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
윤정현 신부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오구야, 아빠 새끼야. 너는 나를 만날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만, 나는 주님을 그렇게 반기지는 못하였구나. 너는 내가 부를 때 마다 신나게 달려오지만, 나는 주님께서 부를 때마다 듣지 않은 때도 많았구나.
너는 먹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나는 주님의 몸을. 그렇게 간절히 바라지는 않았구나.
너는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지만, 나는 주님을 그렇게 따르지는 못하였구나.
너는 나와 함께 산책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만, 나는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힘겹기도 하구나.
너는 수상한 자의 발걸음에도 짖지만, 나는 주님의 양 떼를 그렇게 지키지는 못하였구나.
너는 언제나 내 주위에 머물지만, 나는 주님 곁에 많이 머물지 못하였구나.
너는 내 방 앞에서 밤새 지키지만, 나는 주님을 밤새도록 지킬 마음이 없었구나.
너는 내가 씻긴 뒤에는 새로 태어난 듯 날뛰지만, 나는 고해성사 후에도 새사람이 되지 못하는구나.
너는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먹지만, 나는 주님 앞에 그렇게 낮추지 못하였구나.
* 오구는 제가 키우는 진돗개입니다.
제가 이놈을 ‘아빠 새끼’ 라고 부르니, 신자 분들이 ‘신부님 새끼’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부님의 새끼인지, 신부님이 새끼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 ‘두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