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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 첫 제도의 방편과 구인제자
설교 : 박세훈 교무님
타이핑 : 김유진
반갑습니다. 오늘은 구인선진님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 형식으로 들어보면 될 텐데, 구인선진님들 이야기가 많아서 경주교우와 같이 상의를 해서 경주교우가 이산, 육산, 칠산님을 이야기 하고 정산종사님은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거 같아 빼고 제가 나머지 다섯 분을 하려고 합니다. 옛날이야기 느낌으로 들으시면 됩니다.
교사니까 당시 상황이 어땠는가? 이때가 원기 1년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깨우치고 난 후 ‘뭔가 내가 깨달은 것으로 창생을 제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셨는데 대종사님이 그러진 않았지만 펑펑 놀거나, 뭐 한다가 갑자기 내가 깨달았고, 내가 만든 종교에 들어와서 같이 수행하자고 하면 안 들어올 거 아닙니까?
그 때 주변에 폐인이라는 평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깨달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이겠어요? 절대로 안 모입니다. 의심을 하죠. 그때 상황이 그랬습니다. 대종사님이 폐인이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라는 평판이 있었고, 그 다음에 대종사님이 거의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원문에는 도가 생활(종교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나오는데,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종교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허위와 미신이 많았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뭔가 허황된 것을 믿게 됩니다. 삶이 힘든데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나라가 뒤집어지는 거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뭔가 위대한 사람이 나와서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미륵이 온다거나 같은. 그리고 수행도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지만 상시일기 쓰는 거 싫지 않습니까. 그 당시 분들도 얼마나 싫었겠습니다. 그 때야 나오지 않았겠지만 교무님도 상시일기 쓰는 거 힘들어하거든요. 저도 힘듭니다. 대종사님이 그 때는 상시일기 못했겠죠? 그 때는 인기 있던 것이 주문입니다. 주문 한개 외우면 다 되는 겁니다, 병도 낫고, 돈도 벌고. 돈을 버는 주문, 병이 낫는 주문, 요즘 같으면 연애 잘 되는 주문, 이런 모든 것이 다 주문입니다. 다 허위와 미신이잖습니까. 그때가 그랬습니다. 다 주문만 외우고 있었습니다.
대종사님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주변에 평판도 안 좋고 사회생활도 안 해보고 사람들은 다 허위와 미신을 믿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다려야죠. 기다리셨습니다.
기다리면서 어떻게 했냐면 증산교가 거의 세 명중에 한 명이 증산교일 정도로 한창 득세했었습니다. 증산교가 엄청난 득세를 하고 있어 대종사님이 사리를 연구하셔서 증산교 선전원을 자청하셨습니다. 증산교를 알리는 사람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증산교에 가서 어떻게 치성을 드렸는지 물어봤습니다. 증산교를 하려면 알아야 해서 7일 간 치성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깨치신 분이라 엄청난 언변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그 당시 법위대전 같은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이 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구름 같은 대중 40명이 모여 들었어요 근데 이 사람들은 정법을 보고 모인 것이 아니잖습니까. 대종사님께서 증산교의 방식으로 사람을 치성으로 모은 거라 우리 교사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일시적 허영심이 있다. 그러니까 이 분을 믿으면 로또 맞은 것 같이 내 인생이 역전된다. 대종사님을 만나면 로또다.
그리고 통제생활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종교는 수양을 하려면 통제, 절제 있는 생활, 을 해야 하는데 안 되잖습니까? 여러분들도 교당에 오는데 다양한 목적으로 오잖습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있고, 내 원하는 것이 없으면 떠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40명 중 8명을 고르신 거죠. 아, 그래도 이 중에서도 약간 허영심이 적고, 뭔가 통제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도가의 그릇이 되는 사람 8명을 모은 겁니다. 10인 1단이지만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빼고. 정산종사님은 원기 3년에 오시니까요.
그렇게 시작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도 어때요? 첫 제도의 방편과 구인제자. 처음에는 증산교의 방식으로 방편 40명을 모았고, 그 중에서 9명을 추린 겁니다.
