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집의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썰렁하고 휑한 거실, 캐릭터가 그려진 놀이매트, 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매트리스, 알록달록 장난감으로 가득한 집안 곳곳. 쌍둥이 아들 둘이 살고 있는 우리 집도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패션을 좋아하고,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나지만, 두 아들의 육아 앞에서는 현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콘솔 하나, 의자 하나를 사더라도 엔티크 숍을 찾아 발품을 팔던 스타일리시한 황혜영은 이제 옛날이야기. 하루 종일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전쟁터가 따로 없고, 나는 지쳐 쓰러져서 여력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서 집안을 휘 돌아보다가 ‘우리 집이 언제 이렇게 됐지? 이래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사들인 예쁜 가구들, 고급 식기,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에게도 미안했고, 예쁘고 행복한 공간 속에서 살 권리가 없어진 나에게도 미안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는 동안 감각이 많이 떨어졌을까 두려웠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다시 살아나는 법. 마음을 다잡고 인테리어와 리빙에 신경을 쓰기로 다짐했다. (사실 그보단 내 집 풍경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마음이 컸다.)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작고 소소한 디테일 하나가 분위기를 확 바꿔준다’는 인테리어의 기본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않고, 집안의 작은 공간에 하나씩 포인트를 줬다. 그림이 완성되기 직전에 점 하나를 찍으면 분위기가 달라지듯, 인테리어도 작은 포인트 하나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조용히 잠자고 있던 찻잔을 꺼냈다. 신혼 초에는 장식장에서 반짝거리던 찻잔들이다. 살림을 해 보니 인테리어를 예쁘게 하겠다며 실용적인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일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찻잔이다. 두 아이와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잠깐 잠을 자거나 아빠와 외출을 했을 때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에, 커피만한 친구가 없다. 깨끗하고 조용한 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찻잔은 잔과 받침이 있는 것이 기본이지만, 세트로 사는 것보다는 단품으로 사서 색다른 느낌을 내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찻잔은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한다. 선반장이나 식탁 위에 예쁜 찻잔을 올려 두면 갤러리 컬렉션 코너의 느낌도 살릴 수 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찻잔들 덕분에 커피 마시는 시간이 더 행복해졌다. 이왕 마시는 커피, 예쁜 찻잔에 담아 마시자. 내 비록 아이들 우유 냄새, 침 냄새와 함께하고 있지만 커피를 마시는 순간만은 우아한 사모님이 되리.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두 아이와 대결을 벌이다가도, 테이블 위에 있는 예쁜 찻잔을 보면 혼자서 싱긋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