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후회된다. 그냥 MT 가지 말고 큰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걸.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서울예술대학교 내에서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박현우 선배가 서울예술대학교에서는 그냥 공부만 하라고 충고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감이 온다. 물론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사람들이 나쁘다거나 도덕적으로 불건적하다거나 이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유쾌하고 사람들도 착하다. 하지만 비전이 있는 곳이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그렇다고 나쁘다고 딱 잘라말하기도 애매하니 그냥 적응하는 수밖에 별 수 있나.
서울예술대학교에 대한 나의 감상
1.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주려고 노력한다.
이건 좋은 뜻도 있고 나쁜 뜻도 있다. 언젠가 큰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너라면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네가 외국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자폐성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외국인들이 가진 타자에 대한 용인성이 한국인보다는 훨씬 개방적인 편이기 때문에 어쩌면 네가 적응하기 편할지도 몰라'라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 자폐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자폐적인 타자를 용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면 적응하기가 훨신 편할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서울예술대학교가 그 말을 시험해보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이곳 문예창작학과 학생들과 얘기하다보면 다들 '문창과 학생뿐만 아니라,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세계가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들이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것'에 대해 어느정도 관용을 베푸는 분위기이다.
이번주 수요일에는 스터디에 가입해 합평을 하게 되었는데, 스터디장을 맡고 있는 형이 이렇게 말했다.
'다들 어차피 어떻게 합평을 할 줄도 모르고 시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작품에는 개개인의 생각들이나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 들어있고,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당연히 생각의 폭이 넓어지겠지. 우선 스터디방침은 이것으로 삼자'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듣고 있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문화회관에서 공부를 한 내 입장에서는 위태로워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독학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비춰볼때, 최대한 합리적인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견해로써 볼때, 잘못하면 오히려 서로 흐지부지 될 위험이 높은 그런 방식이어서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아마 스터디장을 맡고 있는 형이 이렇게 말한 것은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다르게 말하자면 자폐적인 개인을 용인하는)를 당연시 여기는 서울예술대학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스터디장 형의 나이가 28이나 되었는데, 그렇게 나이드신 분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나의 동갑내기나 20살의 학생들도 거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아니 사실 그렇게 확정해도 좋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은 그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서울예술대학교의 분위기'를 좋게 여긴다. (!)
자기 생각이 강한 예술대학교 사람들, 그리고 타자를 용인하는 포용성. 나로서도 그런 분위기가 반갑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시문화회관을 졸업하게 되면서, 큰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생님 곁을 떠나 또다시 자기 세계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에 빠졌었다.
현우 선배도 언젠가 자신은 학교에서 글만 쓰느라 사람들과 교우관계를 갖지 않았었는데, 그 때문에 조금 자폐적으로 변하게 된 감도 없지않아있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이를 듣고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좋을지 고민했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서울예술대학교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었는데, 문창과 사람들은 각자 자기세계가 강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서로 그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잘못하면 자기 세계에 훅 빠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내가 가장 피하려고 했던 사태가 '자기세계에 빠지는 일'인데 그런 일이 가장 일어나기 쉬운 곳이 '서울예술대학교'이다. 첩첩산중이다. 그렇다고 회관에서처럼 문학을 위한 기초를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구체적인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위태로운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개판이 될 수밖에...
2. 안양예고는 안양예고끼리 뭉치고 고양예고는 고양예고끼리 뭉친다.
서울예술대학교의 학생들을 구태어 파벌로 분류하자면 4 파벌로 나뉜다.
안양예고 파벌, 고양예고 파벌, 우연히 서울예술대학교에 들어온 일반인들 파벌, 정말 글쓰려고 하는 일반인들.
안양예고에 나왔던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스터디를 만들고, 고양예고에 나왔던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스터디를 만든다. 그렇다고 딱히 일반인들을 견제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자기네들끼리 잘쓰려고 하는 심보가 굉장히 배알이 꼴린다.
1학년들은 아직 학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2학년생들은 대강 학교의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 그리고 그런 2학년생들을 만나는게 스터디그룹이다. 스터디그룹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서울예대를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분류된다고 한다.
