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영어에서는《①나무로 된 뼈대 구조의. ②(만화의) 한 토막. ③(미 구어) 회. ④(미 속어) 남을 모함하기》등으로 설명이 되어 있고, 우리 사전에는 ‘자동차나 자전거, 건조물 등의 뼈대’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들은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쓰는 말인 ‘프레임’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가 사진을 배우면서 배운 말이 “구도(Framing)”입니다.
사진의 초보는 노출인데 노출은 필름의 감도와 렌즈의 조리개, 사진기의 셔터스피드로 결정이 됩니다.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맞아야 좋은 사진이 됩니다. 이거 익히는데도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완성이 되면 그 다음이 ‘구도’입니다.
사람은 좌우 눈으로 3D, 입체를 볼 수 있지만 사진기는 눈이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만큼 입체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진은 3D를 입체감 없이 평면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각도, 구도 등으로 원근감을 살리지 못한다면 평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구도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사진의 구도 잡기를 ‘프레이밍(Framing, 구조화)’이라고 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기의 파인더를 통해 현실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 보여주는 것을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두 눈을 통해 전부를 입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의 작은 파인더를 통해 망원렌즈나, 광각렌즈, 혹은 접사렌즈로 사회와 사물을 보는 행위가 바로 프레임입니다.
그러므로 파인더를 통해 보여지는 세상은 그 사람만의 시각이고 시점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처가가 땅 투기를 해 놓은 곳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게 했다.”
사건은 이해찬 전 대표의 이 단정적 표현으로 시작됐다. 민주당의 공세가 이어지자 급기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사업의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 결정을 장관 혼자 내렸을 거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충분히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만한 사안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한 국책사업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변경되었고, 종점으로 예정된 곳 근처에 마침 대통령 처가의 땅이 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특혜를 의심할 것이고, 합리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런 의심은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합리적 의혹의 수준을 넘어 성급하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단정해 버렸다는 데에 있다. 의혹을 제기했으면 일단 답변부터 들어야 하나, 민주당은 딱히 국토부의 답변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태의 진상이 아니라 국민의 머릿속에 남길 인상일 테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실체는 애초에 민주당에서 제기했던 의혹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는 여전히 이번 사건이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의혹의 전형”이라며, 그것을 “제2의 국정농단 사태”로 프레이밍 하느라 여념이 없다.
허구도 한동안은 진실의 효과를 갖는다. 상대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의혹은 끝없이 제기할 수 있다. 그로써 사태를 진실게임으로 만들기만 해도 기대했던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데에 충분하다. 의혹은 말끔히 해명돼도 그로 인해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을 넘은 것은 국토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제기된 의혹 때문에 변경안을 포기하겠다면, 그 대안은 상식적으로 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아예 사업 자체를 ‘백지화’해 버렸다. 언론과 민주당의 공세를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되치기로 역공에 나선 셈이다.
나름 묘수라고 할 수 있다. 왜? 첫째, 총대를 메고 김건희 여사를 향한 야당의 공세를 방어하면 일단 대통령실로부터 눈도장을 받을 수가 있다. 둘째, 야당을 향한 총공세의 선봉장을 자처함으로써 지지자들 사이에서 미래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치고 보수의 대표주자로서 자리매김할 수가 있다.
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지역주민의 15년 숙원. 그 사업을 백지화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분노를 민주당 쪽으로 돌려놓는 노림수.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야당 심판’이라는 총선의 어젠다로도 손색이 없다. 과연 명장(?)의 탁월한 지략에 감탄한 지지자들은 다투어 그의 집무실 앞으로 대형 화환을 보내고 있다.
야당에서는 ‘국정농단’이라는 프레임으로 상황을 불필요하게 정치화하고, 여당에선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국정에 대한 일체의 의혹 제기를 간단히 차단해 버린다. 이 나라에선 고속도로 하나 놓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 여기서 우리는 기능 마비의 상태에 빠진 한국 정치의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릇된 프레임 전쟁의 희생자는 양평과 하남의 주민들이다. 일단 변경안을 ‘김건희 로드’라 명명한 이상 민주당은 원안 추진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변경안은 고려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국토부의 설명대로 정말 변경안이 원안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면 그로써 주민들의 이익은 침해되는 셈이다.
한편, 호기 있게 ‘백지화’를 선언한 이상 장관이 이를 뒤집기도 뭐하다. ‘민주당의 사과’라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야당의 사과와 SOC 사업의 타당성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걸 민주당에서 받겠는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여당이나 야당이나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야당은 먹히지도 않을 설익은 폭로를 이어갈 게 아니라, 원안만이 아니라 변경안까지도 대안으로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당은 이상한 조건을 걸어 고집부릴 것 없이 변경안이 왜 원안보다 나은 대안인지 설명하면 될 일이다.
‘국정농단 김건희 로드’와 ‘가짜뉴스 선동정치’. 이 두 프레임의 전쟁은 내가 보기에 매우 거칠고 유치하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프레임을 짜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프레임 자체가 아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선거전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올바른’ 프레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프레임이란 무엇일까? 간단하다. ‘국토의 발전과 지역주민’을 중심에 놓은, 그런 프레임이다. 이때 프레임의 전쟁은 비로소 생산적인 경쟁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여야가 제시한 프레임에는 국토도 주민도 없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은 당리당략과 자기 정치뿐.
이게 싸울 일인가? 제기하는 의혹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합리적 의혹은 건조하게 해명되어야 한다.>중앙일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프레임의 전쟁
정말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양평군민과 우리 국민을 위해서 건설해야 하는 고속도로가 야당과 여당의 싸움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고 진흙 밭에 뒹구는 개들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합리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그저 자신들의 억지가 ‘합리적’이라고 우기는 것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정치인들 틈바구니에 끼여 사는 우리 국민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치인들의 프레임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의 두 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왜 파인더의 작은 창을 통해 일부만 보기 위해 애를 쓰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지 걱정입니다. 정치인이야 그렇다고 쳐도 우리 국민들은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