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음악을 타고 온다
- 오승국 선생 정년 퇴임식 -
2017. 2. 금계
2008년이니까 내가 퇴임한 지도 어언 9년이 지났다. 옛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참 젊고 팔팔한 때였다.
2월 24일은 오승국 교장의 정년퇴임식! 그 동안 몇 번 퇴임식에 가보았지만 살고 보니 인생의 대소사 가운데 결혼식 때가 가장 즐겁고 기쁘고 축복받는 자리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정년퇴임식 자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0여 성상에 이르도록 무사무탈하게 교직을 마치고 물러선다는 일이 보통 일일 것 같아도 살아보면 얼마나 대견하고 축복받아야할 일인지 모른다.
엊그제 2월 21일, 22일에는 코끼리떼 회원 11명 가운데 10명이 화순 금호리조트에서 정기 모임을 가졌다. 마침 고로쇠 철이어서 고로쇠를 네 통이나 사가지고 밤새 다 마셨다. 한꺼번에 많이 마셔야 좋다니까 수대로 틈나는 대로 한 사발씩 들이키고 밤 내내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소변을 시원하게 보았다.
가운데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오승국 선생.
1988년에 전교조의 전신 교사협의회가 발족되었다. 그 때 목포제일중학교 교사협의회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몇 년 후 만든 모임이 ‘코끼리떼’. 제일중학교 뒷산 이름이 코끼리를 닳았다고 코끼리산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 교장과 사귄 지도 벌써 30년이나 흘렀네! 아이고, 그 때가 진짜 젊고 팔팔해서 무서운 것이 없는 때였는데........
(화순 창랑 적벽 - 중국 양쯔강 적벽을 닮았다고 적벽)
나도 하모니카도 좀 불고, 풍금 아코디언 피아노도 좀 만지고, 초등학교 근무할 때에는 악대도 지도해보았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오 교장은 교회 성가대도 오래 지휘하고 목포시립교향악단에서는 비올라를 연주하고 한국음악협회 해남지부장도 여러 해 역임했으니 나처럼 돌팔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음악에는 조예가 깊은 전문가다.
퇴임식장이 나타나기도 전에 벌써 복도까지 울려 나오는 바이올린 첼로 선율이 내 귀를 즐겁게 한다. 전자기기인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오는 음악하고 직접 악기에서 빚어 나오는 소리하고는 그 품격이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오 교장은 해남제일중학교에 4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꾸준히 관현악단을 지도했다고 한다. 미술도 중요하고 체육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심성을 곱게 기르는 데에는 음악만큼 중요한 과목도 없다고 본다. 해남제일중학교 학생들은 음악에 정통한 교장으로부터 품격 높은 지도와 후원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복이 많은 학생들인지 모르겠다.
음악도 음악 나름이다. 나는 성악에서는 독창보다 합창, 기악에서는 독주보다 합주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협동 때문이다. 독창이나 독주는 선율이 한 가닥뿐일 수밖에 없는데; 합창 합주는 서로 다른 음을 내면서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화음을 빚어내야 하며 한 사람만 엇나가도 전체의 조화가 깨지기 때문에 남의 소리도 들어가며 서로 배려하고 협조하고 협동해야 하는데 그 화음의 어울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때 구성원들이 느끼는 희열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다.
음악에서 합창 합주로 조화와 배려를 터득한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엇나가거나 혼자 독주 독선할 리는 만무하다. 남을 잘 배려하고 남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다.
사랑은 음악을 타고 온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오 교장한테 3년 동안 관현악을 배운 학생이 나와서 감사의 정이 듬뿍 담긴 송별사를 읽는다. 음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음악이 그렇게 만만하거나 녹록한 것이 아니다. 악보를 받아들었을 때의 아득한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성공적으로 합주를 마쳤을 때의 기쁨은 더욱 각별하다.
그들이 3년씩이나 갈고 닦은 관현악은 그들의 앞날에 좋은 추억이 되고 눈부신 등불이 될 터이다. 격조 높은 오 교장으로부터 음악을 사사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해남제일중학교 여교사들이 총출동하여 축가를 부른다. 처음부터 몽땅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래 도중에 한두 명씩 띄엄띄엄 추가로 등장하는 방식도 이채롭다. 그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은 오 교장을 향한 칭송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빛을 던지고 사랑을 베푸는 모든 이들을 향한 찬양인 듯도 하다.
해남 화원중학교 배진성 교사가 나와서 축가를 부른다. 해남에서 행사가 있을 적마다 나는 그미의 소프라노를 몇 번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그미의 목청은 전혀 망설임도 없고 막힘도 없고 시원시원해서 들을 적마다 감동이 밀물져 온다.
그미와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이지만 퇴임식이 끝나고 오가며 스쳐 지나치다가 노래 잘 들었다고 찬사를 해준다.
“오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여요.”
그미가 환하게 웃는다.
당신의 눈으로
( 이한규 시, 오승국 작곡 )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십시오.
당신의 귀로 세상을 듣게 하십시오.
당신의 입으로 세상을 말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손과 발로 세상 일하게 하십시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상한 갈대를 일으켜 세우시는
당신의 마음을 닮아 사랑하게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닮아 사랑하게 하십시오.
오 교장이 가족석에서 손수건을 가지고 등장하여 퇴임사를 한다. 요즘은 졸업식장에서 우는 학생을 구경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퇴임하는 교장이 우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오 교장은 미리 손수건까지 준비하고 울 준비를 한 채 등장한다. 그리고 퇴임사 도중에 정말로 목이 막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울먹인다. 여기저기서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내 콧잔등도 시큰거리며 눈물이 핑 돈다.
