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잡부 남규원의 시입니다.
포항제철과 나
2009/03/02
늘 지각을 했어도
고참들은 “어려서 잠이 많다”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내 현장.
(포철공고를 나와 곧바로 어린 나이에 포철에 입사했으니 당연히 잠이 많을 수 밖에)
고참은 인천제철소에서 일한 것을 들려주었고.
초창기 화장실 휴지 없어진 것도
허리춤에 구리 감고 나오다 경비에게 들통 난 것도
자전거 부대도 아 옛날인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사는가
박 태준, 고 준식 나이타는 여전하데
우린 구리스 건에 묻혀
인생이 피스톤 질 하며 간다.
(포철이 건설될 당시(1968년) 인천제철소에서 인력을 수급했고
포철건설 초창기에는 노동자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화장실에 휴지를 집으로 가져갔고
돈을 더 벌기위해 현장에서 구리(금속)를 훔쳐 나오다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으며
자전거부대는 80년 초에는 포철뿐만 아니라
현대 등 대기업체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장으로 가는 것을 말하는데
유독 선명한 노란색 줄, 퇴근 복(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포철노동자들의 상징입니다.
포철왕국의 박 태준 회장, 고 준식 사장의 나이타는 공장굴뚝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말하며 구리스는 기계의 윤활제입니다.
피스톤은 알다시피 상화 좌우로 반복하는 기계장치로서 기계 작동하는 장치.)
국민은 용광로 야경이 좋아 환상에 젖어있고
분할시킨 지배구도인
협력업체를 보면서 위안을 삼은들
우린 다 같이 기름 밥 먹는 금속 노동자일 뿐
(포철의 야경은 일품이라 매체(TV뉴스, 광고)를 통해 좋은 포철이 좋은 회사로 홍보하는데 많은 자금을 투입해서 지금도 포철은 좋은 회사로 보통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분할 지배는 바로 지금 건설현장 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하청을 협력업체로 둔갑시킨 것인데
포철노동자에게는 엘리트(협력업체, 자회사보다 특혜를 줌)의식을 심어줘
아직도 휴면(유령)노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포철노동자는 금속노동자 중에서도 제철노동자일 뿐입니다.)
높은 놈이 뜬다면 초등학교 환경검열 받는 것 보다 더해
앉아 쉬던 의자도 버리고, 애꿎은 바닥은 칼라왁스 줄기차게 칠하고
하늘로 10억, 땅으로 10억 날리는
어이없는 짓들이 만연한 현장.
부동자세로 “안전”을 외쳐 인사를 하고 따라 다니며
쩔쩔매는 나이 드신 주임님을 만나야 한다.
이젠 눈치코치도 다 숙여버려
말라빠진 페인트 통이 되었을 까봐 두렵지만.
(회사 경영진(사용자)가 온다면 공장청소를 기본이고 현장에 자재품목 스피아로 (공구, 기계부속품)를 많이 구입한 것을 다 버려야만 공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경영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비싼 기계부속품을 폐기 처분하는데 그것이 하늘로 태워서 10억 고철로 10억이란 말이 있으며 군바리 식으로 현장의 주임(대빵/최고참 노동자)이 부동자세로 인사(‘안전’하고 인사를 하고 답은 ‘제일’로 함)를 목청 높여서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이 히틀러>는 저리가라다. 그렇게 포철왕국은 현장 인사부터 군기 잡는 것이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산다고 충성 맨들이
설쳐 무기력해진 어깨를 벗고
퇴직하면 고향으로 가려고
벌써부터 마음은 편안한가요.
눈에 가시인 공장장 차 선 보이던 날
야밤에 누가 차를 긁어
현장분위기는 수사관 몇 명이 돌고.
(사람 나고 회사가 있는 줄 알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살길이라며 인간 자존심을 팔고 현장 대빵(주임, 반장)들이 회사의 사주를 받아 노조탈퇴를 직원(조합원)에게 강요했다.
포철노조가 파괴된 이후 노조를 탈퇴를 안 한 직원(조합원)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주임, 반장 등)의 비굴함을 포철을 떠나 있고자 고향으로 가려고 마음을 잡는다.
공장장(과장)이 얼마나 직원들을 못살게 굴었으면 공장장 차를 야밤에 직원들이 쇠붙이(흉기)로 난도질을 한다.
공장장은 차를 긁은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또다시 공포조성을 하지만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포철노동자는 속으로 통쾌한 웃음을 참을 뿐이다.)
우린 노조가 무엇인가를 조합원에게 설명조차 못했는데
사용자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너무도 잘 알아
그 짧은 시간에 주임, 반장을 앞장세워
노조를 파괴했다.
충성파가 득실거리는 현장에서 동료를 골라서 매장하고,
명퇴가 자행되고, 사람들은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고
아 ---- 돌이켜 보면
내 잘못이 너무 커 한이 되어 넘치는데
(포철민주노조는 전국단일노조에게 가장 큰 노조로서 1990년7월에 세워서 3개월 만에 파괴되는데 민주노조의 틀을 잡기 전에 사측은 무참히 노조를 주임, 반장을 앞세워 파괴했다.
노조파괴 이후 사측의 충성파들은 노조원을 골라서 현장에서 왕따 등으로 모멸을 주어 결국 2만 4천명이 넘는 노조원이 14명으로 전락되고 초미니 어용(유령? 20명)노조는 현재도 건재한 상태이다.
노조가 파괴되니 포철노동자는 명예퇴직에도 대응도 못하고 사측에 굴복한다.
사실 명퇴 자행 시 해고자들은 수없이 싸웠지만 역부족임을 느끼고 만다.
