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Salvation Army)의 역사와 유래
[구세군은 3만 여명의 사관들의 활동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127개국에서 15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 입니다.]
대표:박종덕 info@salvationarmy.kr
구세군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윌리암 뿌드 (William Booth) 목사에 의해 창립된 기독교 교회로서 현재 전 세계 104개국에서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사업과 이웃사랑을 위한 사회사업을 인종, 종교, 피부색, 지역을 초월하여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국제적인 교회이다.
창립 당시 영국의 사회현실은 산업혁명 후기증상으로 많은 실업자와 빈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정신적 타락과 알코올중독, 윤락행위 성행 등의 제반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는데도 교회가 아무런 제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당사자들도 교회에 무관심하자 윌리암 뿌드 목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그것이 구세군의 효시가 되었다. 당시 구세군의 표어인 「3S」 운동을 중심으로 런던 빈민가에서 시작한 이 선교운동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새힘을 불러 일으켜, 기독교 정신 그대로 영혼이 구원받고 자립된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있는 기독교 선교운동이 되었다. 「3S」운동이란 Soup(슾:국의 뜻), Soap(소프:비누의 뜻), Salvation(샐베이션:구원의 뜻)의 영어 첫 글자로서, 글자 그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전도지를 한 장 나누어주기보다는 먼저 따뜻한 국으로 몸을 지탱케 하고, 비누로 더러움(죄, 무지, 미 자립, 가난의 습관 등)을 깨끗이 씻어 내어 스스로 건전한 사회인이 되게 하며, 이와 더불어 복음 (성경말씀=예수 그리스도)을 전함으로 참된 기독교적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구세군의 선교활동은 현재 전 세계 104개국에서 복음전도사업을 통한 영혼구원과 사회사업을 통한 이웃사랑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1990년도와 1991년에는 동구권과 구소련에서도 활동이 재개됨으로 명실 공히 세계 구석구석에서 인류사회의 영적복지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교회가 되었다.
주요활동
구세군은 1,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전쟁난민 구호사업, 피해복구 사업, 일선군인 위문사업 등을 통해 “지구를 전쟁으로부터 평화의 세계로 변화시키자”는 운동을 전개해 온 바 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화해와 평화 정착운동은 당시부터 구세군 사업의 근간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세계평화와 창조질서보호의 목표 아래 여러 가지 특별한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AIDS 예방치료 특별종합병원을 설립하여 인류 최악의 질병인 AIDS 퇴치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역분쟁으로 인한 난민구호 및 정착지원사업, 재난구조사업, 반핵운동, 환경보호운동, 마약퇴치운동, 인공수정에 대한 윤리선언과 계몽운동, 국제적인 기아퇴치사업, UN과 합동으로 파괴되어 가는 가정을 치료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회복시키자는 「1994년 UN 국제 가정의 해」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국제 구세군은 아프리카 기아 퇴치사업, 르완다 구호사업, 동구유럽 난민구호사업, 러시아와 구소련연방자치국에 대한 사회복지지원사업, 제3세계 각국에 대한 직업. 재활. 기능교육 등의 사업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구세군은 이와 같은 사업을 전개하며,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Heart to God, Hand to Man」라는 현대적 표어에 적합한 선교를 전개하고 있다.
구세군의 특징
구세군은 창립 당시 부랑아, 실직자, 알코올중독자 등의 소외계층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매우 강력한 선교조직이 필요했고, 따라서 선교조직을 준 군대식으로 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며 군대식 복장과 용어 등을 사용하는 특색 있는 교회로 전해져 왔다.
목회자는 「사관」이라 통칭하며 근무연한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며, 평신도는 「병사」라 통칭하고 있다. 사관은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인 구세군 사관학교를 나와야만 사관이 되며, 처음 사관으로 임관되었을 때의 계급을 「부위」라 하며, 5년이 지나면 「정위」, 정위로부터 15년이 지나면 「참령」이 된다, 참령 이후부터는 특별한 직책이 주어졌을 때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의 계급으로 진급하게 된다. 이상은 계급으로 나눈 것이고, 한군국(한 나라 또는 선교지역에 따라 나누어 놓은 구역)을 대표하는 사관을 「사령관」, 전 세계 구세군을 대표하는 사관을 「대장」이라 칭한다.
한국 구세군 역사
구세군의 해외선교는 1880년부터 시작되어 유럽 여러 나라와 캐나다, 미국 등에 전파되었고, 동양에서는 1895년 처음으로 일본에 전파되었다. 한국에 구세군이 전파된 것은 1907년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암 뿌드 대장의 일본 순회집회 때 참석했던 조선 유학생의 요청에 따라 1908년 10월에 정령 허가두 사관 (Colonel Hoggard 영국인)에 의해 한국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인 나라를 잃은 민중들에게 제복과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는 구세군은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어 1910년 11월 22일에 한국 구세군의 첫 번째 영문인 서울 제일영 (현 서대문 영문이 당주동에 개영하게 되었다. 그 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초대 한국 사령관인 허가두 정령이 8년간 재임기간 동안 사관 87명, 교인 2753명, 영문 78개소를 개척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사업은 1918년 한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서대문구 충정로에 아동구제시설인 혜천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 관과 교육사업인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24년부터는 천재지변에 구호를 실시하는 긴급구호를 시작하는 등 선교에 못지않게 사회사업에도 활발한 활동을 펴서 구세군에 대한 관심과 좋은 호응을 갖게 하였다.
일제하에서의 선교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탄압이 시작되었고 1940년에는 세계적인 조직인 구세군이 스파이 행위로 의심받아 오던 중 1941년 일본 구세군에 의해 구세단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해외 사관들은 모두 귀국 조치시키는 등 일본 구세군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3년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 하여 강제 폐쇄 조치되어 지하교회로 그 명맥을 이어오던 중 1947년 새로운 사령관의 부임과 더불어 사업이 재개되었다. 이때 시작한 의료사업(영동구세병원)은 미국인 리차드 박사의 적극적인 참여로 사회사업에 새로운 장을 여는 듯 했으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던 로오드 부장은 피랍되었고, 진주영문 담임사관이던 노영수 참령은 순교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당하는 수난이 계속되었다, 전쟁 후 지금까지 87년간 구세군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교단으로 인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 동안 20명의 사령관이 바뀌어 오는 동안 현재에는 210여개의 영문(교회)과 110,000여명의 교인, 그리고 30여개의 사회사업시설을 운영하는 등 선교와 사회사업에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는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는 오크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이 오늘날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게 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되살려 주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 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사업시설 현황
1908년 영국인 허가두 사관의 선교로 시작된 한국 구세군은 초기부터 복음전도와 더불어 부랑아, 행려자 보호사업, 영세민 구호사업 등을 시작해 영혼구원을 위한 210개의 영문(교회)과 이웃사랑을 위한 34개 전문복지시설, 그리고 31개의 지역사회 복지시설을 통해서 영(靈)과 육(肉)의 구원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한국 구세군의 조직은 사령관 이 성덕 정령을 비롯해서 교단 본부인 구세군 대한본영에 각 전담부서가 있고, 전국을 9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방본영을 설치하여 지역별 복음전도활동과 사회봉사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