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김유섭 시인,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87년만에 제대로 읽었다(1)
남해출신 김유섭 시인은 최근 시집 『비보이』(2024,포지션)를 출간하여 새로운 화제를 낳고 있다. 이 시인은 이미 2021년 11월 30일 『이상 오감도 해석』(BOOK속길)을 출간하여 문단을 확 뒤집어놓은 바 있고, 그 후속작업으로 『한국 현대시 해석』(BOOK속길, 2023)을 출간하여 제대로 읽은 사람들은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이 들 것이다.
『이상 오감도 해석』은 이상이 「오감도」를 쓴지 87년 만에 이 나라 독자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창작의 진실(본래 시를 쓸 때의 의도 또는 의미)을 캐어낸 쾌거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의외로 조용하다.(쓰나미이거나 지진에 속하는 현상, 그 파장이 너무 커서일까?) 그 후속 작업 『한국 현대시 해석』 또한 이에 못지 않는 지각변동 수준의 해석에 속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바와는 다른 결과물이고 지금까지 달달 외우고 다니던 작품 해석과는 사뭇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소한의 감동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한다. 이에 앞서 지금 나온 시집 『비보이』 역시 앞 두 권이 주는 해석에 연계되어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가벼이 검토해 볼까 한다.
이번 『비보이』의 자가해설 「문예사조라는 허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글의 논지는 우리 나라 국어교육에서 근대 이래 문예사조 정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금과옥조로 작용했던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한국 현대시가 일제강점 초기에는 계몽주의,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기까지는 상징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1930년대에는 모더니즘, 1950년대 6·25사변 이후는 실존주의,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시대에 따라 문예사조가 발전하면서 바뀌어 왔다고 학문은 주장한다” 이 정리는 서구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이뤄진 사조인데 우리는 1910년대 이래 근대문학의 짧은 시간에 그에 준한다는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와서 사조적 조명을 무리하게 정리한 데다 그 과정과 도식이 붙박이로 작용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김시인은 여기에서 사조가 비판적인 대상이 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학문이 주장하는 소위 계몽주의, 상징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에 속하는 시를 지금도 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또한 시를 읽거나 해석하려고 할 때 먼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읽거나 해석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시는 그 어떤 관점도 없이 읽어야 한다. 이것이 시를 쓴 시인과 시에 대한 존중이다. 시를 읽기도 전에 어떤 관점을 가지는 것은 시인과 시에 대한 모독이고, 시를 색색의 안경을 쓰고 멋대로 읽고 해석하겠다는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문예사조는 시 이후에 일어나는 부차적인 감상의 분류일 뿐 시의 본질이 아니다.”
김유섭시인은 이상이나 김소월이나 한용운, 백석 등의 시를 오독해 온 것의 상당 부분 이 선입견으로서의 사조적 인식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테면 1930년대 이상의 「오감도」를 초현실주의 또는 모더니즘이라 하는 문예사조 해석은 충격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상은 「오감도」에서 강제 한일합병으로 식민지배 노예기 되어버린 조선민족의 죽음과 다르지 않는 삶을 설계도면 형식으로 적확하게 펼쳐 보여주며 결사항전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을 조롱하고 용광로 불기둥의 분노와 증오로 멸망시키겠다고 절규하면서 동시에 식민지배에서 무감각해져 가는 조선민족에게 각성하라고 소리친다.”
여기서 필자는 적어도 김시인이 시를 쓴 시인의 의도를 ‘창작의 진실’이라 할 때 그 진실을 찾아들어가는 코드를 읽어낸 것이 하나의 경이요 시 해독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있어 총독부 건축기사 이상이 제국주의 일본을 조롱하고 분노와 증오심에 불타는 애국지사의 심중으로 오감도를 썼다고 가상할 수 있겠는가? 기적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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