구가 되면 해만 당한다."(20절)
여기서 '매사에 신중하다'는 지식, 이성을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감정 변화의 폭이 커서 화나거나 짜증을 내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기서 '미련함'은 '고집', '감정'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감정입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해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회초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자니,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부지런히 자식을 훈련시킨다."(24절) 신앙의 가정에서 이 말씀을 근거로 부모가 자녀에게 매질을 해도 될 것처럼 인용했습니다. 자녀에게 회초리를 들라고 해서 무작정 때려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작정 때리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분풀이요, 부모가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회초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씀과 함께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유가 없는 매질, 과도한 매질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징계할 때도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합니다. '징계'라는 단어도 '훈련', '자식 만들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쳐 주실 때 무작정 매질하지 않으십니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입니다.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더디지만 서서히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인간'입니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다를 뿐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여린 생명체입니다. 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보여 줍니다. 작은 단위의 사회라 할 가족도 아이를 중심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아주 작은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면 더 큰 세계에서 발전하려는 노력도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제아무리 부모, 양육자가 훈육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아이는 그들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특정한 조건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체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미숙한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열등하고, 미숙한 어린 자녀에 대한 교정 목적의 체벌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반성보다 공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폭력이 더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이고 부모가 가르치는 행위에는 회초리가 수반될 수 있다는 통념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자식을 사랑으로 거듭거듭 훈련시키시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련하고 무식한 사람의 길을 청산하고, 의로운 사람의 길과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걸으십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무엇이 좋고, 바람직한지, 무엇이 옳고 바른 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의로운 길을 걷게 하옵소서. 부모의 회초리를 엄한 사랑의 매로 미화하면서 체벌을 기꺼이 수용했던 우리의 문화를 청산하게 하옵소서.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지혜롭게 자식을 주님의 기업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훈계하며 훈련하는 부지런한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어린 자녀들이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회초리와 사랑을 연관 짓는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을 우리 시대에 정리하게 하옵소서. 신체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힘으로 억눌러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불편함을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하루속히 사라지게 하옵소서. 세상을 따르는 길이 내게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와 편리를 준다고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 미련함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옵소서. 내 삶의 자리에서 의로운 사람의 길,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늘 깨어 있고, 이성적으로 신중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