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383 (10권 9. 김홍신. 펌글)
다혜네 외가에 도착한 것은 점심 새참쯤 되었을 때였다.
마당 밖에 차를 세우고 뛰어 들어갔지만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방문을 죄 열어보기도 했다.
쏜살같이 달려온 자동차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쫓아와 낯선 나를 아래위로 훑어 보고 물었다.
"누굴 찾으슈?"
"다혜라고.... 이 집 외손녀인데.... 요즘 몸이 불편해서 외가로 요양하러 왔습니다."
"어떻게 되는 사람이오?"
"친구입니다."
"소식 못 들으셨소?"
"무슨?"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침 나절에 수술한다고 왼 식구들이 쫓아갔는데."
"어느 병원이래요?"
양쪽 발목에 힘이 쏘옥 빠져 달아났다.
아득하게 먼 곳으로 다혜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서울 큰 병원이라는데...."
"어딘지 모르세요?"
"말을 해야 무슨 병인지 어느 병원인지를 알지."
낙담을 하고 서 있는 나를 유심히 살피던 중년 사내, 농사꾼으로 뼈가 굵어 검붉은 살갗이 팽팽한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처녀, 예쁜 값을 하느라 고역인지 모르겠지만 낯색을 보면 오래 살 처녀가 아녀. 서울 물이 그렇지 뭐."
혼잣소리처럼 말하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순박한 그 농부를 한대 갈기고 싶었다.
시골 사람이 보면 멀쩡한 도회지의 여리여리한 여자들이 모두 병든 여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더구나 다혜처럼 희디흰 살결에 커다란 눈, 잘록한 허리와 차가운 표정을 보면 죽을병 든 환자 취급을 받을 염려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내 가슴을 위로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발악인지 모른다.
나는 무조건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 전화기를 잡았다.
주인 없는 집이지만 급한 마음에 전화기를 잡은 것이었다.
다혜네 집의 전화 받는 여자가 퉁명스럽게 강남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과가 어떠냐, 무슨 병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내게 도리어 그것도 모르면서 전화를 했느냐고 투덜거렸다.
나는 외가 쪽으로 오라버니 되는 사람인데 지금에서야 소식을 들었노라고 능청을 떨었기에,
그만큼이라도 말대꾸를 받을 수 있었다.
집 지키는 여자는 병원 이름만 알았지 무슨 병인지 왜 수술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집안에서 숨기느라고 일부러 알려 주지 않은 듯싶었다.
부엌에 들어가 냉수 한 바가지를 퍼마시고는 남은 물로 얼굴을 축였다.
정신 없이 달려온 보람이란 고작 다혜가 수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달려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강남병원, 혜련이네 병원, 시설도 좋고 의료진도 최상이라고 했다.
혜련이는 처음부터 다혜의 병명을 알고 있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다혜의 병이 수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던 게 확실했다.
내게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도 그 때문이란 게 이제 확연해진 것이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다혜를 가리켜 연적이라고 했다.
수술하고 있는것도 지켜보고 있겠지.
설마 그렇게 앙심을 품지야 않겠지만 다혜의 불행에 대해 무관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또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이 무슨 팔자란 말인가.
기대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골길을 흙먼지 피우며 내달리는 게 몹쓸 짓이라는 걸 알면서 나는 되짚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포장도로와 연결되는 삼거리 다리 못 미처쯤에서 자동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펑크였다.
이십여 리 길을 무리하게 내달린 탓이었다.
땡볕에 차를 세워놓고 타이어를 갈 수밖에.
온몸은 땀범먹이 되었고 손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하필 이럴 때 타이어가 속을 썩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음이 급하니 타이어 갈아끼우는 일도 더디기만 했다.
개울가에는 꼬마들의 물장구가 한창이었다.
빨래하는 아낙네들도 물장난을 했고 그물질을 하는 장정들도 거의 반나였다.
빨랫비누를 빌려 손을 씻고는 머리를 물속에 처 박았다.
개울 바닥의 모래 한 알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개울이었다.
두 손을 모아 또 물을 실컷 마셨다. 정신이 좀 도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하면 장정들마냥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해질 녘까지 노닥거리고 싶은 풍경이었다.
서울 가는 길은 왜 그리 먼 것일까.
달리고 달려도 오던 때보다 멀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축지법을 익혀 한달음에 당도하여 다혜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수술하러 들어가며 다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누구를 생각했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던 길에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경찰이 오던 길엔,
마치 아까 참에 내달렸던 내 차를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나는 두 번이나 추격을 받았고 사정을 하느라 또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가까스로 병원 마당, 그 널찍한 병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병원마다 찾아다닐 수가 없어서 원무과에 들러 다혜의 입원실을 확인했다.
다혜는 아직 회복실에 있었다.
내가 회복실 복도로 들어서자 다혜 어머니가 재빨리 내 등을 떠다밀었다.
"나랑 얘기 좀 해요."
눈물 마른 얼굴이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꽤 부어 오른 낯이었다.
다혜 아버지와 몇몇 나이 든 남자들이 안쪽 의자에 넋 놓은 체 기대 앉은 것도 보였고,
친척들처럼 느껴지는 여인네들도 별로 좋은 기색들은 아니었다.
아주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렇잖아도 연락하려든 참였는데... 하도 경황이 없어서 못했네요."
"어떻게 된 겁니까?"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난감했다.