오늘 다섯 분에 대해 이야기 할 건데 여러분이 머릿속에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 다섯 분한테 배울 것이 있습니다. 선진님만의 정말로 대단한 배울 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보고, 그 다섯 분이 개성이 엄청 강한데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보다보면 그 공통된 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대종사님은 만인의 스승님이고 여러분들 중에서도 좀 코드가 맞는 분이 있잖습니다. 나하고 코드가 맞고 닮아가고 싶은 롤 모델이 누구인가, 그분을 한 분 정해서 그분을 수행의 모델로 삼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유난히 마음 가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순서는 대종사님께 제일 먼저 온 순서대로 했습니다. 일산님이 제일 먼저 온 게 아닙니다. 일산, 이산, 삼산, 사산은 방위입니다.
[팔산 김광선]
팔산님이 제일 먼저 왔습니다. 팔산님은 어떤 분입니까? 대종사님이 열반 하셨을 때 가장 슬퍼하신 분이 팔산님 입니다. 통곡을 하셨죠. 팔산님은 대종사님의 첫 제자입니다. 첫 제자 의미 있죠? 그리고 팔산님은 대종사님과 12살 차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하고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님의 모든 것을 봤습니다. 관천기의상부터 보진 않았을 것 같고, 구사고행상부터 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대종사님하고 파시도 가고, 대종사님의 대각을 가장 가까이서 보신 분이잖습니까. 그래서 의형제를 맺었는데, 대종사님이 깨치고 나니 대각전의 대종사님께 정신, 육신, 물질로 후원했던 사람입니다. 대종사님의 대각에 가장 공덕이, 지분이 많습니다.
대종사님은 12살 아래고, 폐인같이 사셨지만 대각을 했습니다. 대각을 하고 나니 첫 제자가 된 겁니다. 그 마음내기 쉽지 않으셨겠죠? 의형제에서 사제관계로 바뀌는데 가능하겠습니까? 12살 아래 동생으로 코흘리개 때부터 봤던 사람인데 갑자기 제자로 들어간다는 것이.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나게 할 정도로 대종사님이 대단하신 건지, 팔산님이 대단한 건지. 둘 다 대단하세요.
제가 보기엔 명섭 교우도 알겠지만 출가하기 전에 정리를 합니다. 인연관계부터 정리를 한단 말입니다. 하던 일도 정리하고. 명섭교우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정리를 했는데, 본인은 몰랐지만 그게 정리한 겁니다. 출가하기 전에 정리를 한단 말입니다.
팔산님께서 첫 제자가 되고 나서 정리를 합니다. 어떻게 했냐면 팔산님이 돈이 조금 많으셨는데,3000원을 사람들에게 빌려줬습니다. 저는 돈을 빌려줘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팔산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돈을 빌린 사람도 잠을 잘 못자고, 돈을 빌려준 사람도 잠을 잘 못자.” 그래서 팔산님이 대종사님 첫 제자가 되고 나서 하신 일이 자기하고 채무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채권을 다 불살라 버리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엄청 큰돈인 것 같습니다. 지금 3000원을 빌려줘도 받을 것 같은데 그 당시, 거의 100년 전 3000원을 불사릅니다. 채무관계를 싹 없애신 겁니다. 가족들은 편하지 않았겠지만, 본인은 마음이 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그 당시에는 둘째 부인도 있었습니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그랬습니다. 둘째 부인한테 돈을 주며 이제는 찾아오지 말라고 정리합니다. 명리(명예)는 없으셨나 봅니다. 재, 색을 정리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법명을 광선이라고 받습니다. 빛 광(光)자에 두루 선(善). 일원상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이 인과를 보면서 지은신거 같은 게, 그 전의 이름도, 성섭 입니다. 섭자가 불법 섭,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광선이라는 이름을 짓고, 태방을 줍니다. 여러분들이 팔산이면 일산부터 서열이 있는 건 줄 알았잖습니까? 제일 먼저 오고 법력이 제일 높으신 분으로. 그건 아니고 태방이라는 것은 방위이며 팔산님이 제일 먼저 오셨습니다.
