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의 목숨이 서너 개 된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주어진 목숨이 3개입니다. 두 번까지는 가리지 않고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조심스럽습니다. 마지막 남은 것을 압니다. 함부로 도전하기 어렵지요.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냥 끝입니다. ‘끝’ 사실 우리는 이 ‘끝’의 의미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싫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려고 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여태 누리고 경험하던 모든 것과는 단절을 뜻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가장 두려울 것입니다. 이 사람들과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것이 두렵고 싫습니다. 그런 끝은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손목 바로 위 팔뚝에 자기 생명의 숫자가 그어져 있습니다. 세 줄. 죽음을 경험하면 하나가 지워지고 다시 나타납니다. 물론 세상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상이고 이야기일 뿐입니다. 한 번의 죽은 경험, 그런데 돌아와서는 여전히 그 위험과 마주하려 합니다. 왜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왔습니다. 목숨이 몇 개든 그것을 다 소진해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인생은 목적이 뚜렷하면 목숨을 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하기야 아직 남아있다는 여유가 있지만 마지막 남은 것까지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을 보면 과연 그러하구나 싶습니다. 흔히 ‘소명’ 또는 좀 부드럽게 표현해서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순국’이나 ‘순직’ 또는 종교적으로 ‘순교’가 그래서 나옵니다.
혹 죽었다가 다시 산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평시 그런 상상을 해본다면 우리는 현재와 좀 다른 삶을 꿈꾸지 않습니까? 어쩌면 등장인물들의 특성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전혀 다른 능력을 구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니 그저 상상해보는 것뿐입니다. 내가 다시 산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 희망입니다. 살아본 그 삶을 또 산다면 다시 산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허무맹랑한 꿈입니다. 한 예로, 성경에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려준 사건이 몇 번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여태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시 살았다 해도 또 죽었다는 것이지요. 어떤 삶을 다시 살았을까요?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목숨이 둘이든 셋이든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다시 살아났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한 번 죽는 것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그 사람들은 두 번씩이나 경험했으니 말이지요. 목숨은 하나로 족하다 싶습니다. 그래야 또 귀하다 여겨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 사람의 목숨이 몇 개씩 된다면 지금보다도 범죄율이 더 커질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귀한 줄 모르니 더욱 함부로 다루겠지요. 생명의 존귀함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그냥 이 한 목숨으로 산다는 것이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를 존귀하게 대접할 수 있는 길입니다.
친구를 찾아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게임판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경험한 바가 있지만 똑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현실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 희망일 뿐입니다. 그렇게 또 다시 게임 속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건이 벌어집니다. 보다 다양한 환경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풍경은 이야기에 보너스로 주어지는 셈입니다. 흔히 보아온 정글에서 광활한 사막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더니 빙벽과 설산으로 바뀝니다. 이야기 따라가기보다는 경치 감상에 호강할 수도 있습니다. 식상할 수도 있는 정글에서는 이빨 날카로운 원숭이들과의 곡예전투가 그런 대로 양념을 달리하여 제공됩니다. 지루하거나 식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이빨에 치여 먹이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초조하지 않게 구경합니다.
사실 처음 나왔을 때 그 놀라운 상상력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무슨 게임판이 이런 게 있나 싶었지요. 결코 빠져들고 싶지 않은 게임판입니다. 물론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숨겨있던 오지가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의 관광지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변화보다는 그들의 모험담이 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도전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땅 속으로, 바다 속으로 아니면 하늘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되어 갑니다. 더불어 과학과 문명이 발달합니다. 오늘의 우리의 삶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야기 자체보다는 흐름 속에 전개되는 풍경과 맞닥뜨리는 사건들을 구경하는데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고받는 맛깔스런 대화가 지루함을 덜어주기도 하지요. 조마조마한 스릴도 큰 뜻의 교훈도 애틋한 감동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즐기는 영화입니다. 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후속작을 예상케 하는 마무리네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