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번째 편지 - 기후 난민
지난주 70대 후반의 기업인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대표, 너무 추워서 내가 좋아하는 골프도 못 치고 집과 회사만 오가니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어. 돌아오는 겨울에는 계획을 세워야겠어. 베트남이든 태국이든 따뜻한 나라에 가서 지내다 와야겠어."
이제 겨울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나라로 떠나 상당 기간 머물다 오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이나 태국, 베트남을 찾는 사람도 있고 하와이나 팜스프링스처럼 조금 더 먼 곳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남쪽으로 내려가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반인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선진국 사람들은 어떻게 겨울을 지내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세계적으로 경제 활동이 활발한 도시, 즉 글로벌 번영 밴드(Global Prosperity Band)는 일정한 위도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와 미주의 경우 북위 30°에서 45° 사이에 모여 있습니다.
아시아는 상하이 31°, 도쿄와 교토 35°, 서울 37°, 베이징 39°, 삿포로 43° 등입니다. 미주는 샌디에이고 32°, 로스앤젤레스 34°, 워싱턴DC와 샌프린시스코 38°, 뉴욕과 시카고 41°, 미니애폴리스와 오타와 45° 가 해당됩니다.
유럽은 조금 다릅니다. 밴드가 북위 40°에서 55° 사이로 상향 이동합니다. 이는 멕시코 만류 덕분에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런던은 북위 51°로 캐나다 래브라도와 위도가 같지만 기후는 훨씬 온화하다고 합니다. 유럽의 주요 도시 위도를 보면 마드리드와 로마 40°, 파리와 뮌헨 48°, 런던 51°,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52°, 코펜하겐 55° 등입니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활동성을 자극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산업화도 가장 먼저 일어난 곳입니다. 그 결과 이 지역 사람들은 경제와 문화가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는 또 다른 면도 있습니다. 바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입니다. 여름은 비교적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나 바다로 가면 됩니다.
문제는 겨울입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할 일이 많은 중장년 시기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버티면 되니까요. 그러나 은퇴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체온조절 능력이 저하되고, 추위는 심혈관계에 부담을 줍니다. 따라서 '겨울 도피'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생존과 삶의 질을 고려한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등장한 개념이 바로 ‘기후 난민(Wealthy Climate Refugees)’입니다. 더 쾌적한 기후대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도 경제활동을 마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러한 흐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대륙이 넓어 이 문제를 자국 안에서 해결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부의 플로리다, 서부의 팜스프링스, 그리고 본토 밖의 하와이가 대표적인 겨울 휴양지입니다.
반면 유럽은 일조량 부족과 장기적인 저온 현상으로 겨울에 주거지를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수요 때문에 일찌감치 유럽은 <북쪽의 돈>과 <남쪽의 태양>이 결합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이집트와 인도로, 프랑스 사람들은 모로코와 알제리로, 독일은 스페인의 마요르카로 향했습니다. 경제적 목적으로 점령한 자신들의 식민지가 겨울 휴양지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이 위도에 비해 매우 춥습니다. 아시아의 도시 중 겨울에 기후 난민으로 주거지 탈출을 꿈꾼 나라는 그동안 일본이 유일하였습니다.
일본은 정치적 점령 대신 자본 투입을 통한 거점 확보 전략을 썼습니다. 1980년대 거품 경제 시기, 일본 자본은 하와이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골프장 내에 있는 페어웨이 빌리지는 일본인 노인들이 일본어를 쓰며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식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고립지를 지향했습니다.
1986년 일본 통산성은 은퇴 노인을 대거 해외로 보내는 '실버 콜롬비아' 계획을 세웠습니다. 비판으로 폐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태국 치앙마이와 말레이시아 등에 일본인 전용 은퇴촌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도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태국에 한국인이 많이 가긴 하지만, 아직은 여행이나 단기 체류 수준에 가깝습니다. 한국인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의료, 커뮤니티, 자산 관리 서비스가 결합된 '브랜드 빌리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유럽과 일본 모델을 따라 한국인을 위한 은퇴촌이 어딘가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각자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가 가장 적절한 후보지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위 30°~55°에 거주하는 '문명 밴드' 사람들이 겨울철 피신처로 삼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은 어디일까요. 적도(0°~10°)는 너무 습하고 비가 잦아 불쾌지수가 높습니다. 당연히 제외됩니다. 또 북위 30° 이상은 여전히 겨울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그 사이의 15°~25° 밴드가 골디락스 존입니다.
이 지역은 12월부터 2월 사이 강수량이 적고 습도가 낮은 최고의 건기를 맞이합니다. 평균 기온 20~27°C로 비교적 온화해 신체에 부담이 적습니다. 60대 이후 시니어들의 급성 질환(뇌졸중, 심근경색) 위험을 가장 낮춰주는 구간입니다. 겨울철 일조 부족으로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을 완화할 만큼 충분한 비타민 D 합성이 가능한 위도입니다.
노년층에게는 비행시간과 시차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지역들이 본거지에서 비행시간 3~6시간 거리의 이 위도밴드를 겨울 휴양지로 개발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접근 가능한 후보지는 어디일까요.
첫째 중국의 하이난입니다. 북위 18°에 위치해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는 곳입니다. 위도상 하와이보다 약간 낮아 겨울에도 완벽한 여름 기후를 제공합니다.
둘째 베트남의 다낭과 나트랑입니다. 북위 12°-16°로 최근 겨울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낭(16°)은 겨울에 20~24도 정도로 비교적 선선해 한국인에게 쾌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트랑(12°)은 더 남쪽이라 기온이 조금 더 높습니다.
셋째 태국 치앙마이와 후아힌입니다. 북위 12°-18°로 전통적인 겨울 휴양지입니다. 치앙마이(18°)는 겨울철 건조하고 선선한 기후로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와 은퇴자의 성지입니다. 후아힌(12°)은 습도가 낮아 쾌적합니다.
겉으로 보면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겨울 기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2026년 12월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겨울을 잠시 떠나 따뜻한 어디론가로 향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3.9 조근호 드림(월요편지)
첫댓글 기후난민 그래서 서울의 모 지인은 지난12월한달간 하와이에서 거주하고 왔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기후난민 을위한 여행도생각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