태방은 팔방이고, 8번째 방위입니다. 그래서 팔산이고,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일산님은 첫 번째 방위. 근데 뭐 팔방이 좋고, 다른 방위는 북쪽이 좋고, 남쪽이 나쁘고 그렇지 않잖습니까. 그러고 나서 팔산님께서 한문사숙을 다니면서 한자를 제일 잘 아셨다고 합니다. 삼산님과 팔산님이. 그래서 내가 다른 것은 대종사님보다 뒤쳐져도 한문은 제일 많이 알겠지. 라고 하셨는데, 대종사님께서 그걸 꿰뚫어보셨는지 갑자기 막 한문을 읊으셨습니다. 근데 한문을 다 못 받아 적으셨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이 알려주셨고, 그걸 모아놓은 것이 법의 대전입니다. 근데 대종사님께서 그 법의대전은 발심교화는 될지언정 정법으로는 삼을 수 없다고 해서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두 권을 읽어보니 너무 좋은 겁니다. 태웠을까요? 저 같아도 안 태웠을 거 같습니다. 팔산님이 두고두고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팔산님이 한권은 태우시고 한권은 안태웠는데 대종사님이 다음날 오셔서 그 한권 어떻게 했냐고 말씀하시니 너무 깜짝 놀라서 처분을 했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산님께는 너무나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성욱 교무님도 제가 보면 도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교당을 아끼니 성욱교무님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나 봐요. 그럼 교당의 어느 부분이 고장이 난 것인데, 그 중에서도 팔산님 하면 공심의 표준이신데 방언공사를 할 때 갑자기 저녁에 잠이 안와서 둑에 가봤더니 구멍이 뚫려 물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 부르러 간 사이에 터질 수 있으니 갈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처음엔 손으로 막다가 나중에는 온 몸으로 막았습니다. 막다가 한 겨울에 추워서 정신을 잃었고, 같이 일하던 구인선진과 제자들이 와서 정신 차리게 해서 깨웠습니다. 그렇게 제방의 구멍을 막았던 일화가 있고, 한겨울에 온몸으로 막으셨으니 목숨을 걸고 한 것이고,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하신 겁니다. 그래서 팔산님을 공심의 표준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팔산님이 얼마나 돈을 아꼈냐면, 교당에 게실 때 교무들이 왔는데 땔감을 아끼려 불을 잘 안 지폈다고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잠도 잘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교무님들 증언에 의하면 그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 아궁이에 가서 웃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 오늘 연탄 두 장 아꼈다.” 그 정도로 공심 있으신 분이거든요. 이런 일화들이 되게 많습니다.
그리고 팔산님께서는 대종사님 곁에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뵈었던 분이기 때문에 대종사 주세불관을 만드셨습니다. 학이불능이라는 것을 회보에 실었습니다. 학이불능은 내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세 가지.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는 가장 독보적인 세 가지가 대종사님의 주세불관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가 순일 무사하신 공심, 두 번째가 시종 일관하신 성의, 세 번째가 청탁병용하시는 포용. 내가 가장 닮아가고자 하지만 안됐던,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 세 가지를 회보에 실었습니다.
근데 저 20원이 뭐냐면 팔산님이 연탄 두 장이 아까워서 불을 안 때실 정도로 살고, 온몸으로 방언하면서 구멍 난 것을 막을 정도니 몸이 좋았을 리가 없겠죠. 그래서 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몸이 아프면 약을 사먹으라고 돈을 주잖습니다. 그 돈을 모아서 죽기 전에 정산종사님을 부르셨다고 합니다. “나한테 여러 사람들이 준 돈 20원을 모았다. 원래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어려운 교당을 도와주려 했던 돈이니 이 돈을 어려운 교당을 위해 써줬으면 좋겠다.” 하면서 마지막 20원 까지도 정산종사님께 드리며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팔산님 같이 절대 살기 어려울 것 같지만 교당에서 에어컨을 틀고 싶을 때마다 팔산님을 생각하며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습니다.
