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오래된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경향과 마찬가지로,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은 단지 그것이 오래되고 정착된 것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한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고 경고한다.
바울 사도가 자기 도취와 교만과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부모에 대한 불순종’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합당한 부모의 권위에 거역하는 것은 힘의 표시가 아니라 인격적 결함의 표시다. 거듭 말하지만, 청교도가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했을 때, 그들의 목표는 하나의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지 기존 사회를 해체하고 각 개인의 독자적이고 파편화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청교도 신학자는 “‘각 사람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신은 우리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사악한 언사”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사악한’이란 말이 사회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이 짐승처럼 행동할 때, 교회는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실과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이웃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국가와 개인 차원의 전략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인이 관여하고 취할 수 있는 많은 방식과 견해가 있지만, 그 목적만큼은 반드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수도에서 일어난 일을 화제 삼기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한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고 찾아보지 않는 사람은 노인정책을 수립하라고 정부를 성토할 자격이 없다. 일상적인 환경에서 궁핍에 처한 이웃을 보면서도 그들을 돌보지 않거나 연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정부의 개입이 과다하거나 부족하다고 항의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과 노인을 돌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 점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자문해야 한다. 결국 예배하기 위해 모이고 섬기기 위해 흩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의 교회가 아닌가?
요컨대, 우르시누스에 따르면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다섯째 계명을 범한다.
첫째, 자녀에게 필요한 양육이나 부양을 하지 않거나 방
종과 사치로 기르는 것, 자녀를 사고에서 보호하지 않거나 인내와 친절의 습관을 가지도록 가르치지 않는 것, 자녀를 교육하지 않는 것, 자녀를 나태하고 반항적으로 양육하거나 잘못을 지적해 자녀를 바로잡지 않는 것, 그리고 의무감이나 죄에 대해 필요 이상의 가혹함으로 자녀를 체벌하거나 지나친 엄격함과 잔인함으로 다루어 자녀의 마음에 불만이 생기게 하는 것은 부모가 이 계명을 위반하는 일이다.
둘째, 교사와 교직자는 학생을 성실히 가르치고 지도하며, 적절하고 올바른 훈계로 그들을 다스리고 교육할 의무가 있다.
셋째, 법과의 직무는 시민의 복종과 외적인 예우를 받는 것, 십계명에 순종하는 자를 변호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처벌함으로써 십계명의 교훈을 시행하는 것, 사회 질서유지를 위해 어떤 원칙을 법률로 명시하는 것, 자신이 규정한.법률을 시행하는 것과 같은 항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 질서에 필요한 원칙을 법규화하지 않거나 “억울하게 당할 수 있는 부당함으로부터 무죄한 사람을 변호하지 않는 것”은 법관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극단에는 억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민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것, 죄를 범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 혹은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중형을 부과하는 것이다.”
주인의 의무는 “불법적이거나 불가능하거나 강압적이거나 불필요한 일을 시키지 않고, 노동에 타당한 보수와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며, 경우에 합당한 규율로 고용한 사람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이다. 또 우리시누스는 칼빈과 유사한 충고를 하는데, 그는 당시에 상당히 진보적이고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음직한 명력을 제안한다. “채찍과 사료와 무거운 짐은 당나귀에게 해당되며, 일꾼에게는 빵과 권징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일꾼을 게으르고 나태하고 방종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필요한 음식과 임금을 주지 않거나,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그 가족의 원성을 사게 된다면, 그 주인은 다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십계명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 마이클 호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