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흠흠신서’(정약용·1822)에 실린 김몽세의 살인에 대한 기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흠흠신서의 ‘김몽세 살인사건’
지나친 욕망에 배신감까지
슬픔에 분노 더해지며 폭발
부부 신의(信義) 되새겨보는 계기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되도록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드라마, 영화에서는 물론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남녀 간의 외도는 상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배신감을 안겨 준다.
특히 부부의 문제가 되면 더 복잡해진다. 유부남, 유부녀의 외도는 인간의 사소한 일탈에서 시작되지만, 뒷감당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사위나 며느리가 내 자식을 두고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운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정조 시대 황해도 토산에 김몽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몽세에게는 병약한 아들이 있었는데, 일찍 혼인은 시켰으나 계속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며느리는 아픈 아들을 돌보거나 마음을 나누기보다 내연남을 따로 두고 대놓고 바람을 피웠다. 김몽세는 그 사실을 알고 분노했지만 아픈 아들에게 해가 될까 봐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프던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도 함께 밀려왔을 것이다. 이 분노에 불을 지른 사건이 일어난다.
아들의 장례식날, 김몽세의 사돈이 찾아와 며느리가 젊은 나이에 수절하기 어렵다면서 개가를 시켜야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곳은 아들의 장례식 자리가 아닌가 말이다. 김몽세는 아들을 묻은 무덤의 흙도 마르기 전에 개가 운운하는 사돈의 처사와 그동안 며느리의 외도에 분개했던 마음이 폭발하고 만다.
김몽세가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한다.
며느리의 내연남인 김천의가 김몽세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김천의는 김몽세 앞에서 며느리를 ‘용복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허물없는 사이임을 드러냈고, 그녀에게 친정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김천의의 행동에 격분한 김몽세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바로 김천의를 밟아 죽인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면 그게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사체를 몰래 매장하거나 감추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몽세는 김천의의 시신을 수십 가구가 사는 마을 앞 큰길에 내다 버렸다. 길가에서 발견된 김천의의 시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는데, 행인이 많이 다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김천의가 피살된 상황을 목격한 증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끈질긴 수사 끝에 결국 김몽세가 지목되고 그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 이야기는 정약용이 저술한 형법서 ‘흠흠신서’에 실려 있다.
정약용은 살인 사건의 처리 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 이유는 사건을 다루는 관료 사대부들이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든 남편을 두고 외도한 부인,
사위의 장례식장에서 자기 딸을 개가시키겠다고 한 친정 부모,
막 과부가 된 사람에게 공공연히 함께 떠나자고 하는 외간 남자는 이 사건을 다각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
김몽세의 살인 이야기는 옛 기록이라고 그저 흥미롭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
인간으로서의 도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신의,
책임과 함께 사소한 일탈에서 시작되는 상처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은양 전문위원ㆍ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