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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원문보기 글쓴이: 선과
고대면 진관리 영랑사. 법당의 범종을 찾기 위해 방문했지만 스님의 예불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30분 이상을 기다려도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이어져 훗날로 인연을 미루어야 했다.
야트막한 영파산 자락에 위치한 영랑사는 신라 진흥왕 25년(564)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의자왕 8년(648)에 당나라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다. 고려 선종 8년(1091)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면서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4년(1678)에 보수하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대웅전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절 이름이 영랑사(影浪寺)가 된 데에는 연유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설에는 옛날 바닷물이 절밑의 골짜기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절 그림자가 물결에비쳐서 그로 인해 영랑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로서 영랑사의 기원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영랑(影浪)’이다. 영랑은 원래 중국 당 태종의 막내딸 이름이다. 그녀는 해동 땅에 원찰을 세우는 것을 소원하였는데,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도와 삼국을 통일하자 당나라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였던 당진 땅에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즉 아도 스님과 함께 한반도에 건너와 절을 세우고 자기의 이름을 절 이름으로 하였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한다...영랑사 홈피
대웅전 앞 부도. 방형 기단, 원당형 탑신. 육각 옥개석. 연꽃 모양의 상륜이 남아 있다. 특별한 조식 없이 간략화된 형태의 조선시대 부도이며 주인공은 전해오지 않는다. 본래 위치 추적이 불가하더라도 경내를 벗어난 사역에 이건했으면 좋겠다.
대웅전은 2단 축대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겹처마 맞배지붕에 다포식이며 측면에는 방풍판이 있다. 정면은 어칸과 양협칸의 크기가 같으며 4분합문이다.
띠살문 창살이 일반 민가 같은 느낌을 준다.
문화재청
대웅전 범종. 스님의 오랜 예불로 인연을 짖지 못했지만 우리님들 답사시에는 꼭 만나길 바라며 글은 문화재청과 문화유적 총람에서 발췌했다.
크기는 높이가 78㎝ 상대직경 35㎝ 하대직경 52㎝이다. 종각에 조성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법당안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아주 작은 크기의 동으로 주조된 종이다. 종유는 두마리의 용으로 조각하였는데 간략화되어 힘찬 모습을 잃고 있다. 견대는 원권의 연화문 안에 범자문을 돌려 대신하고 있는데 유곽과 견대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한편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원형두광의 보살들을 각각 1구씩 배치하였다.
종에 건융 24년(1748년) 기묘춘 당진 영랑사 금종(乾隆二十四年己卯春唐津影浪寺金鐘)이라는 명문이 있고 화주 시주인 공인들의 이름이 하대쪽에 빙둘러 기록을 하고 있다. 일본 침략시 경찰에 빼았겼을 당시 주지 취암스님의 의지로 되돌려 왔다고 한다.
2010.04.13 |
첫댓글 쉽게 접하는 산사의 구도라 옆에서 보던 아이가 반룡사 아니냐고 합니다. 그만큼 익숙한 모습인 거지요. 어느님의 부도인지 대웅전 앞에서 자리 잡은 모습이 귀엽기까지 합니다만 대웅전 앞에 부도가 좀 색다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자그만하면서도 소슬한 느낌의 사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