안양예고,고양예고 학생들은 자기 아집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수업에도 빠지고, 창작수업에도 빠진다.
그렇다고 글을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간다. 그렇지만 1학년 동안에는 자기네들이 학교에서 잘 쓰는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속 편하게 지내지만, 2학년만 되면 글 실력이 따라잡히게 되면서 극심한 자괴감에 빠져서 학교에 나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저기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1학년 1학기만 다녔는데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거의 반이나 수업에 들어오지 않거든요? 왜 그런지 사정을 들어보니까, 수업을 4번이나 빠지면 F학점을 받는 학교 시스템이 있어요. 그런데 걔네들은 이미 수업을 4번이나 빠졌고 어차피 앞으로 계속해서 수업에 더 나와봤자 F학점 받을바에야 차라리 아예 수업을 안나오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더라고요. 걔네들, 학년은 올라가나요?"
"네? 아네 뭐 올라가죠. 아하하하"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 스터디회원분과 이런 대화를 나눴는데,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을 여러번 빠져서 F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학년이 올라가다니? 내가 대안학교에 다녔을 적에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정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학교에서 창작수업을 할 때 내는 작품들의 수준은 언제나 상상 이하였으면서, 학교가 돌아가는 상황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안양예고, 고양예고 아이들이 서로 끼리끼리 뭉친다는 주제로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이야기가 '학생들은 왜 수업에 나오지 않는가로 넘어가는지 설명을 하자면 '이미 글러먹었다는 것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서였다.
현재 내가 스터디에 참여해본 바 생각을 말하자면 '아마 스터디를 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1시간 반동안만 스터디를 하고 그 뒤로 술을 마시면서 놀기 때문에 흐지부지 된다. 그렇다면 스터디는 말만 스터디지, 거의 자기네들의 술파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안양예고, 고양예고 얘들도 거의 그렇게 굴러갈 확률이 높았고, (아직 직접 눈으로 그네들의 스터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한번 직접 목격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렇다면.....지금 1학년에 들어온 예고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잘쓰겠다고 끼리끼리 뭉쳐서 기껏 술이나 퍼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정)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서울예술대학교에 열심히 글을 쓰려는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2학년이 되어서야 깨닫곤 한다.
현재까지 내가 보고 느낀 바에 의하면, 정말 글을 쓰려고 하는 일반인들은 따로 스터디를 만들어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외의 사람들은 전부 '학교에 통학만 하고 가는' 부류가 정말 많다.
내가 서울예술대학교에 와서 이러한 사정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정신이 산만했었지만,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화가 치밀어올랐다.
와 신난다 생각한것 이상으로 막장이군? 1학기 끝내고 계속 다닐지 말지 현재로써는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엠티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정말...문창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거기서 문학얘기 하는 사람 한명도 못봤다.
뭐 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정말 술마시는게 전부 다다. 끔찍했다. 나는 술을 못마시는 편인데, 다들 같이 술마시는 분위기에 끼지도 못하고 술 못마시는 아이들 몇명과 함께 구석에서 쳐박혀있다가 잠만 잤다. 그런데 잠을 자는데 어떤 놈이 들어와서 토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야외에서 죽치고 있다가 (밖에서는 때마침 비가 쏟아졌다) 겨우 겨우 잠에 들었다. 속으로 아오 현우 선배 말을 들었어야했는데,하면서 후회하고 있었다.
ps.
지금 인터넷으로 페이스북을 잠깐 들러봤는데, 그쪽 사람들은 엠티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게시물을 올렸다. 이거 나만 역적 놈 되겠네.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이 검색해서 내 글을 볼까봐 무서워서, 일부러 닉네임도 바꾸고 제목도 조금 이상하게 지었습니다.
ps2.
선생님께서 제 글을 동인,창작반 활동 게시판으로 옮기셨습니다. 확실히 서울예술대학교에 대해 썩 좋게 말하는 내용이 아니고, 안양예고, 고양예고 아이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있는만큼 일반인들도 볼 수 있는 자유게시판보다는 이곳이 훨씬 낫겠지요.
첫댓글 잘봤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네요. 솔직한 후기 감사드려요. 대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