[사산 오창건]
그 다음은 사산 오창건 선진님이신데, 이 선진님의 별명은 뭘까요? 작은 대종사. 제일 닮은 것 같은 사진을 골랐는데 대종사님하고 많이 닮으셨다고 합니다. 대종사님이 풍채가 좋으신데 사산님도 풍채가 좋으셨고, 헤어스타일도 비슷하시고, 전반적으로 비슷 하셨나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 옷을 가장 많이 물려 입으셨다고 합니다. 부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산 오창건 선진님은 이름이 창건이잖습니까. 말 그대로 창건을 많이 하셨습니다. 서울 교당, 초량 교당부터 해가지고 많은 참여를 하셨는데, 인부부터, 감독까지 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창건하신 겁니다.
오창건 선진님 하면 떠오르는 것 뭐 있습니까? 지게, 그렇죠. 연출된 사진이라고도 하는데 지게 지신 분 두 분 있잖습니다. 두 분 중 어느 분이 선진님입니까? 대종사님 닮으신 분. 지게가 트레이드마크 입니다. 왜 지게를 항상 메고 다녔겠습니까? 옛날에는 차가 없었고, 대종사님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시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인간캐리어셨습니다. 거기에 뭐 많이 실었습니다. 먹을 것, 옷. 그러니 항상 대종사님 지근에서 비서처럼 어디 행거하실 때마다 지게를 메고 다니시는 분입니다. 대종사님 보다 4살 많지만, 얼마나 지게를 지고 다니셨는지, 대종사님을 모시고 만덕산으로 갔는데 대종사님이 드실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옆에서 얼마나 죄송해 했겠습니다. 그 때 대산상사님 할머님이신 현타원 노덕송옥님은 자포에서 잘 사는 분이셨는데 음식을 준다고 하셔서 사산님이 지게를 메고 달려갔습니다. 지게 메고 갔더니 지게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다 가져가라고 하셨고, 같이 내려갔던 분이 제가 머슴을 데려왔으니 많이 가져갈 수 있다고 해서 아무 말 없이 많이 담아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대종사님 편하게 해드리려고 너무 많이 담아서 지게 싣고 갈 때 너무 힘들어서 거의 쓰러지듯 누워 더 못가겠다 이러고 있었는데 ‘거 창건이 오느냐.’ 라는 대종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니 갑자기 몸에 힘이 번쩍 나고, 너무 좋아 막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니 대종사님이 온화한 모습으로 맞이해 주셨고, 머슴이든 뭐든 간에 스승이 하는 일에 대해 일오의 사심도 없이 스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분이셨습니다. 대종경에도 서울 교당 지을 때 대종사님께서 응산님께 지게 지고 가자고 하시니 응산님이 교무 채신 상 지게 못 지겠다. 하셨는데, 응산님을 가르치려고 대종사님께서 응산님보다 10살 많으신 사산님께 법호도 안 부르시고 “창건, 지게 지고 갑시다.”라고 하니 오창건 선진님이 아무 말도 안하고 바로 지게 지고 가셨습니다. 나중에 응산님이 크게 반성하고 허위 허식을 놓는 공부를 하게 됩니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셔서 나중에 교정원장님까지 합니다.
그리고 사산님께서는 또 어느 정도로 공심이 있었냐면, 윤타원 이영신 선진님과 같이 초량 교당을 건축하러 가셨는데, 기둥을 세우고 벽을 채우는 마무리가 아직 안됐는데 그날따라 막 태풍과 비바람이 불어 마음이 불안해 밤새 기둥을 잡고 계셨다고 합니다. 윤타원님 회고담에 나와 있다고 들었는데 윤타원님이 나가보니 사산님께서 밤새 비 오는데 기둥을 붙잡고 교당을 지키고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이정도로 공심과 대종사님에 대한 신성이 컸다. 그래서 대종사님을 만날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진흙투성이어도 오체투지를 했다. 라고 선진님들이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또 인품이 아주 온화해서 여자교무님들께 언니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사산언니, 엄마라고 불렸다 합니다.
[일산 이재철]
일산 이재철 선진님은 효성이 지극하신 분입니다. 대종사님께 효성으로 칭찬을 많이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무여한 백지혈인 하실 때 마음에 걸리는 걸 얘기하라 했을 때도 홀로 계신 어머님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도 걱정 말라 내가 잘 보필하겠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물이 참 좋으시고, 인덕이 많으셔서 영광의 인물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종사님께서 대각 하신 후 금강경을 찾으셨다고 하잖습니까. 그때 불갑사에서 금강경을 가져오신 분이 일산님이십니다.
