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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이철재
관심
진격의 K방산이 대박을 또 터뜨릴 기세다. 지난해 유럽(폴란드)에서 엄청난 규모의 계약을 따낸 데 이어 중동(사우디아라비아)에서 ‘큰 건’을 앞두고 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26일 4박6일간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를 국빈 순방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한ㆍ사우디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전방위 협력 강화를 밝혔다. 전방위 협력 분야엔 방위산업도 들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 영빈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단독 환담을 앞두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그런데 그 내용이 뭐길래 ‘대박’이라는 소문이 돌까.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살짝 내비쳤다. 지난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사우디에 대한 방산 수출 규모에 대해 “규모가 대단히 크다”고 밝혔다. 조 실장은 “사우디 관리의 표현을 빌리면 계약이 마무리 단계”라며 “규모 자체가 수조원 규모니까 큰 사업이 되겠다”고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지난 23일 현지 브리핑에서 “대공 방어체계, 화력 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우디와 대규모 방산 협력 논의가 막바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사우디와 한국은 각각 원유와 건설로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랬던 사우디가 한국 방산에 왜 꽂히게 된 걸까?
📃 글 싣는 순서
◦ 중동 방산 수출 보도는 ‘홍길동 신세’
◦ 말레이 언론 “사우디 천궁Ⅱ 살 가능성”
◦ 북한 업은 후티 미사일, 사우디 정유 생산 반토막
◦ 1개 포대가 7000억원, 너무 비싼 패트리엇
◦ 과열 우려 레이더 꺼 놔 큰 피해 입은 UAE
◦ 이스라엘 견제에도 UAE 수출 성공
중동 방산 수출 보도는 ‘홍길동 신세’
조태용 실장이나 김태효 차장이 사우디 방산 수출에 대한 ‘떡밥’을 많이 던졌다. 사실 기자는 이미 사우디 방산 수출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런데도 관련 기사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 엠바고(Embargo·보도유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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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는 한 사안에 대해 특정 시점까지 보도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국방부 기자단에는 ‘중동 수출 엠바고’가 있다. K방산의 중동 무기 수출은 수출 상대국 정부나 업체가 공식 발표하거나 방위사업청이 공개할 때까지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동 수출 엠바고는 ‘수출 상대국의 입장’과 ‘중동 지역의 복잡한 외교 관계’ ‘반군 테러로부터 우리 교민의 안전’ 때문에 국방부 기자단이 합의한 사항이다.
기자는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근질한다. 호부호형을 못 하는 홍길동 신세다. 그래서 중동 수출 엠바고를 준수하면서도 최대한 정보를 제공해 보고자 한다.
말레이 언론 “사우디 천궁Ⅱ 살 가능성”
말레이시아의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 시큐리티 아시아’는 지난 27일 사우디가 ‘코리언 패트리엇(Korean Patriot)’의 구매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사우디가 관심을 가진 한국 무기체계 중 LIG넥스원의 천궁Ⅱ(일명 ‘한국판 패트리엇’) 방공체계가 있다며, 사우디가 영공을 보호하기 위해 이웃인 아랍에미리트(UAE)를 따라 이 방공체계(천궁Ⅱ)를 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예멘 북부 사나에서 열린 후티 반군의 열병식. 각종 미사일과 드론을 실은 트럭 대열이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 이처럼 후티 반군은 게릴라 수준을 벗어나 정규군에 맞먹는 무장을 갖춘 군사 세력이다. EPA=연합
사우디의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의 방공무기 체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37세로 젊지만, 사우디의 실권을 갖고 있다. 1400조~2500조원의 재산도 있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별명의 그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한국 방문 때 일정을 따로 잡아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아 다양한 K방산의 무기를 둘러봤다. 당시 ADD에서 한국 방공체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공식 방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남동 관저에서 회담·오찬을 진행하면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비전 2030’의 실현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길 희망한다”며 “특히 에너지·방산·인프라 건설의 세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비전 2030’은 석유 고갈 이후에도 사우디의 경제가 번영할 수 있도록 첨단 산업·제조업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양국이 방산 분야의 협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우디 측은 한국의 방공체계에 대해 문의했다.
북한 업은 후티 미사일, 사우디 정유 생산 반토막
사우디는 중동의 석유 부국이다. 사우디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조1082억 달러(세계은행 통계)며, 이 중 32.7%가 원유·천연가스로 벌어들였다.
