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17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27세 되는 해에 장로교회 다니는 집안의 사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집안에서 남편만 유일하게 장로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교회 장로인 시아버님과 시댁 어른들을 따라 저도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남편이 청주로 전근을 하여 청주 북문로에 살 때에도 북문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1955년경 어느 날, 청주 목화 공장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 집회가 있다고 하여 참석하였습니다. 워낙 큰 공장인데도 건물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 할 정도로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안수해 주셨습니다. 안수를 받으니 몸에 전기가 오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 속이 너무나 시원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처음 뵈었던 저는 그 집회 후에도 항상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1956년 서울 마포 이만제단 터에서 천막 집회를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교회에 다니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갓난아기 막내딸을 업고 간 저는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이를 옆에 눕혀 놓았는데, 일주일이 넘는 집회 기간 동안 아이가 한 번도 우는 적이 없고 젖 달라고 보채지도 않으며 너무나 편안히 잘 자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였습니다 저도 배고픈 줄 모르고 마냥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후부터는 다니던 교회에 나가지 않으니 북문장로교회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온 몇몇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느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는 조그마한 초가를 마련하여 청주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저희 집에서 제단까지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였기 때문에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논둑 밭둑을 지나기도 하고, 키가 큰 벼를 헤치면서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곳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나 좋은 향기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사과 냄새 같기도 하고 백합 꽃 냄새 같기도 한 그 좋은 냄새는 제단에 다다를 무렵이면 어김없이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단 문을 열고 예배실 안에 들어서면 그 안에서도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청주에 전도관이 세워진 후 하나님께서 여러 번 내려오셔서 집회를 해 주셨는데 집회를 마치고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또 생명을 축복도 해주셨습니다. 물을 받아놓은 큰 항아리에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가시면 교인들은 생명물을 받아가기 위해 저희 집에 몰려와서 줄을 섰습니다. 저마다 깨끗한 병을 준비하여 생명물을 담아 갔는데 어느 날 한 집사님이 생명물 담을 병을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저희 집에 있는 빈 병 중에서 아무 병이나 하나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성신이 담길 그릇은 깨끗해야
집에 있는 빈 병이라고는 들기름을 담아두었던 지저분한 병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안 되겠다고 하니 그거라도 괜찮다면서 자꾸만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병은 밑바닥에 기름 찌꺼기가 잔뜩 끼어 있어서 아무리 씻어도 지저분한 것이 없어지지 않는 병이었습니다. 그 병에다가 생명물을 담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찍하여 못주겠다고 하는데도 집사님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려 그 병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땅!” 하고 총소리 같은 것이 아주 크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소리가 들린 방 안에 뛰어 들어가 보니 온 방에 물이 튀어 있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건 가져와라 어떻게 하냐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물어 보았더니 들기름 담았던 병을 빌려갔던 집사님이 그 병에 생명물을 담은 순간 그 병이 깨지면서 큰 소리가 났고 생명물이 사방으로 다 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깨진 병은 희안하게도 병 밑바닥만 오려낸 듯 동그랗게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워 하였고 하나님의 귀한 성신이 담길 그릇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58년에 저희 가족 모두는 소사 신앙촌에 입주하였습니다 저는 건설대로 잠시 일하였는데 어느 날 삽질을 하다가 실수를 하여 손바닥에 상처가 깊이 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 난 부위가 부어오르면서 곪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한쪽 팔 전체가 엄청나게 부어올라 옷을 못 입을 정도까지 되었고 너무나 쑤시고 통증이 심하여 팔을 움직이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하게 되니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어 남편이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서 안 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찰을 받으러 가니, 하나님께서 제 팔을 보시고는 상처가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팔을 잡고 쉭쉭 축복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이 제 상처 난 손바닥을 칼로 째 피고름을 흠뻑 쏟고 그 자리에 생명물을 바르니 퉁퉁 부었던 팔 전체가 금방 가라앉으면서 상처가 아물었으며 통증도 거짓말같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간혹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생겼을 경우에 병원에 데리고 간다든가 약을 지어 줄 생각보다는 먼저 생명물로 치료를 하거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러면 언제 아팠는지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게 금새 쾌유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덕소 신앙촌에 입주하여 소비 조합원으로 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덕소 신앙촌에 사시는 한 집사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나셨는데 사고 처리 문제가 잘 해결이 되지 않아 입관도 못한 채 일주일 동안이나 시신이 병원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시신을 씻지도 못하고 바로 하관을 한다는 연락을 받아 장례반 분들과 여러 교인들이 산에 모였습니다.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썩었던 시신은 곱게 화하여 입관을 하였고
장례를 마치는 순간까지 향취가 진동~
입관을 하지 않은 상태라 관을 따로 들고 오고, 시신도 이불에 돌돌 말아서 들고 오는데 시신이 우리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라 하루만 지나도 썩을 텐데 일주일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으니 시신은 썩어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쉬파리들이 새까맣게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이 들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또한 무척 곤혹스러웠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은 시신을 씻기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으로 판단되었는지 솜에다가 생명물을 듬뿍 적셔서 시신에 꼭꼭 눌러 닦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을 닦아내니 그때까지 지독하게 풍기던 썩은 냄새가 싹 없어지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거짓말 같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은 계속 시신을 생명물로 닦아내고 저희들은 예배를 드렸는데 시신은 닦아낼수록 썩어 새까맣던 것이 점점 뽀얗게 화해졌으며 딱딱하게 굳어서 돌덩이 같던 몸은 점차 노긋노긋하게 부드러워졌습니다.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썩었던 시신은 곱게 화하여 입관을 하였고 장례를 마치는 순간까지 향취가 진동하여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어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 이 길을 따라오면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면 그 감사함에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하나님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 간직하며 남은 여생 동안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34회 1997. 6. 15. 게재>
첫댓글 잘보고가요
잘보고 갑니다
굿~!!
놀라워요
잘 읽고갑니다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