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유산 답사기] (104) 함안 <13>
군북면 소재지에서 1032번 지방도로를 따라 방어산으로 가는 길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물 제159호 방어산 마애불(防禦山 磨崖佛)을 찾아가는 길은 8년 전에 생긴 마애사(磨崖寺)덕택에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1032번 지방도로와 갈라지는 영운 마을 입구 경전선 철도 작은 하천 옆에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정자와 고바위라고 부르는 높은 암벽이 있다. 인근 마을에 사는 조성훈(64세)씨에 의하면 생육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조려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고바위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낚시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쉼터로는 매우 안성맞춤인 곳이다.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있는 폐교된 하림 초등학교를 지나면 저수지 방향으로 콘크리트 도로가 길게 이어진다. 저수지 둑을 끼고 나선형 길을 우회하여 2km쯤 가면 마애사 주차장이다. 방어산 자락에 마애사 불사(佛舍)되기 이전에는 길이 불편하여 자동차 운행이 어려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편하지만 아기자기한 산길을 따라가면서 꽃도 만나고, 호수도 만나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지금은 차를 타고 빨리 지나가버려 호수와 계곡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반감되었다.
마애불을 안고있는 방어산(해발 530m)은 함안의 진산으로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산행지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어느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하든지 방어산과 마애불을 함께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애사 주지 스님의 말에 의하면 원래 450여년 전에 방어암(防禦庵)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던 곳에 1995년 중창 불사를 하였다고 한다. 경내를 둘러보면 조경이 깨끗하고 단정하게 되어 있고 극락보전, 종각, 산신각, 문화원, 요사채 등 7동의 절집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마애사 중창 공사가 한창일때 방어산 마애불을 찾아 가다가 절집을 짓던 현장소장을 만난 일이 있었다. 필자도 원래 건축공학을 전공했던 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건너편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영락없는 삼존불상(三尊佛像)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도 마애사를 지나 방어산 마애불 답사를 할 때는 예사롭지 않은 건너편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산행 리본들이 달려있는 산신각 왼쪽 나선형 오솔길을 약 500m쯤 쉬엄쉬엄 걸어가면 된다. 작은 암자 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암벽 아래로 나서면 방어산 마애불(磨崖佛:자연암석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새겨진 불상)이 인자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불상은 너비 약 7m, 높이 약 5m 되는 거대한 바위 면에 선각(線刻)한 마애약사삼존불(磨崖藥師三尊佛)이다. 바위 면의 부식으로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으며, 원래 발목 밑이 묻혀 있었으나, 발굴하여 대좌(臺座)까지 드러났다. 지금은 불상 앞면을 넓게 정리하였고 배례석까지 마련해 두었다.
중앙에 있는 본존불(本尊佛)은 오른손을 들어서 시무외(施無畏)의 인(印)이고 왼손은 가슴 앞에 수평으로 들어서 약 항아리를 받치고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별다른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의 두발형식)인데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를 표현하고 있으며, 백호(白虎)를 나타내었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졌고, 얼굴은 약간 타원형으로 길며, 그 위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다. 발은 발꿈치를 서로 맞대고 서 있으며 발 밑에는 앙련(仰蓮:연의 잎이나 꽃이 위로 솟은 듯이 표현된 모양)의 연화대좌(蓮花臺座)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모두 본존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서 있다. 왼쪽은 일광보살(日光菩薩)로 남성적인 강렬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月光菩薩)로 눈썹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 팔꿈치 옆에 새겨진 글씨가 「貞元十七年辛巳三月」이라 되어있어 통일 신라 애장왕(哀莊王)2년(801)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방어산으로 가는 산행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