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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들은 희망보다는 남 죽이기 식뿐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람도 싫고 말도 싫고 알고 있다시피 최악의 선거입니다. 그래도 선택해야 한다니 이처럼 불행한 일이 다시는 없기만을 바랍니다.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2주 남짓뿐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 그것은 나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지금의 사람이 미흡하다면 길러야 합니다. 사람을 기를 만한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여태 자기 자리만 지키기에 몰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동차는 자꾸 신형이 나오는데 흘러간 옛노래만 틀고 있는 기사를 언제까지 감당해야 할까요? 승객을 무시한 기사는 바꿔줘야 하지 않나요?
여전히 춥기는 한데 해는 나날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어도 햇빛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요. 사람은 늙지만 세상은 돌아간다 그 말입니다. 거실로 들어오는 햇빛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집니다. 그나저나 3년째를 지나고 있는 이 코로나라도 빨리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까짓것 이제는 그냥 같이 살자 하는 식으로라도 끝나기를 바랍니다. 오는 봄에는 그 소식이라도 들려오기를 기다립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요즘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봅시다. 새롭고도 복된 한 주를 기대하며, 건강하세요. ^&^
2022년 2월 19일 김종우 목사 드림
<355>
여성이 팀으로 나와 첩보극을 진행한 것은 기억하기로 미녀삼총사 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오랜만에 여성만으로 구성된 팀 활극을 본 셈입니다. 그 점이 특이사항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 팀이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점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부정적임에도 이 극에서는 함께 적을 타파해내는 우군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한 팀으로 엮어져야 했는지 아주 잘 짜져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만날 때는 서로 적인 줄 알고 격한 충돌을 하기도 하는데 따지고 보니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됩니다. 잘 알듯이 돈이 목적이라면 아마도 그들 사이에서도 배신이 껴들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인류 구원이라는 대의가 서로에게 통합니다.
보태어 말한다면 격렬한 싸움 중에도 여성의 가족애는 남성이 나타내는 가족애와는 조금 다른 맛의 애틋함을 보여줍니다. 이 첩보원들, 대단한 실력자들 사이에 한 평범한 여성이 역시 어쩔 수 없이 껴들게 되어 극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도망가고 싶은 상황입니다. 절대 그런 지경에 어울리지 않는 신분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린 것입니다. 빠지고 싶은데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가족의 목숨까지 극한에 몰리게 됩니다. 실제 사건이라면 상황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그 사람은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힘든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동창회라도 가질 듯이 끝나지만 과연 그들과 서로 만날까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럴만한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처음 첩보극이 나올 때는 국가 간의 경쟁이고 싸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특히 진영 간의 대립이 첨예하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으니 말입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007 위기일발’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원제도 ‘From Russia with Love'였습니다. 러시아는 구소련이지요. 그렇게 첩보극이 유행하면서 차츰 이야기가 세계화됩니다. 그리고 땅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아니라 돈을 차지하려는 싸움으로 바뀌어갑니다. 땅은 움직이지 않지만 돈은 마음대로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세계 어디서나 사용 가능합니다. 그리고 대적도 한 나라의 적이 아니라 인류의 적으로 확대됩니다. 돈은 누구나 어느 나라나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단한 무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상상의 산물이지만 과학의 발달이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정말 나타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가공할만한 무기입니다. 앉아서 공중에 날고 있는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한 도시를 암흑으로 덮으며 모든 금융거래를 중단시키고 혼란시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단 전자 상거래나 금융거래가 혼란에 빠지면 세계적인 파탄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는 사태로 한방에 끝나는 일은 아니지만 극심한 혼란에 빠져 그 고통을 한동안 견뎌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딴 얘기가 된 듯싶은데 그만큼 강력한 무기입니다. 악의 무리에게 넘어간다면 세상 돈을 모두 가지려 하겠지요.
‘손바닥만한 드라이브 한 개’ 그것이 주인공입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눈들을 부릅뜹니다. 목숨을 겁니다. 한 쪽에서는 그것으로 장사하여 돈을 챙기려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 위험을 알기에 찾아서 없애려 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느냐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느냐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그에 따라 주변에서 사람들이 죽음으로 몰립니다. 유능한 정보원들이 쫓아다닙니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악의 무리에게 넘어가면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모두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뛰다가 협력하기로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나라는 달라도, 인종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살아야 하는 목적은 같습니다. 그래서 한 마음 되어 싸웁니다.