항상 겸손하고 예의 발라서 대종사님과 동갑이신데 대종사님 앞에서 항상 공수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진퇴의 예를 갖추셨고, 바깥업무를 많이 보셔서 항상 좋은 옷을 입고 다녀도 대종사님을 만나 뵙게 되면 사산님같이 진흙 밭이어도 오체투지를 하셨다고 합니다.
일산님은 언변도 아주 뛰어나서 그 당시 여러분들도 아실만한 가장 큰 신문에 원불교를 사이비 종교라고 기사를 냈는데 뛰어나신 언변으로 “우리가 사이비 종교인지 아닌지는 직접 와서 확인하면 좋겠다. 와서 보기에 우리가 사이비 종교같이 보이면 더 기사가 확실해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정정기사를 내달라.”고 말씀하셨고, 그 기사가 직접 와서 그 당시 불법연구회(현 원불교)를 아주 칭찬하고 갔다고 합니다. 정정기사가 나갔는데 그곳에 대종사님은 불교계의 루터 같은 사람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방언공사 할 때 소유권 문제로 복잡할 때도 관청에 가서 그 일을 다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대종사님께서 일산님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어디 갈 때는 일산을 꼭 데리고 다닐란다.”
대종사님과 일산님은 같은 해에 나시고 같은 해에 열반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이 열반 하셨을 때 크게 낙심하신 것 같습니다. 그 해 10월에 열반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산님은 원불교 외교의 일인자, 언변의 일인자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삼산 김기천]
그 다음 삼산 김기천 선진님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요? 첫 견성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삼산님의 원래 법명이 참 재밌습니다. 원래 속명은 성구입니다. 성인 성(聖)에 오래 구(久). 오래도록 성인에 있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성인으로 있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성인으로 있었는가? 몇 천 년 동안 있었을까? 그래서 기천입니다. 화두를 던져주신 겁니다. 삼산은 오랫동안 성자로 있었을 텐데 얼마나 오랫동안 성자로 있었을고? 기천.
그리고 삼산님은 구도심이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맨날 후진들에게 나는 찾을 것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의두 연마에 빠져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 뛰어가는데 삼산님은 뛰어가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후진들이 왜 안 뛰어가시냐고 여쭈니까 “뛰어가면 앞에 있는 비까지 다 맞아야 하는데 그럴 것 까지 있냐.” 라고 하셨고, 실제로는 머릿속 의두에 빠져 계셨기 때문에 그랬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산님께서 오랫동안 의무 연마하시면서 밝아진 것 같지만 물어볼 곳이 없었는데 어느 날 대종사께서 성리법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막 물어 봤습니다. 저도 성리를 잘 모르지만 성리에 대해 질문하면 다 도망갈 것 같은데, 내가 예고해서 경주교우한테 다음 주에 성리질문 할 거라고 꼭 보자 그러면 안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당시에도 다 부담스러워 하신 것 같습니다. 성리법회 보며 문답을 하라고 하셨는데 알아야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이때 삼산님께서는 마음속으로 ‘물어봐서 모르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고,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틀렸다면 다시 시작 하면 되지. 어쨌거나 점검을 받아야지.’라고 생각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일체유심조에 대해 물으셨고, 대답을 잘 하셨습니다. 대답을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물어보고, 윤회와 생사해탈에 대해서도 물으셨습니다. 중생의 윤회와 부처님의 생사해탈은 어떻게 다른지 물어봤고, 또 대답을 잘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종사님께서 웃으시면서 첫 견성인가를 하셨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동료들이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제가 견성인가 해 줄 능력은 안 되지만 누가 정말로 속 시원하게 강연을 잘하면 옆에서 춤 춰줄 수 있습니까? 한 동지들이 너무 법이 높아지고 훌륭해지면 춤 춰줄 수 있을 정도로 법에 희열이 있습니까? 그때는 춤을 췄습니다.