"제 팔자가 그런 걸요. 진작에 손을 썼으면 애간장을 이리 말리지는 않았을걸. 미련한 것이 참는 게 능사인 줄 알고 버티다가...."
"수술은요?"
병명을 덥석 묻기가 뭣해서 수술 경과부터 물었다.
"아직은 모르죠. 깨어나 봐야 안대요. 집도한 의사 말로는 그래요. 너무 오래 눙쳐두어서 장담할 일이 아니라고만 해요."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몰랐나요?"
힐책하듯 말했다.
힐책할 입장이든 아니든 지금 그걸 생각할 겨를이 아니었다.
"진찰 결과가 나오기 전만 해도, 본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병명은요?"
나는 물어놓고 숨을 죽였다.
제발 끔찍한 병명이 아니기를, 급성 맹장쯤 되는 헐거운 병명이기를 바라며 물었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었다.
다혜 어머니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제 숨길 게 뭐가 있겠어요. 수술도 안 받겠다는 걸 강제로 데려다 눕힌 걸요. 의사가 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어요."
"무슨?"
나는 여전히 숨을 멈추었다.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암이래요."
그러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 하나님.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혜 어머니는 한참을 흐느껴 울기만 했다.
그녀가 힘 주어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내눈가에도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침통한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키운 딸자식인데 저리 서럽지 않으랴.
"다혜가 이걸 꼭 전해 주라고 했어요. 그 정신에도...."
그러면서 그녀는 또 어깨를 파르르 떨며 울었다.
속울음이었다.
드러내 놓고 울지는 못하는 어머니 심정이 지금 어떨까.
그녀가 내민 작은 상자, 포장지에 쌓여 있는 상자는 어쩌면 다혜의 유품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져 있었다.
수술하기 전에 한 번만 마음 편히 얘기를 나누어만 봤어도 이리 가슴이 메어지진 않을 터인데.
상자를 풀 수 없었다.
그녀는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또 내 손을 꼬옥 쥐었다.
"내가 서두르지 않은 게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한때는 나를 원망했을 줄도 알아요.
만약에 결혼시켜 놓고 이리됐어 봐요.... 세상일은 모르니까 혼사가 이루어졌으면 또 이 지경까지 안 갔을지도 모르지만...."
여간해서 눈물을 보일 여자가 아닌데도 딸자식의 모습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나 우리 총찬이 학생을 데려다 달라고 사정했었어요.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고 마음에 걸리고.... 그 상자는 미리부터 준비를 해 뒀었는지 시골 외가에서부터 들고 온 거예요.
제 생각에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을 했었는지.... 뭔지는 모르지만 아껴 줘야 해요."
"다혜는 죽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살아납니다. 반드시요."
"그러면 오죽이나 좋아요."
"살아납니다. 안 죽습니다. 의지가 강해서 그까짓 암쯤은 견뎌냅니다. 다혜가 누군데요?"
내 목소리가 떨리며 점점 커져간다는 걸 알았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가 곁에 있으면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었다.
병원이 떠나가도록 악을 쓰고 싶었다.
김포 공항 그 넓은 곳에서 사랑한다고 악을 썼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많은 사람이 이상한 광경을 보며 피식거리며 웃었지.
이놈의 병원을 불질러 버릴지도 몰라.
다혜를 살려내지 않으면 이놈의 병원을 없애겠어.
그까짓 암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놈의 병원이 무슨 가치가 있어.
내가 부르르 떨자 이번에는 다혜 어머니가 내 손목을 조여잡았다.
"침착해야 돼요. 다혜를 위해서라도."
내 성깔을 익히 알고 있어서 하는 소리였다.
나는 손목을 빼고 말했다.
"다혜를 만나게 해 주세요."
"그래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말은 못 나눌 거예요."
풀지 않은 상자를 다시 받아든 다혜 어머니가 앞장서 회복실 문을 열어 주었다.
역한 마취제 내음이 진동했다.
간호원이 비켜섰다.
다혜는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 다혜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했다.
숨소리가 약했다. 아직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푸른 빛깔이 돌 만큼 하얀 낯빛이었다.
손을 잡았다. 야윈 손가락이 유난히 길어보였다.
반지 끼었던 자국이 차라리 짙은 피부 빛깔이었다.
그녀가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는 반지가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잠깐만 모두 나가 주시겠어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울먹이는 음성이었다.
간호원이 아니 된다는 눈치를 보내자 다혜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다혜는 살아납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내 말에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창 밖을 쳐다보고 눈부신 채, 창 밖의 찬란한 햇살을 내 눈과 내 가슴과 내 심장에 받아넣은 채 다혜에게로 다가섰다.
그녀의 입술에선 진하디진한 마취제 내음뿐이었다.
나는 다혜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내 생명의 반을 잘라 다혜에게 주십사 하고.
이건 마지막 입맞춤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의 입맞춤이다.
다혜, 넌 살아나야 한다.
하늘이 두 조각나고 천하가 뒤바뀌더라도 살아나야 한다.
좀체 입술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도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긴 입맞춤이었다.
생글생글 건강할 때도 우린 이렇게 기인 입맞춤을 결코 해 본 적이 없었다.
차가운 입술, 말없는 입술,
살포시 감은 눈, 작고 고른 숨소리,
반듯하게 누워 있기만 한 다혜.
아직은 여리디여리게 맥박이 뛰고 있었다.
'하나님.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