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성경의 기록 가운데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동방의 박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난해하기만 합니다.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로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도
마태 복음에 기록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사실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기록하면서도
동방의 박사들에 관한 기사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공생애 사역과 부활의 증거를
성령의 충만한 역사라는 관점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한 이야기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주 낯설기만 하였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누가의 "성령 충만한 역사"라는 관점보다
"왕이신 예수"라는 관점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왕께 경배하는 동방 박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문제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제인 동방의 점성술사들이
메시야 탄생의 경배를 드렸다는 너무나 난해한 정서를 어떻게 복음적으로 이해하느냐입니다.
마태는 동방의 점성술사인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깊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실을 설교하면서 전혀 고민하지 않는 모습은
다른 모든 성경을 본문으로 설교할 떄와 똑같습니다.
한 번쯤 성경을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깊이로 느껴야할 것입니다.
누가가 탄생의 기사로 채택하지 않은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마태는 성경으로 기록하면서
누가와 다른 탁월한 성경 저자의 염감을 발휘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 머문 그의 별을 보고 찾아 온 동방 박사들의 입으로 전한 "
왕께 경배"라는 수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왕이신 메시야를 복음으로 공식화하였습니다.
만약 동방의 박사들이 그의 별을 보고 찾아와 경배만 드렸다면.......
아마도 마태는 복음서에 탄생 기사로 누가처럼 채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마태의 입장에서 볼 때
동방의 점성술사들이 그의 별을 보고 왕께 경배한 사실 하나만 놓고 보면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을 섬기는 그들의 신이 강림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의 박사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일월성신의 메시야로 왕이신 아기께 제의식을 한 것이라면
복음서에 기록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마태는 동방의 박사들이 왕께 경배한 사실을 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헤롯대왕이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사내 아이를 모두 죽인 사실을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옛 뱀으로 큰 용인 사탄이 메시야이신 아기 예수를 죽일려고
점성술사인 동방 박사들을 통하여 헤롯대왕을 격동시켜 집단적 영아 살해라는 음모를 획책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솔로몬 성전보다 더욱 화려하게 웅장하게 증축한 헤롯대왕이
하나님의 성전,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죽일려는 사탄의 음모에 격동되었습니다.
마태는 이 사실을 복음으로 승화시켜
느닷없이 라헬의 통곡을 예레미야의 메시야적 새 언약에 관한 예언의 성취로 시사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마태의 염감은
라헬의 통곡에 담겨진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절망을 영아 살해로
자식을 잃은 베들레험 어머니의 통곡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 시켰던 바벨론과 페르시야의 점성술사들의 후예, 곧 동박의 박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 탄생을 왕으로 경배하였던 놀라운 역사적 사실을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하였던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과 베냐민, 곧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배반으로 심판받아 잃어 버린 아픔을
라헬의 통곡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처절하게 담아내었습니다.
라헬의 통곡은 세상 나라의 왕으로 상징되는 헤롯의 폭정으로
베들레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통곡으로 이어져
그 곳에 머문 그의 별로 영원한 평화의 왕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탄생의 비화로
그리스도 복음을 담아내었습니다..
마태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간과 창자가 땅에 쏟아지는
아픔의 눈물을 흘렸던 예레미야의 눈물을 회상하면서
자식을 잃어 버린 베들레헴 어머니의 눈물을 라헬의 통곡으로 통전적인 예언 성취를 말하면서
영원히 새 언약의 계시를 이룰 메시야의 탄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놀랍게 기록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왕께 경배한 사실을 왕이신 메시야의 탄생으로 복음화한 마태의 영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의 성경을 탄성의 말씀으로 믿게 하였습니다.
라헬의 통곡과 베들레헴 어머니의 통곡을 통전적인 예언 성취로 바라본 마태는
잊혀진 예레미야의 새언약 계시를 메시야 탄생의 의미로 담아
새언약을 성취할 왕이신 메시야를 탄생의 복음으로 확실히 증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에 찾아가 경배할 왕을 찾았을 때
헤롯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어 유대 베들레헴이라며
미가서 5장 2절에 나오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는 말씀으로 메시야 탄생을 일깨웠습니다.
메시야 대망에서 흐릿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왕을 찾는 동방의 박사들을 통해서 메시야의 탄생을 다시한번 성경의 묵시로 각인시켰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놀라운 메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생명의 역사와 함께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증거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난으로 꽃피는 생명의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구원으로 임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무저갱의 심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을 왕의 복음으로 온전히 담아낸 성경 저자로서 마태의 영감은
참으로 놀라운 성령 충만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된 예수님은 요셉과 혈통적인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열왕의 계보를 통하여 왕의 복음으로 담았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성령 충만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면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더욱 아름답게 이 땅에 임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