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8장
본장은 아가서의 대단원으로 사랑의 성숙에 대한 찬미입니다.
1절에서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라면”이라는 표현을 봅니다. 과거에는 형제들끼리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남녀간, 심지어 부부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나의 오라비라면 내가 내 어머니 집에서 솔로몬에게 교훈을 받을 뿐만 아니라 향기로운 석류즙을 마시게 하면서 솔로몬의 왼손으로 머리에 베개를 하고 솔로몬은 자신을 오른손으로 안아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술람미 여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를 압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잠든 임을 깨웠는데, 그 사과나무 아래는 바로 자기가 사랑하는 임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그 어머니가 모진 산고를 겪던 곳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태어난 장소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인격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충실한 사랑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시는 사랑의 힘을 노래합니다. 6절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면 아무도 그것을 끄거나 불길을 잡을 수 없습니다. 특히 6절에서 이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해 “도장을 새기듯 자기의 마음에 나를 새겨 달라”고 합니다. 감동입니다.
하지만 아가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에 담긴 역설입니다. 사랑의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임의 마음에 새겨지는 도장은 단지 서약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이면에는 투기가 있습니다. 그 투기가 일어나면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른 우상을 섬기거나 찾으면 진노의 불을 발하십니다. 그 진노의 불은 온전히 내려져 모든 것을 사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이면에 있는 이 질투가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신성한 관계로 들어갔는데 만약 자신의 배우자에게 부정을 저지른다면 당연히 투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맺은 언약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맺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8절에 들어오면 갑자기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 소리는 누이의 순결에 대한 관심의 소리입니다. 자기 누이가 청혼을 받는 날, 누이가 순결을 지킨 여인이라면, 은으로 된 장식물을 선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을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성은 매우 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윤리를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 술람미 여인은 10절에서 자신은 성벽이며 망대라고 하면서 자신이 순결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술람미 여인이기에 솔로몬은 11~12절에서 이 여인만을 자신이 진심으로 가꾸어주며 사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어하고 가까이 오길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순결한 백성으로 주님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