제가 한이 되는 것은 민주노조건설 선봉대장이고 기숙사 회장을 맡고 있던 때라 그만큼 영향력도 있었건만 민주노조를 사수 못 했기 때문이며 당시 나이가 어려서 판단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누런 황소가 노란 병아리로 전락되고
부인회가 노조를 막는 기술로 이용되고
박 회장의 군바리식이 제대로 먹혀
그가 떠날 때 관제데모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독신 료(기숙사) 앞 광장에 5000명이 모여 연사 말에
눈물 글썽거리며 듣던
“포철 민주노조 발대식”보다도 더 생생한데
(과거 안전 빵으로 돈을 버는 포철노동자에게 시집을 간다 할 정도였건만 노란 병아리로 전락된 것은 경영진(사용자)들이 비리, 포항시민과의 갈등 등으로 포철을 포항시민 조차 좋아하지 않지만 돈과 권력으로 포항 땅을 쥐고 흔드는 포철왕국. 박태준이가 떠날 때는 포철노동자를 동원하고 회장님 영전에 삼가 조아린다며 부인네들은 울고불고 하는 통에 완전한 포철왕국임을 과시했다.
독신 료란 기숙사이며 일제 잔재의 말이고 포철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민주노조 발대식에 약5,000명이 모인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경비와 버스기사는 좋은 시절 다 같다고
PT병 들고 천정기중기에 올라 가고
독신 료 (기숙사)는 이제 제법 살만한데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 행세를 못하고
노조에 “노”자만 나와도 되뇌이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말조차 잃어
끼리, 끼리 모여 합리화 시키는 것이
正道가 된 현장의 분위기
그래도, 포정추(노민추) 동지들이 있어 든든하다.
(경비들의 권위, 직원 버스기사의 편한 일도 다 물 건너한 것은 구조조정으로 명퇴 내지는 부서 이동(축소)을 했고 천정기중기(크레인)에 PT병을 들고 올라 가는 것은 PT병에 오줌을 넣기 위한 것입니다.)
노조 파괴 시 앞장선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용서해 줄 수밖에 없고
비굴하게라도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노동자의 처지.
해고자의 절규는 내 아픔인 것을 알면서도
유인물 한 장 받지 못하는 아픈 가슴과 씨름했고
진실을 알면서도 바람보다 빨리 눕는 민초가 되어야만 했다.
(노조 탈퇴서의 노조탈퇴 이유란에 <짐승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말은 정말 가슴을 후빈다. 노조 파괴되고 비굴하게 포철을 다니어야 하는 그 심정은 현장을 냉소주의로 만들었고 이젠 해고자가 나누워 주는 홍보<위인>물마저 무겁게 느낀다고 한다)
유령, 식물노조가 돼 있는 포철 내 현장
노, 사 꾼이 십 여 년을 주름 잡아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폐(포)철의 소리 없는 노동자.
시키는 대로 조련되어 짖지 못하고
달 보면 설움만 토해낸다.
(유령노조 18년 동안 회사에 충성파가 현장을 주름잡아 눈꼴사나운 포철의 노동자들은 머리 숙이고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서 일한다)
내 나이 불혹이 넘어 보건대
내 단사는 고질병으로
평생 지고 가야하는 멍에가 될 줄이야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생명인데
기나긴 터널을 아직도 못 빠져나와
이젠 빼앗길 만큼 빼앗겼는가.
(18년 해고생활을 하면서도 생활이 어려워 투쟁도 못하지만 현장의 포철노동자들은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노조재건의 엄두를 내지 못한다.)
노동자가 위대하다는 것은 쌔빨간 거짓말
월급쟁이로 그냥저냥 사는 평범한 인생인데
노동자가 위대하다는 것은
정의의 파수꾼이 되어 더러운 세상을 뒤업을 때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노래한 것.
(노동자가 위대한 것은 사실 노동의 신성함을 말하는데 즉 생산을 창조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는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는 투쟁
그렇게 숨겨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는 찾아야만 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한 사람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세상에도.
자재가 없고 노동이 없고 물류가 없어도
돈 방석에서 앉아 호의호식하는 엿같은 세상에도.
투쟁은 엄연한 인류의 역사의 잣대다.
포철에 민주노조가 재건되고
민주노조가 강화 발전되어
노조에서 복직 명령이 떨어지면
난 그냥은 못 간다.
감옥에 있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들리고
고향에서부터 카퍼레이드를 시작해서
포항시내 9홉 바퀴 돌고
보고 싶고, 한없이 가고 싶었던 내 현장
로또가 백번이 되어도
노조를 지켜내지 못한 오명을 벗고
우리 투쟁가인 “철의 노동자” 함께 부르며
동지들의 무등을 타고 들어가련다.
그땐 계장, 과장이
매일 나이 드신 주임에게 인사를 하는 인간다운 현장을 위해
다시한번 단련된 투사가 되어
죽으면 죽었지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현장”을 너희들에게 내 주지 않으마.
참조)
1. 포철민주노조는 1990년 9월 27일 건설되고 실질적으로 3개월 만에 노조가 와해됩니다.
1. 저는 포철에서 91.2.18일 해고되었습니다.
1. 위 시는 포철 노정추(포철노동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의 홈피에 게시한 글입니다.
1. 포철의 노정추의 홈피는 지금 사라졌고 대신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가 건설되었습니다.
1.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시 중간에 가로를 쳐서 주석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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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왕' 박태준이 죽었다고 언론에서 난리부르스군요.... 죽어서까지 왕이라니! sadeg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