수자로만 된 영화 제목은 매우 드뭅니다. 생각나는 것은 ‘300: 제국의 부활’이란 영화입니다. 보듯이 부제가 따라붙습니다. 그냥 ‘300’이 아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수자로만 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실제 여성 스파이의 코드네임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을 따서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을 기리며 또한 그와 같은 활동을 하고 싶어서 붙였을 것입니다. 그 때는 한 사람의 활동이었지만 여기서는 팀으로 활동합니다. 물론 그만큼 활동범위가 매우 커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당시는 첩보 활동에 그쳤겠지만 오늘은 대단한 활극까지 펼쳐야 합니다. 격이 다릅니다. 어쩌면 그렇게 여성의 활동도 대단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 속에 감초처럼 들어가 있는 내용은 바로 ‘배신’입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요소 중에서도 매우 강력합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이라니, 얼마나 충격이겠습니까? 또 하나 이런 검은 돈 속에는 권력자가 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큰돈을 일반 사람들이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동네 조폭 정도 가지고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액수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재미를 증폭시켜줍니다. 영화 ‘355’(The 355)를 보았습니다.
질문 2.
성경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나옵니다. 혹시 그런 나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창 2, 3장에 나오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뒤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로 간 것이지요? 반면 생명나무는 계 22장에 다시 나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왜 사라진 것이지요?
처음 성경을 읽은 때가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나가 신앙도 교회도 하나님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신앙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대상이 또한 여럿이라는 정도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고 몇 달 후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선배를 따라 교회를 옮겨 교회 주일학교 반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단 맡아 하라고 부탁을 해서 감히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입니다. 사실 배워야 하는 처지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라 하니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선배의 간청이고 일단 아이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맡기로 하였습니다. 가르치자니 우선 나 자신부터 배워야 하고 성경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빠르게 일독하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넘어가며 진행하였지요. 마음에 닿는 좋은 격언 같은 말씀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신상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구약성경을 읽기는 몇 년 지나서였습니다. 읽는데 아마도 반년은 족히 결렸던 듯합니다. 반 이상은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지나갔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한 번은 읽었다는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지요. 물론 그냥 이야기책처럼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성경의 앞부분 ‘창세기’는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입니다. 구태여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 많이 아는 내용도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하와)의 이야기나 선악과 이야기 정도는 설령 불신자들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서도 왈가왈부하는 말들도 있습니다.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는 왜 만들어서 사람으로 죄 짓게 하셨는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이 그 선악과로 비롯되었기에 말입니다. 그것만 없었다면 우리 인생길에 이런 고생은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아직 한참 모르던 때 교회를 다니면서 저 또한 그런 생각을 오래도록 가졌습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왜? 왜?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찌 다 이해하겠는가, 생각하면서 그냥 미루어두기만 했습니다. 그 선악과를 사과 열매로 또는 복숭아 열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 성경을 수십 번 읽으면서도 선악과나무는 숙제였지요. 그냥 가슴에 묻어둔 옛날이야기입니다. 나이 40이 되어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여전히 선악과나무는 그냥 나무였습니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어겼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불순종이 초점이 되었습니다. 나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까짓 나무열매 하나 먹었다고 그 대가로 죽음을 형벌로 내리시다니, 너무 과한 처벌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는 불손한 태도라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신앙하며 또한 목회도 하였습니다. 하기야 성경에 창세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설교를 창세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성경을 많이 읽어도 그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시대는 어느덧 20세기를 끝내고 소위 밀레니엄이라 하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21세기는 많은 것들이 보다 빠르게 변화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대한민국 우리나라도 이전 세기와는 매우 다르게 도약하며 달리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인생 후반 놀라운 변화를 우리 하나님이 만들고 계셨습니다. 그 은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이루시려는 새로운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 가르치고 훈련시키시며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받은 은혜대로 정리하여 같이 나눌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무리 읽고 배우고 연구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하나님이 그렇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하늘에 신이 하나님만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훼방하는 존재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시고자 해도 일단 그 자가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가 알게 되면 하나님이 하신다고 해놓고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됩니다. 한다 하면 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방해한다고 해서 할 일을 하지 못하시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일단은 조처를 미리 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암 3 :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래서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기까지는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훼방할 수 없겠지요.
