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
박후기
아스팔트 도로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집중호우 때 생긴 틈으로 물살이 파고들었고, 아스팔트를 떠받치고 있던 흙과 자갈이 떠내려갔다. 아스팔트 포도는 한 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자동차는 그곳이 바닥인 줄 알고 달렸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대륙은 맨틀 위에 떠 있다. 나는 가끔 발 아래가 의심스럽다.
저수지 중앙은 얼지 않았다. 저수지가 숨쉴 때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물고기들은 얼음장 밑에서 행복했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산다.
고상돈은 매킨리봉 크레바스에 빠져 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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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기 / 1967년 경기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로 신동엽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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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 / 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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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2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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