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지리산 천왕봉이 있는 산청.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서너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산청은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수도권에서 아침 일찍 서두른다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코스로 큰 무리가 없다. 산 높고 골 깊은 산청은 자연이 내린 선물을 고루 간직한 축복 받은 고장이다. 지리산과 경호강을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진주, 합천, 거창, 함양, 하동땅에 둘러싸여 있어 어디서 오든 쉽게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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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목화시배지. | 산청땅을 밟았다면 먼저 단성 나들목에서 가까운 문익점면화시배지부터 찾아보자.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공민왕 12년(1363)년 중국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귀국길에 면화씨를 붓통에 넣어와 장인 정익천과 함께 시험 재배해 전국에 퍼트린 발원지다. 면화의 역사와 베틀, 물레 등을 전시해놓은 목면전시관과 면화 시배지에서 목화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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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고향인 겁외사. | 시배지에서 약 1km쯤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을 남긴 현대불교의 선승인 성철 스님(1912-1993)의 생가터(겁외사)가 있다. 겁외사(劫外寺)는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 경내에는 대웅전과 선방, 누각, 요사체 등이 있다. 성철 스님의 유품을 모아놓은 포영당(泡影堂)을 비롯해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아호를 따서 이름 붙인 ‘율은재(栗隱齋)’, 옛날 생활용품과 김호석 화백이 그린 ‘다비장 가는 길’이 놓여 있는 안채 등 성철 스님의 검소하고 단촐한 삶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스님의 거처였던 해인사 백련암 염화실을 재현해 그가 쓰던 낡은 책상과 등받이 의자, 삿갓 등을 옮겨놓은 안채의 왼쪽 방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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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독특한 모습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경호강. | 겁외사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시천면 쪽으로 가면 고가(古家)들이 즐비한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남사마을은 논농사를 주로 하는 경상도 내륙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시멘트 블록 대신 흙과 돌로 쌓아올린 담장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예담은 ‘옛담’에서 따온 이름으로 옛날 선비의 올곧은 정신과 예절을 따르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마을을 휘 둘러보면 정겨움과 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마치 고향에 온 듯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올라가고 기와로 마무리한 지붕과 몇 채의 초가는 하나같이 소박하다. 고가와 흙담 말고도 이 마을에는 껑충한 고목들이 눈길을 끈다. 수령 700년을 헤아리는 매화나무, 630년 된 감나무, x 자로 뻗어 올라간 회화나무 등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냇물(사수당)과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도 볼만하고, 마을 입구에 있는 물레방아와 방앗간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남사마을에서는 도시민들을 위해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놓고 있다. 서당체험, 전통혼례체험, 천연 염색체험, 딸기 수확하기, 꿀벌치기, 감자 구워먹기, 민물고기 잡기, 굴렁쇠 돌리기, 제기차기, 캠프파이어, 1일 농사꾼, 돌담길 걷기, 미니 래프팅, 쥐불놀이 등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며 고가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체험 및 숙박 문의: 남사예담촌 하만근 촌장(055-972-7107, 010-8003-8835), 박태진 총무(016-9620-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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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 | 남사예담촌 옆으로 난 1001번 지방도로를 타고 10분쯤 올라가면 한 쌍의 삼층석탑(보물 72호, 73호)이 나란히 서 있는 단속사터에 닿는다. 폐허로 변한 단속사터에는 신라 중기의 3층석탑 2기 외에도 당간지주가 있고 매화나무로서는 가장 오래된 정당매가 있다. 지리산 자락이 빤히 바라보이는 절터에 서면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절 이름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들러봄 직하다.
