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은구곡 지도
[갈은구곡&남군자산 옥녀봉] 지도
갈은구곡 위치도
충북 괴산 갈은구곡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21호(4월2일~8일자)에 실린 기사 (입력 2013-04-01)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구곡(九曲)이란 게 그렇다. 자연 그대로의 계곡(溪谷)에 성리학자의 삶과 사상이 어우러진 산수문화의 공간이다.
구곡은 세 가지 자연 요소가 있다.
명경지수 같은 맑은 물이 그 하나이고, 기암(奇岩)이 또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가 소나무다. 거기에 고송(古松)이라면 금상첨화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갈론리 갈은구곡(葛隱九曲)은 구곡의 세 가지 자연 요소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괴산수력발전소 옆을 따라 차량으로 10여분 정도 접어들면 갈론 마을이 나오고, 이 곳에서 걸어들어 가는 골짜기가 바로 신선이 산다는 갈은구곡(葛隱九曲)이다.
1곡 갈은동문(또는 장암석실)에서 갈천정(2곡), 강선대(3곡), 옥류벽(4곡), 금병(5곡), 구암(6곡), 고송유수재(7곡), 칠학동천(8곡), 선국암(9곡)의 2㎞ 남짓한 갈은구곡은 속세의 변화에도 꿈쩍하지 않은 곳이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전덕호(1844~1922)가 설정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 갈은구곡은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자(1130~1200)가 만년에 은거하며 설정한 중국 푸젠성(福建省) 무이구곡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지닌 곳은 아니다.
갈은구곡은 좁은 계곡에 형성한 평범한 구곡인 듯하지만, 이만한 선계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신선과 학이 자연과 벗 삼아 잡다하고 유한(有限)한 속세를 떠나 이상향에 머물고자 했던 갈은구곡은 일곱 마리의 학이 노닐고 신선이 한가로이 바둑을 두는 그런 곳이다.
3곡 강선대(降僊臺)에 이르면 신선이 왜 이곳에 내려왔는지를 보여준다.
암벽에 세로로 새겨 놓은 한시가 선명하다.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진짜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신선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되리오/ 참으로 이상도 하지,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은/ 가슴 속 상쾌해져 절로 속된 마음 사라진다네. (이상주 중원대 겸임교수 역)
이 교수는 "강선대에 오면 신선의 존재를 실감한다. 가슴 속이 상쾌해져 속기(俗氣)가 싹 가시는 데 이런 경지가 신선이 누릴 수 있는 경지"라고 설명했다.
갈은구곡은 9개의 곡마다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한시를 암각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전덕호가 본뜬 중국 무이구곡이 9개의 곡마다 한시를 새겨 놓은 것처럼 갈은구곡 역시 한시로 구곡을 설명하고 있다.
구곡 암벽에 한시를 음각한 곳은 국내에서 갈은구곡이 유일하다.
암각문을 통하여 다양하고 특이한 한자 서체를 연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희귀한 문화유적이다.
아쉬움도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갈은구곡에 한시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없다.
갈은구곡은 강선대에 이어 구슬 같은 물방울이 흐르는 절벽(玉溜壁), 비단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錦屛), 거북 모양 바위(龜嵒)를 지나 고송유수재에 닿는다.
갈은구곡의 상류에 위치한 ‘고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란 뜻의 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의 풍광은 갈은구곡의 백미다.
7곡 고송유수재 곁에는 8곡 칠학동천(七鶴洞天)과 9곡 선국암(仙局嵒)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일곱 마리의 학이 노닐고, 신선이 강선대에 내려와 9곡 선국암에서 자연과 벗 삼아 한가로이 바둑을 두는 곳, 그곳이 갈은구곡이다.
갈은구곡은 괴산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또 하나의 명품 길 '충청도 양반길'의 주요 코스다.
괴산군은 전국 명소인 인근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옛길에서 출발해 갈은구곡~화양구곡~선유구곡~쌍곡구곡~산막이옛길을 잇는 9개 코스 85㎞의 충청도 양반길을 조성하고 있다.
3코스 일부 구간까지 1차 사업은 2013년3월30일 개장식을 열고 일반에 본격 개방한다.
임각수 괴산군수는 “충청도 양반길은 전국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만들 것”이라며 “갈은구곡은 그 중심에 선 천혜의 자연경관이다”고 말했다.
갈은구곡 인근에는 1957년 국내 기술진이 설계·시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용 댐인 괴산수력발전소가 있고, 괴산호를 따라 조성한 산막이옛길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갈론마을에는 토종닭 백숙과 매운탕을 맛보고 민박도 할 수 있는 식당 겸 민박집이 몇 군데 있고 최근에는 펜션이 들어서면서 관광지로서의 면모도 갖춰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