매끈하게 머리 다듬고 훤칠한 이마에 윗주머니에는 꽃까지 꽂아서 신언서판이 신선처럼 화려하지만 어찌 그의 60년 인생에 희로애락과 애환이 교차하지 않았으랴. 그에게 들이닥친 환란과 그 어려움을 이겨내느라 겪은 뼈를 깎는 고통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웠으리라. 그런저런 사정을 아는 사람한테는 퇴임식에서 울먹이는 그의 모습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그와 함께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목포교육대학을 나왔고 나는 광주교육대학을 나왔다. 그는 중등음악교사 준교사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나는 중등국어교사 준교사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거기까지는 그와 내가 비슷한 경력이지만 인생 경로는 사뭇 다르다. 나는 엄벙덤벙 그럭저럭 그냥 평범한 교사, 평범한 인생행로를 겪었지만 그는 교사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종교인으로서 바람직한 인간상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속세에 파묻혀 살지만 그는 속세를 떠난 신선 같은 인상을 준다. 내가 인생을 대충대충 건성으로 살아온 데 반하여 그는 아주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그를 접하는 사람들한테 큰 울림을 주면서 모든 일에 지극 정성을 다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고 우호적으로 대처하여서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종교를 안 믿지만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장로라는 직함에 걸맞은 종교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학생들한테 권장한 인사말은 ‘사랑합시다.’ 의사가 된 두 아들한테도 사랑부터 가르쳤다 한다. 교사도 그렇지만 의사도 환자한테 사랑을 품지 않으면 그냥 의사도 뭣도 아닌 장사치에 불과하다고 경계했단다.
오오! 거룩하여라. 사랑이 빠진 삶은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리니.......
퇴임식 끝나고 가족 기념촬영. 처 임귀려, 장남 오현진, 자부 진윤선, 손주 지후, 연우, 차남 오현명, 자부 설효원, 손주 주하.
이 사진에 가족들이 전부 모여서 찍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무슨 일론가 우세두세 바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부가 빠진 것 같다. 특히 손주들이 함께 찍었더라면 사진이 더 광채가 났을 터인데.......
아까 오 교장이 퇴임사를 하면서 울먹인 속사정으로 되돌아가자면, 오 교장의 사모님 임귀려 선생은 1991년부터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무균실에서 골수 이식수술 등으로 몇 년 동안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오 교장은 당시 목포여중의 교사였는데 부인의 발병부터 치료까지 힘들었던 기록을 책으로 발간하였다.
‘환란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 (1996. 8.16. 도서출판 ’신문예‘)
퇴임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책을 다시 꺼내본다.
1991. 11. 16. 토.
아내는 오늘 가끔 내 손을 잡고 또는 나를 껴안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모양이었다. 또 앞으로 있을 골수이식 때 무균실에서의 생활에 대해 전해 듣고는 더욱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짧게는 두 달,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길게는 대여섯 달씩 3평 남짓한 무균실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 그곳에서의 더욱 힘든 환자의 투병, 또 이곳 13층에서의 보호자의 간호는 골수 이식실에 비하면 천국 같다는 등의 말을 전해 듣고는 나에게 더욱 미안하다면서 울먹였다.
- 저녁 예배는 찬송 46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니님께로다.
(가족석의 손주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람들의 품성은 그대로여서 종교를 믿거나 말거나 바람직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내가 볼 때 오 교장은 장로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한 수제자요, 교사나 장학사나 교장으로서도 오롯한 사랑으로 더할 나위 없는 참교육을 실천했고, 남편으로서도 아내의 중병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그게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지고지난(至高至難)한 과정이었다.
나는 명실상부(名實相符)를 좋아한다. 명실상부는 시니피앙(기호, 상징, 발음)과 시니피에(기호가 가리키는 내용)이 일치하는 것을 일컫는데 그 반대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사슴이라 하고 말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야 명실상부인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면 쓰겄는가. 그러나 지금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최순실과 태극기 부대가 외치는 구호를 들여다보면 명실상부가 아니라 지록위마 같아서 쓴웃음이 나오곤 한다.
바닷물이 짠지 안 짠지 바닷물을 다 마셔볼 필요는 없다. 한 숟갈만 마셔 봐도 안다. 오 교장 오 장로가 참된 교사인지 참된 종교인인지 세세히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를 향하는 학생들의 눈빛, 교사들의 눈빛, 학부모들의 눈빛, 아내의 눈빛만 들여다보아도 그가 이 시대의 교사로서, 신앙인으로서 참되고 진실된 사람임을 알 만한 사람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래 - 해남제일중학교 교사들)
코끼리떼에서는 네 명이 참석하였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역전의 용사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서 시나브로 퇴임을 한다. 11명의 코끼리떼 모임에서도 이제 일곱 명이 퇴직하고 네 명만 남았다. 그들도 몇 해 안에 다 삶의 현장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청춘아, 내 청춘아. 너는 어디로 갔느냐.
곧 봄이 오려나 보다. 만재식당 앞뜰에 햇볕이 졸릴 만큼 따스하다. 퇴임식이 끝나고 만재식당에서 점심. 불고기 백반이 퍽이나 반가웠다. 요즘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전에는 식당에서 불고기 백반이 최고 식단이었다.
소주를 서너 잔 마시니 또 뱃속이 알딸딸하다. 내 호를 취공(醉空)이라 불러다오. 홀연히 색계에 출현하여 삶에 만취했다가 홀연히 공으로 돌아가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