그렇게 첫 견성인가를 받으시고 다른 후학들을 위해 철자집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간사 때 교무님께서 철자집 공부하라고 주셔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그것을 삼산님이 쓰신 건 줄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 구인선진께서는 참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종사님도 직접 뵙고,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제가 잘 몰랐을 때는 구인선진께서는 별로 고생도 안 하셨을 것 같고, 그냥 대종사님 따라만 가도 좋으니 행복하셨을 거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삼산님도, 모든 구인선진께서도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삼산님 같은 경우는 동선을 하는 중 외아들이 갑작스럽게 열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선 중이기 때문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대종사께서 가라고 하셔서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가셔서 부인을 안심시키고, 생사해탈 공부를 같이 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저도 말은 잘 하지만 어떤 경계에 닥치면 자신은 못 하겠습니다. 외동아들이 열반했는데 동선을 다 마치고 가신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을까요. 이렇게 자녀가 돌아가신 분이 구인선진님 중에 몇 분 있습니다. 대종사님이 “유일무이한 공인이다. 향내 나는 전무출신이다.”라고 삼산님을 평가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산님을 볼 때는 지게까지 메고 갈 수 있는 마음과, 삼산님을 볼 때는 언제든지 의두, 항상 화두를 놓치고 살지 않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산 박세철]
마지막은 오산 박세철 선진님이십니다. 오산님은 몸이 아주 안 좋으셨고, 아주 왜소하셔서 방언 공사 때도 심부름을 주로 하셨다고 합니다. 삽질 한 것이 아닌 간식 날라드리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뭐 가져오라고 시켜도 가져다 주셨습니다. 대종사님보다 12살 더 많으셨고, 그리고 제일 나이가 많았습니다.
또한 얼마나 곧으신 분이냐면 백지혈인 사무여한 때 대종사님께서 안 죽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스승과 진리 전에 죽기로 맹세 했는데 왜 안 죽나, 어찌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고 하셔서 대종사님이 겨우 말리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대종사님보다 12살 더 많았는데 항상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을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보다 훨씬 형님이다. 도가의 형님이시다.’ 또 항상 병약하고 왜소하니 외부에서 구인선진에 모자라다. 라고 하니 대종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국왕이나 유명한 재상과도 바꾸지 않으며, 조선 총독과도 바꾸지 않겠다.” 대단하시죠?
저도 이번 일주일 간 훈련 가면서 몸이 비실해 봉공작업 할 때, 간식을 나르는 등 심부름을 주로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일 한 것 같지만 대종사께서는 소중히 여기셨고, 본인이 나이가 많다고 상을 내지 않고 항상 겸양하게 했기 때문에 대종사께서 ‘겸양제일 박세철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오산님께는 이런 겸양하는 마음을 배우면 될 것 같습니다. 정산 종산님보다 스무 살이 많으신 데도 항상 형님이라 하면서 마지막에 열반하실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불초제는 스승님과 형님들을 모시지 못하고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아들 뻘인 정산종사님께도 형님이라고 하면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죄송하다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인선진들의 모습입니다. 대종사께서 이렇게 큰 회상이 왔을 때 다양한 도인들이 오기 때문에 정말 개성 있는 부처님들이 많이 모여든다. 라고 하셨고,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암 교당도 청년교도가 많은데 정말 다양한 부처님들이 모인 것이고, 이 때 저 사람과 나는 성격이 다르고 누구는 나랑 안 맞아 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저 부처한테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여긴 다들 공부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고, 원만한 사람들이지만 나와 좀 다르면 싫어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 가 아닌 구인선진을 통해 다양한 부처를 배우고 다양한 동지들을 보며 맘에 안 드는 것을 보지 말고 내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고 하면 많은 부처님 속에서 더 원만하게 수행이 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
마무리로 구인선진들께서 공통적으로 가지신 것은 정법에 대한 서원입니다. 그것 때문에 다 참고, 모인 것입니다. 오늘이 6월 30일 이고 내일부터 온라인 상시훈련 결사하기로 했는데, 구인선진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지 마시고 여러분이 그 뜻을 되새겨서 온라인 상시훈련 30일 결사를 내일부터 시작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후진들이 여기 계신 분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발표할 날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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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감사합니다. 유진교우님~!
수고하셨습니다!!
와우 감사해용 수석차장님~~~~
왕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