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2-08)> 자유를 살다
<자유를 살다(A Life for Freedom)>는 필자 부부가 존경하는 이계준 목사님(Rev. Ke Joon Lee)의 자전에세이 책 제목이다. 며칠 전에 목사님께서 우편으로 보내주신 에세이집을 받아 아내(前 고려대 교수)와 함께 탐독했다. 이계준 목사님은 우리 부부가 1983년 봄에 지인의 소개로 처음 연세대학교회(Yonsei University Church)에 출석했을 때 담임목사로 봉직하였다.
이계준 목사님은 필자에게 세례(洗禮)를 주셨고, 2004년 12월 4일 우리 둘째 딸(가천대 교수) 결혼식 주례(主禮)를 맡아 주신 고마우신 분이다. 우리 가족은 39년째 신촌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연세대학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65세 이상 교인들의 모임인 남선교회(男宣敎會) 회장으로, 내자는 여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막내딸(꽃그림 화가)은 주일학교 영유아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계준 목사는 1932년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 미국 보스턴대 신학대학원(신학석사), 그리고 에모리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D. Min.) 학위를 영득했다. 미국 보스턴 한인교회 목사, 프랭크포트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등을 역임했다. 귀국한 후 연세대학교에서 교목, 교목실장, 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원로목사, 계간지 <성서와 문화>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계준 목사는 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 한국웨슬리신학회장, 한국문화신학회장, 한국교회협의회 신학위원장, 한국기독교대학 교목회장,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장,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는 한국교회와 하느님의 선교, 하느님의 침묵, 마르타 콤플렉스, 어울리는 삶, 축제와 고난, 희망을 낳는 자유, 현대선교신학, 기독교대학과 학원선교 등 다수가 있다.
자전에세이 <자유를 살다> 머리말에 이계준 목사는 “구순(九旬)에 이르고 보니 대학과 교회에서 은퇴한 지 25년과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무리 100세 시대하고 하나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야 할 날이 얼마일지 예단하기 어려우니, 생명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부실한 삶의 족적이나마 자손 및 친지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거니와 황혼기에 무슨 과시할만한 사건이나 궤적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살아온 대로 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면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첫 구절에 적었다.
자전에세이집은 6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가족, 2장 목사와 목회, 3장 지성의 전당, 4장 내가 만난 명사들과 은사님들, 5장 젊은 시절 친구들과 연세대학의 동료 교수들, 6장 인생 종착역으로 가는 길가에서, 그리고 부록에는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세계선교센터 보스턴 한국인 디아스포라 프로젝트 ‘이계준 목사의 자유를 위한 삶’이 실려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로마의 이스라엘 점령에 의한 유대인의 분산을 뜻한다.
이계준 목사의 인생은 보스턴에서 한국 디아스포라에 참여하므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먼저 보스턴대학교의 학창 생활은 그의 신학적 지평을 넓혀주었다. 그는 해롤드 드월프(Herold DeWolf) 교수 지도하에 조직신학과 기독교윤리를 전공하였다. 이에 더하여 보스턴대학 마쉬 채플의 설교자들은 그에게 새로운 목회 유형을 소개하였다. 이 목사는 또한 하버드대학 채플의 예배에 참석하여 저명한 신학자들의 설교를 접하기도 하였다.
이계준 목사는 4년간 육군 군목(軍牧)으로 복무한 후 1961년 8월 박대선(朴大善) 박사의 추천으로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풀브라이트재단은 그의 항공료를 지원하였고 보스턴대학은 장학금과 기숙사비를 제공하였다.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신학석사(STM) 학위를 취득한 후 사우스다코다주 프랭크포트 감리교회에서 4년간 목회하였고, 연세대 박대선 총장의 요청으로 교목(校牧)으로 봉직하기 위해 1967년 2월에 귀국하였다.
이계준 목사는 군사정부에 의해 연세대학에서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해직되었다. 그 기간에 약 4년간 감리교총회신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 목사는 해직(解職)에 대해 담담하게 “나의 행동이 권력자들에게는 죄로 보였을지 모르나 나의 신앙과 양심의 거울로 볼 때 그것은 죄가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나를 목사로 부르신 하느님의 사명에 응답하는 것이고, 나를 교목으로 부른 연세대학에 대한 나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자유를 살다’ 표지와 속표지. 이계준 목사와 최영란 사모. 결혼식 주례.
글/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30 Januar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