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을 넘어 말복으로 다가가는 무더위다. 창문을 여니 숨겨져 있었듯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앞집 강아지도 좋은지 아침부터 꼬리를 흔들며 주인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개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드라마 '전원일기' 김회장집에 밤새 도둑이 들었는데, 강아지 삼월이가 도둑이 던져주는 뼈다귀에 정신을 빼앗겨 짖지도 않았다. 그러한 개를 보고 사람들은 복날이 기다려진다며 입맛을 다시고, 된장이 잘 읶었다며 농담을 하였다.
우리가 어렸을때엔 보신탕이란 말은 많이 들었어도, 정작 제대로 개고기 맛을 보지는 못했다. 어른들에 의하여 그 표현되는 맛이란 것에 침이 고였으나, 어른들도 정작 기르던 짐승을 잡아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수 기른 것을 직접 잡아먹는 일을 거의 없었고, 동네 잔치를 빌미삼아 솜씨좋은 이웃에 의한 도살로 몇점 고기맛을 보게 되었다.
개는 예전부터 사람과 가까이 하는 동물이다. 서양 속담에도 고양이는 장소에 흥미를 느끼지만, 개는 사람을 따른다고 하였다. 개의 시조는 야생 늑대라고 하였는데, 그 늑대들은 먹이를 쉽게 얻는 대신 결국엔 자유를 구속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릴적 '봉천 개장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봉천은 지금의 중국 선양(심양)시의 옛지명으로 랴오닝성의 성도이다. 그곳은 조선시대 전란으로 부터 근세기까지 우리민족들의 애환과 삶의 정서가 깃든 땅이다. 그곳에서 개장수가 유행한 것은 먹고 살기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일본군을 피해 만주로간 사람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손쉬운 것이 개장수였다고 한다. 당시 한족이나 만주족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으나, 조선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개고기를 파는 식당이 많았고, 늙은 개는 공짜로도 구할 수가 있었단다. 역시 봉천 개장수라는 말에는 우리민족의 애환이 섞여있는 것이었다.
나는 개고기를 마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찾아다니며 먹지 않는다. 그런데 예전 직장을 다니던 한때는 그 개고기가 여름의 별미였었다.
그때에도 개고기는 혐오식품으로 취급되어 여자들이나 품격높은 사람들은 먹기를 꺼려했고, 말그대로 먹어본 넘(사람)이 잘 먹었다. 그래서 직장의 토요일엔 자연스레 복날이 되었다. 먼저 선발대로 직급낮은(요즘 쫄병이란 단어를 써도 넘어가나?) 두어 명이 출근부에 도장을 찍자마자 개를 사서 도살장을 거쳐 시장을 보았고, 적당한 곳(주로 다리밑)에다 자리를 잡고 불을 피웠다. 적어도 그 선발대에 들러면, 직장 경험보다는 사회경험이 풍부해아 했다.
개고기는 2시간 정도는 푹 삶아야 제맛이 난다. 그동안 쫄병들은 수고의 댓가로 빨리 읶은 내장들을 꺼내어 서둘러 잘라먹고, 가볍게 두어 잔의 술을 가미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맛이 기가찬다. 거무티티한 간이며, 꼬불꼬불한 창자, 너덜너덜한 위, 개체들의 1/2의 확율만이 가진 거시기를 안주하여 마시는 소주 한잔은 목줄기를 타자마자 카~소리가 절로 터져나온다.
오전근무 종료를 알리는 벽시계가 1시 땡소리를 내자마자 그 예고된 다리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맛은 읶히 아는지라 쫄병들이 반타작한 것들을 찾지만, 원형을 알 수 없고, 쫄병들의 붉그스레한 얼굴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고참들부터 맛있는 부위를 가려 고기를 잘라 대령하고, 소줏잔을 퍼안긴다. 빨리 약간의 맛이가고, 화투판이 벌어져야 쫄병들은 눈치 안보고 남은 고기와 끈적한 국물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중간 표정을 읽어가며, 그것도 돈잃은 상사들에게 국물 한그릇 서비스 하는걸 잊어버리지 않아야 해피엔딩이 된다.