성경에는 지나간 역사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잘 아는 대로 구약성경은 일단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단순한 옛날이야기지만 이 또한 성경에 기록해두신 목적이 있습니다.(고전 10 : 1 - 11) 그리고 과거든 현재든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님 백성이 지키고 살아야 할 계명 곧 율법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쉽게 알아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구태여 감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서는 들어도 읽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 29 : 10 - 11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 선지자나 선견자나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목자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들도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봉한 책처럼 말이지요.
성경에는 분명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비밀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영원히 풀리지 않는 비밀이라면 누가 읽겠습니까? 풀릴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신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우리의 소망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하실 일이기도 합니다. 그 소망이 있기에 신자들이 여태 기다리며 신앙해왔던 것입니다. 그 소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네 신앙의 목표이고 목적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소망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는 천국과 영생이 이루어집니다. 즉 그 비밀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천국 비밀이지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루어지는 그 때까지는 비밀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노출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3 : 10 - 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는 천국이 비밀이고 두 번째 그 비밀은 비유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알겠지만 천국은 장차 이루실 하나님나라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천국’이란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때는 없었는가? 그건 아니겠지요.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숨겨져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비로소 천국이 공포됩니다. 마 4 :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리고 이 천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마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비유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문자대로 보았다가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겨자 씨 한 알 같다고 하니(31절)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비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약속 곧 예언의 말씀이 바로 비유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훼방자 마귀가 하나님의 하실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알지 못하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성경에는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주제인 ‘나무’로 돌아갑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대면 그에 따라 그 나무의 형상이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나무는 잘 몰라도 그 열매는 잘 압니다.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등등 우리는 그 열매들을 금방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 2장에 나오는 두 가지 나무는 도무지 어떤 형태를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분명 일반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무가 있습니까? 아니 있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는 오로지 성경에만 등장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나무들은 자연 속의 나무가 아니라 비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나무를 빗대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 1면에는 크게 이런 제목이 나옵니다. ‘거목이 쓰러지다.’ ‘거목’巨木)은 큰 나무를 뜻합니다. 그런데 정말 나무가 쓰러진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렇게 비유로 표현한 것이지요. 어린이들을 가리켜 ’꿈나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무’가 나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곧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이상한 나무들 엮시 나무가 아니라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나무로 표현하셨습니다. 요 15 :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입니다. 왜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을까요? 그렇지 못한 다른 포도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포도이고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셔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6 : 5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나무인데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즉 생명나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창세기의 대조적인 두 나무가 곧 말씀을 전하는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다릅니다. 나무도 두 가지이고 당연히 열매도 두 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자도 두 가지로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려 하는데 그 일을 훼방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나무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같은 장소인 에덴동산입니다. 똑같은 곳에 두 가지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천국을 말씀하시면서 열매보다는 씨로 대신하여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십니다. 마 13 : 24 - 28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같은 밭에 ‘좋은 씨’와 ‘가라지’가 있는 것입니다. 뒤에 설명을 보면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38절)이라고 합니다.
사실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무도 처음에는 씨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씨 - 나무 - 열매, 결국은 목자와 그 목자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뜻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나무와 열매(씨)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무도 열매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님 편과 마귀 편이지요. 하나님 편에 서면 생명을 얻는 것이고 마귀 편에 서면 죽음(사망)을 얻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같은 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곳이 아니라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곳이니 오늘날로 말한다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라면 당연히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마귀가 빼앗아 지배하는 세상에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교회와 목자를 세웠는데 마귀가 들어와 훼방합니다. 성도는 이런 사실을 알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 바라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택하여 에덴동산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경계하십니다. 창 2 : 15 -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물론 거기에는 생명나무도 있습니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러니 ‘교회’라고 하지만 꼭 하나님의 목자가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사실을 깨닫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라고 당연히 하나님과 예수님이 세우신 목자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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