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해 들었으며, 여호와께서 주신 결과를 보았습니다. Ye have heard of the patience of Job, and have seen the end of the Lord —야고보 5:11. Barnes' Notes on the Bible Behold, we count them happy which endure - The word rendered "we count them happy" (μακαρίζομεν makarizomen,) occurs only here and in Luke 1:48, where it is rendered "shall call me blessed." The word μακάριος makarios (blessed, or happy,) however, occurs often. See Matthew 5:3-11; Matthew 11:6; Matthew 13:6, et soepe. The sense here is, we speak of their patience with commendation. They have done what they ought to do, and their name is honored and blessed. Ye have heard of the patience of Job - As one of the most illustrious instances of patient sufferers. See Job 1:21. The book of Job was written, among other reasons, to show that true religion would bear any form of trial to which it could be subjected. See Job 1:9-11; Job 2:5-6. And have seen the end of the Lord - That is, the end or design which the Lord had in the trials of Job, or the result to which he brought the case at last - to wit, that he showed himself to be very merciful to the poor sufferer; that he met him with the expressions of his approbation for the manner in which he bore his trials; and that he doubled his former possessions, and restored him to more than his former happiness and honor. See Job 13. Augustine, Luther, Wetstein, and others, understand this as referring to the death of the Lord Jesus, and as meaning that they had seen the manner in which he suffered death, as an example for us. But, though this might strike many as the true interpretation, yet the objections to it are insuperable. (1) it does not accord with the proper meaning of the word "end," (τέλος telos). That word is in no instance applied to "death," nor does it properly express death. It properly denotes an end, term, termination, completion; and is used in the following senses: - (a) To denote the end, the termination, or the last of anything, Mark 3:26; 1 Corinthians 15:24; Luke 21:9; Hebrews 7:3; (b) An event, issue, or result, Matthew 26:58; Romans 6:21; 2 Corinthians 11:18; (c) The final purpose, that to which all the parts tend, and in which they terminate, 1 Timothy 1:5; (d) Tax, custom, or tribute - what is paid for public ends or purposes, Matthew 17:25; Romans 13:7. (2) this interpretation, referring it to the death of the Saviour, would not accord with the remark of the apostle in the close of the verse, "that the Lord is very merciful." That is, what he says was "seen," or this was what was particularly illustrated in the ease referred to. Yet this was not particularly seen in the death of the Lord Jesus. He was indeed most patient and submissive in his death, and it is true that he showed mercy to the penitent malefactor; but this was not the particular and most prominent trait which he evinced in his death. Besides, if it had been, that would not have been the thing to which the apostle would have referred here. His object was to recommend patience under trials, not mercy shown to others; and this he does by showing: (a) That Job was an eminent instance of it, and, (b) That the result was such as to encourage us to be patient. The end or the result of the divine dealings in his case was, that the Lord was "very pitiful and of tender mercy;" and we may hope that it will be so in our case, and should therefore be encouraged to be patient under our trials. That the Lord is very pitiful - As he showed deep compassion in the case of Job, we have equal reason to suppose that he will in our own. 반스의 성경 주석 보라, 우리는 인내하는 자들을 복되다 여긴다 - "우리는 그들을 복되다 여긴다"(μακαρίζομεν 마카리조멘,)라고 번역된 단어는 여기와 누가복음 1장 48절에서 "나를 복되다 하리라"고 번역된 곳에서만 나타납니다. 그러나 μακάριος 마카리오스(축복, 또는 행복)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5:3-11; 마태복음 11:6; 마태복음 13:6 등을 참조하세요.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칭찬과 함께 그들의 인내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그들의 이름은 영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심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욥은 인내심을 가진 고난 받는 자의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욥기 1:21을 참조하십시오. 욥기는 참된 믿음은 어떤 형태의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욥기 1:9-11; 욥기 2:5-6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주님의 끝을 보았나이다 - 즉, 주님께서 욥의 시련에서 가졌던 목적이나 계획, 또는 그 사건을 최종적으로 이끌어 내신 결과, 즉 불쌍한 고난 받는 자에게 매우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신 것, 그가 시련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찬사의 표현으로 그를 만나신 것, 그의 이전 소유를 두 배로 늘려 주시고 이전의 행복과 명예 이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 등을 말합니다. 욥기 13장 참조. 어거스틴, 루터, 웨트슈타인 등은 이 구절을 주 예수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며, 그분이 죽음을 당하신 방식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삼았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해석으로 여겨지지만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습니다. (1) "끝"(τέλος telos)이라는 단어의 올바른 의미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경우에도 "죽음"에 적용되지 않으며 죽음을 올바르게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이 단어는 끝, 기간, 종료, 완성을 올바르게 나타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 (a) 어떤 일의 끝, 종결 또는 마지막을 나타낼 때, 마가복음 3:26; 고린도전서 15:24; 누가복음 21:9; 히브리서 7:3; (b) 사건, 문제 또는 결과, 마태복음 26:58; 로마서 6:21; 고린도후서 11:18; (c) 모든 부분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목적, 디모데전서 1:5; (d) 세금, 관습 또는 공물 - 공공의 목적이나 목적을 위해 지불하는 것, 마태복음 17:25; 로마서 13:7. (2) 구주의 죽음을 언급하는 이러한 해석은 구절 마지막에 "주님은 매우 자비롭다"는 사도의 발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즉, 그가 말한 것은"본"것이거나 이것이 언급 된 용이함에서 특별히 설명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 예수의 죽음에서 특별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죽으실 때 가장 인내심과 복종심이 많으셨고, 참회하는 악인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그분의 죽음에서 드러난 특별하고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만약 그랬다면 사도가 여기서 언급할 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당할 때 인내를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a) 욥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b) 그 결과는 우리가 인내하도록 격려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욥의 경우에서 신이 행하신 일의 결말 또는 결과는 주님이 "매우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그러므로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하도록 격려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 - 욥의 경우에 깊은 동정심을 보이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경우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