만주 봉천의 개고기 맛은 어떨까? 소의 여물솥같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하루종일 끊여내는...상상만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개고기는 자체가 잘 우려나기에 방아잎이나 들깨가루에다 정구지(부추) 정도이면 양념끝이다.
개고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2006년 이든가,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선진국 흉내를 낸답시고 정부에서 개고기 먹기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사무실은 상부의 감사를 받게 되었고, 점심시간이 되어 감사를 온 사람들에게 금기된 제안을 하게 되었는데, 그건 보신탕을 먹어도 되겠느냐는 나의 제안이었다.
묵시적 동의? 최우선적으로 룰을 지켜야할 그들과 정말 은밀하게 뒷골목 간판없는 식당에서 고기를 뜯고, 이빨을 쑤시던 그때의 맛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또 한번은 높은 분을 모시고 서울의 출장길에 올랐다. 사실 그 당시 여름이면 매우 한가하여 서로 맞대고 얼굴 쳐다보는 것이 더 더웠다. 그래서 그 얼굴들을 피하여 출근하여 일치감치 한양길에 올랐다.
서울에 진입하여서도 회의시간은 엄청 많이 남았다. 나는 기사에게 근교의 보신탕집을 찾아보자고 말하였다. 모시는 이가 하도 보신탕을 좋아하셨기에 역시나 묵시적 동의를 구해본 셈이었다.
서울에서 고양을 지나 파주, 문산의 판문점에 가까이 가도 그넘의 보신탕집은 없었다. 이미 1시가 넘어 있었다. 즐겨하는 음식을 구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니 누구를 탓할 것은 못되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시장끼를 참고 다시 되돌아 내려오며 길가식당을 살폈다. 그런데 파주쯤이던가 눈에 들어오는 색다른 간판이 있었다.
이름하여 '00사철탕' 그런데 사철탕이 뭐지? 요즘은 담박 이해가 갔었지만, 그 당시엔 숨어있는 단어었다. 일단 차를 세우게하고 혼자 그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반쯤 문을 열고 주인에게 물었다.
"사장님! 사철탕이 뭐예요?"
"개 요리인데 드시게요?"
말해 뭤해? 빙고...드디어 찾았다. 그런데 사철탕이 뭐야? 다른건 사철 안먹나? 하긴 그렇게 따지면 보신탕이란 이름도 좀 그렇다. 하여간 2시 가까운 시간에 시작된 우리 일행의 점심요리는 평소 맛의 2~3배에 달하는 효능을 발휘했다는 뒷이야기이다.
앞서에서 말했듯이 나는 개고기가 그랬다. 개고기 뿐만 아니라, 고상하게 밝히자면 먹기위해 사는 것 보다는 살기위해 먹는다고 보아야 옳다. 그래서 개를 20년 넘게 키웠었지만, 그게 먹고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 개들 듣는데 한번도 '된장 바른다'는 애기도 한적이 없었다. 그런면에서 우리 개들은 나를 상당히 존경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사실 알고보면 개들은 우리 인간을 지켜주고, 고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온갓 세상의 험담을 대신 듣는다.
X같은 넘, X새끼, 심지어 X보다 못하다는 말까지...개가 인간에게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니?
요즘은 흔히 말하던 D개도 안보인다. 시중의 보신탕집에서 나오는 고기는 도사견의 것이라고. 그래도 먹는 음식일땐 불평말고 감사하게 먹어야 할일이다.
나는 개는 좋아하지만, 개를 좋아하는 인간을 싫어한다. 뭔 소리냐면, 개를 사람보다 우대하는 인간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창조주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돈들어 애는 갖지 않는다면서도 개나 고양이게는 사람보다 더 정을 쏟고 돈을 들이는 사회풍조...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시기질투의 그 속설(犬猫之間) 때문에 12간지(十二支)에 들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횡설수설, 어쩌다 무슨 글인지도 모르게 줄기가 없어졌다. 이 삼복의 지독한 무더위와 코로나라는 역병의 터널을 지나면서 한번쯤 정신줄 놓고 헷갈려 보는 것도 당면한 작금의 사태를 잊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를 양해와 더불어 바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끝은 있지만 피하고 싶은 무더위를 모두가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