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의 조직문화와 집단 창의성 ]
영화의 성공 여부는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골드먼(William Goldman)의 말처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흥행에 참패한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영화는 도박과 같습니다.
도박판과 같은 영화산업에서 1995년 ‘토이 스토리’를 처음 개봉한 이래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는 28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어서 거의 모두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픽사가 만든 영화의 편당 수익은 약 6억 2,000만 달러에 달하며 지금까지 23개의 아카데미상, 10개의 글든 글로브상, 11개의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픽사의 기원은 조지 루카스 감독이 자신의 영화 제작사인 루카스필름 안에 컴퓨터 부서를 신설한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루카스필름은 ‘스타워즈’의 성공으로 돈이 넘쳐났고 루카스 감독은 영화의 특수효과를 만드는 데 새로운 기술이나 기계들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루카스는 미래지향적 연구에 투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로 루카스필름에 합류한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과 앨비 레이 스미스(Alvy Ray Smith)는 완벽히 컴퓨터로 창작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루카스 감독은 이들에게 영화 제작을 맡길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캣멀과 스미스는 자신들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면서 디즈니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존 라세터(John Lasseter)를 고용했습니다. 이들 셋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짧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가 ‘앙드레와 꿀벌 윌리의 모험’입니다. 이 영화의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지 루카스는 컴퓨터밖에 모르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비싼 기계에 자금을 대는 것이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부서를 팔아치우기로 했습니다.
1986년 이 컴퓨터 사단을 루카스필름으로부터 1,000만 달러에 사들인 사람은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습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복잡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13만 5,000달러짜리 픽사 이미지 컴퓨터였는데 이 컴퓨터의 이름을 따서 지은 회사 이름이 바로 픽사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수한 픽사는 돈 먹는 하마였습니다.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까먹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잡스는 개인 대출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픽사 내에서는 독특한 조직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 문화는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과 이질적인 전문가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합니다.
디즈니 영화사와 픽사가 협력하여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이 되자 디즈니는 ‘토이 스토리’를 위한 별개의 회사를 만들라고 픽사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할리우드의 표준적인 절차였습니다. 하지만 픽사는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픽사가 독립적인 제작사를 차리지 않기로 한 이유는 직원들의 상호작용에 어떠한 제약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립 초기 픽사는 컴퓨터 과학자 사무실, 애니메이터 사무실, 관리자 사무실 등 세 개의 건물을 따로 지을 예정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설계 도면을 찢어버리고 세 개의 건물 대신 중앙에 아트리움(지붕을 유리 등으로 덮은 실내 광장)을 둔 한 덩어리의 건물을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부서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쳐 대화할 때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잡스의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이 아트리움에 모일 수 있도록 처음에는 우편함을, 이어서 회의실, 식당, 커피숍 등을 차례로 건물의 중심으로 옮겼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잡스는 건물 내에 하나밖에 없던 화장실을 아트리움으로 옮겼습니다.
화장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을 가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직원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잡스는 모든 사람이 서로 마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옳았습니다. 픽사에서는 화장실 안에서도 잡담이 오가고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단체로 피자를 먹으며 농담을 나눕니다. 애니메이터들은 아트리움의 푹신한 안락의자에 기대어 일 얘기를 나눕니다. 저녁에는 이들의 모임이 픽사 내에 있는 열한 군데의 음주 소굴로 자연스레 옮겨 갑니다. 픽사 영화사가 그토록 독특한 이유는 직원들의 잡담이 시간 낭비가 아님을, 그 마구잡이 대화가 좋은 아이디어의 끊임없는 원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MIT의 조직학 교수 톰 앨런(Tom Allen)에 따르면 사무실에서의 대화는 너무나 강력해서 단순히 대화의 양만 늘려도 창의적 생산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임원 사무실도, 실험실도, 도서관도 아닌, 바로 커피 자판기 앞이나 흡연 부스가 아닐까요?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