단속사터에서 나와 20번 국도를 타고 시천면 소재지로 간다.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실천 도학자로 알려진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유적지에 잠시 들른다. 이곳에는 선생이 강학하던 산천재(山天齋)를 비롯해 신도비, 선생의 묘소, 남명기념관, 남명석상, 세심정(洗心亭), 그리고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61세 때 지리산 자락의 덕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지은 서재인데, 단정하고 아담한 모습에 기둥마다 남명 선생의 시구가 적혀 있고 현판 옆으로는 세 개의 인상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 그림과 소나무 아래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그림, 그리고 개울에서 귀를 씻는 선비를 보고 농부가 그 물을 소에게 먹이지 않으려고 다른 곳으로 끌고 가는 그림이다. 서원 한쪽에는 남명 선생의 문집이 보관돼 있는 작은 집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선생의 묘소가 있다. 해마다 8월에는 덕천서원에서 남명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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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기의 3층 석탑 2기가 있는 단속사지. | 이제 발걸음을 멈추고 어디로 갈 것인지 지도를 다시 본다. 여기서 도로는 지리산으로 뻗어 있다. 두 갈래 길이다. 덕천강(59번 국도)을 따라 밤머리재를 넘어 산청읍내 쪽으로 간다. 그 중간에 있는 내원사와 대원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워낙 고찰인데다 이 두 절은 그 옆에 깊은 계곡을 끼고 있어 더위를 쫓기에 그만이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이 아닌가. 먼저 내원사에 들른다. 지리산 품안에 안긴 내원사는 고적하기 이를 데 없다. 경내에 남아 있는 석남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021호)과 내원사삼층석탑(보물 1113호)을 둘러본다. 절 한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거울처럼 맑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이 물은 내원사에서 그 아래 대포숲과 송정숲에 이른 다음 덕천강과 만난다. 숲과 계곡을 거느린 대포숲과 송정숲은 자연발생 유원지로 언제 봐도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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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마을에서 본 황매산. | 내원사에서 3km 거리, 역시 지리산 자락에 안긴 대원사도 절집 특유의 그윽함이 묻어난다.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다. 대원사로 가는 길은 청정 자연과의 만남에 기분이 좋다. 세신대, 용소, 무재치기폭포, 선녀탕, 옥녀탕을 둔 대원사 계곡은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계곡 평평한 바위마다 때 늦은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30여 리에 이르는 긴 계곡 중에서도 새재와 무재치기폭포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무재치기 폭포는 지리산에서 보기 드문 폭포로 물줄기가 쏟아지면서 바위에 부딪쳐 만드는 무지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직 여름 휴가를 못 다녀온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쯤 머물러도 좋다. 50여 호의 민박집이 있는 유평마을에 짐을 풀면 된다. 취사는 노루목에 있는 야영장에서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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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예담촌의 초가 앞마당에 가을이 익고 있다. | 밤머리재를 넘는다. 길은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자동차가 힘겨워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산청읍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읍내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거울같이 물이 맑다’하여 이름 붙은 경호강이다. 읍내를 가운데 두고 힘차게 흘러가는 경호강은 산청읍과 생초면, 단성면, 신안면을 두루 적시고 흘러간다.
경호강이 있는 읍내에서 차황면 쪽으로 15분쯤 달리면 산청과 합천 경계에 걸쳐 있는 황매산(해발 1,108m)을 만나게 된다. 태백산맥의 장쾌한 기세가 남으로 치닫다가 머문 곳에 우뚝한 봉우리를 만드니 다만 신비할 따름이다. 황매산은 사철 아름답다. 봄철 산자락마다 울긋불긋 수놓은 철쭉꽃은 화려하기 그지없고 여름 참나무숲, 가을 억새, 겨울 눈꽃 등 언제 찾아도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 산 중턱 800미터 능선상에는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했던 영화주제공원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다. 영화는 끝났지만 원시부족 가옥과 풍차, 주인공의 캐릭터를 볼 수 있다. 최근 흥행에 성공했던 ‘태극기 휘날리며’도 황매산 정상 부근과 합천의 세트장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특히 산 북서쪽 봉우리(떡갈재 주능선)에 오르면 그 아래로 합천호가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합천호는 합천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다. 등산로는 여러 가닥이 나 있다. 상법마을-배내미봉-천왕재-정상-임도교차점-상중마을, 상법마을-천왕재-정상-임도교차점-신촌마을, 신촌마을-영화주제공원-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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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중턱의 영화주제 공원. | ☞2박 3일 여행 코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단성 나들목-면화시배지-겁외사-남사고가마을(농촌체험, 1박)-단속사지-남명조식유적지-덕천강-내원사-대원사-밤머리재-산청읍(1박)-경호강(래프팅)-황매산(영화주제공원).
☞여행수첩(지역번호 055)=대전~통영간 고속도로-단성 나들목-사거리 우회전-면화시배지-겁외사-남사예담촌-덕천서원 순으로 둘러본다. 단성나들목-시천 덕산(20번 국도)~삼장면 명상(59번국도)~대포마을~내원사-대원사. 수도권에서 산청까지 4시간 소요.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산청행 시외버스 1일 22회 운행, 3시간30분소요. 동서울터미널에서 6회 운행, 3시간 10분소요.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5분 간격(06:00~21:00)으로 운행하는 산청행 버스 이용. 40분 소요.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야로면 분기 로타리-거창방면 24번국도-봉산대교-1089 지방도로 하금리-황매산.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산청나들목-59번국도-차황 방면-황매산 영화주제공원. 황매산 주변에는 마땅한 민박시설이 없다. 산청읍내의 산청파크장(973-6840), 삼성장(973-2471), 영남장(972-6766) 등을 이용한다. 산청나들목에서 진주 방향으로 10분 거리인 외송마을에 있는 홍화원식당(973-9555)은 다양한 쌈채소에 푸짐한 오곡밥을 내놓는다. 주인 김경자(여.47세) 여사가 귀히 여기는 홍화주도 별미다. 산청군 문화관광과(970-6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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