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서 기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기사를 당시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구축해 보면 마치 두 복음서의 기록에 차이(충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 때문에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복음서 기사들을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대한 기록에 아무런 모순이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일치하며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 ‘주후’(AD)의 기원
지금 우리의 햇수 계산 방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원년으로 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을 ‘주전’(Before Christ: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이라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를 ‘주후’(Anno Domini: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라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연대 기술 방식은 주후 6세기 초에 로마에서 활동했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신학, 수학, 천문학 등에서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의 명령으로 주전과 주후 연대기를 만들었다.
사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의 연호(무슨 왕 몇 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로마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주후 284-305년 재위)의 즉위 연대를 기원으로 하는 마르티르(Martry)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연호는 부활절 연대기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박해했던 왕이었기 때문에 교황은 그러한 왕의 연호를 부활절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하여금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로마제국의 기원 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비교 연구하였고, 결국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754년 후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생각했다. 즉 로마제국이 주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ab urbe condita[도시(로마) 건설 이후]) 754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경과 고대 문헌을 연구한 후에 예수님이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는 A.U.C. 754년이 아니라 적어도 A.U.C. 750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 750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중대한 계산상의 착오를 일으킨 것이 후대에 사실로 드러나기는 했어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 연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주후’(AD) 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 연대기가 지금까지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3. 성경의 기록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이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기사를 분석해 보겠다.
마태복음 2:1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살아 있을 때에 태어나셨다. 헤롯 대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주전 4년에 죽었다. 이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Antiquities, 17.6.4). 특히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롯이 죽던 해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대 천문학자들은 주전 4년 3월 12일에 실제로 월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헤롯의 사망 연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정확하다. 결국 예수님은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셨다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2:16에 따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롯 대왕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헤롯이 듣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헤롯이 동방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이를 두 살 이하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그때로부터 약 1-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주전 6-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마태복음 2:22에는 이때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의 아들로서 주후 6년까지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스 때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제 누가복음의 기사를 살펴보자. 누가복음 2:1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일을 말하면서, 로마 황제 아구스도(Caesar Augustus, 주전 31년-주후 14년 재임)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물론 이 언급은 갈릴리에서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가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는지를 말함으로 미가서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경위를 설명하려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탄생연도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준다.
이어서 누가복음 2:2에는 이 호적등록령이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Syria)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이러한 호적등록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것은 주후 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신 것이 되어 마태복음의 기록(헤롯대왕의 죽음 이전)과 맞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년의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4. 해결책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비평학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왔다. 그들은 누가가 마태의 기록(예수님이 헤롯대왕 때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기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를 볼 때 누가는 예수님께서 헤롯 대왕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로서 주의 깊게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누가가(1:1-4) 당시에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것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누가복음 2:2의 “처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프로토스’가 잘못 번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first) 한 것이라”는 말은 원래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기 전에(before) 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뜻과 ‘전에’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4년경에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누가는 이때의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행 5:37) 이때는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주후 6년경에는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등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헤롯 대왕이 이미 죽고 헤롯의 세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고 유대는 헤롯 아켈라오스가 다스렸다. 그런데 호적등록령의 목적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고 따라서 각 지역은 별도의 세금을 걷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갈릴리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은 정황상으로도 옳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이들의 기록과 요세푸스의 자료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 6-4년 사이에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5. 그 밖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 날짜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 날은 고대 로마제국이 임의로 정한 날짜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황을 통해서 추정하건대 예수님은 봄에서 여름 사이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목자들이 날씨가 따뜻한 늦봄이나 여름에만 들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탄절에 특히 동방박사들이 많이 언급되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성탄 당일이나 그 직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때는 예수님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아마 몇 개월 후)라고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들이 세 개의 선물을 바쳤다고 해서 세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성은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복음서에 기록된 헤롯의 반응들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은 굉장히 많은 무리들(혹은 무리들을 대동한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