2019년 9월 14일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브카익의 정유공장을 드론으로 타격한 뒤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날 공습으로 사우디 하루 정유 생산량이 한동안 반 토막 났다. 로이터=연합
사우디는 오일 달러로 전 세계에서 첨단 무기를 사들였다. 미국의 패트리엇은 사우디의 구매 목록에 있고, 가장 비싼 방공체계인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도 7개 포대를 계약했다.
사우디가 방공체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있다. 사우디는 2015년부터 UAE·쿠웨이트·바레인 등과 연합군을 꾸려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말이 반군이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로 무장한 무장세력이다. 또 이란·북한의 지원을 받고 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와 UAE의 석유 시설을 드론·미사일로 계속 공격하고 있다. 2019년 9월 14일 후티 반군은 사우디 동부 아브카익의 정유 공장을 드론으로 타격해 사우디의 하루 정유 생산량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1개 포대가 7000억원, 너무 비싼 패트리엇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방공체계가 석유 부국인 사우디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비싸다는 점이다. 패트리엇은 1개 포대당 7000억원이 넘는다. 또 사우디·미국 관계가 싸늘해지면서 미국 무기 수입이 여의치 않게 됐다. 미국은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불렀다며 2021년 1년간 사우디에 대한 ‘공격용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사우디는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다.
더군다나 패트리엇은 값이 비싼데, 사우디 뜻대로 굴릴 수 없다. 사우디는 패트리엇의 제조사인 RTX(옛 레이시온)에 운용까지 맡기고 있다. 패트리엇 포대를 가동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인원은 RTX의 하청업체 직원이다.
그래서 사우디는 값싸고 질 좋은 방공체계를 만드는 나라를 찾았다. 그 결과 한국을 협력 대상으로 점찍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미국은 납기가 느린데다 종종 미 의회의 승인도 걸림돌이다. 사우디는 성능·납기가 우수한 한국 방공체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열 우려 레이더 꺼 놔 큰 피해 입은 UAE
한국의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UAE의 타와준 경제위원회는 지난해 1월 35억 달러(약 4조7500억원) 규모의 천궁Ⅱ 계약에 서명했다. 타와준 경제위원회는 UAE 국방부 조달계약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지난 17~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ㆍ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에서 방산기업인 LIG넥스원이 전시한 천궁Ⅱ 미사일. 이철재 기자
UAE가 천궁Ⅱ를 고른 것은 의미가 크다. 사우디의 옆 나라인 UAE는 사우디와 정치적으로 가깝다. UAE는 작은 나라지만, 정치·경제·군사 분야에서 기민하고 재빠른 행보로 중동에선 나름 한가락 한다. 특히 UAE군은 소규모이지만 제법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
UAE의 방공체계로 미국의 사드와 패트리엇이다. 사드의 첫 실전 기록은 지난해 1월 UAE가 후티 반군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요격한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UAE를 순방 중이었고,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는 후티 반군의 공습 때문에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UAE의 공군 지휘부는 2019년 국내 최대의 방산 전시회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를 찾아 한국 방공체계를 살펴봤다. 당시 ADEX 전시장엔 막 실전배치 중인 천궁Ⅱ는 없었고, 천궁Ⅰ만 있었다.
방위사업청은 UAE에 천궁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실제 발사 훈련에 참관할 기회도 줬다. 이후 UAE는 천궁(천궁Ⅰ+Ⅱ)을 차기 방공체계로 내정한 뒤 한국과 구체적 협상에 들어갔다.
UAE가 패트리엇의 대안을 찾은 계기는 2015년 9월 4일 마리브 공습이었다. 예멘 내전에 끼어든 UAE는 당시 마리브 지역에 사우디·바레인 등과 주둔하고 있었다. 이 연합군 기지에 후티 반군이 러시아제 OTR-21 토치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쐈다.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UAE군 52명, 사우디군 10명, 바레인군 5명이 전사했다, UAE군 창군 이래 가장 많은 인명 손실을 기록한 날이었다.
지난 17~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에서 방산기업인 한화시스템이 전시한 다기능 레이더(MFR). 왼쪽에서 둘째가 아랍에미리트(UAE)를 위해 개량한 천궁 레이더의 모형이다. 왼쪽에서 넷째가 UAE에 수출한 천궁 발사대 모형. 이철재 기자
미사일 공격 당시 마리브 주변엔 연합군은 패트리엇을 배치했다. 그러나 과열 때문에 패트리엇 레이더를 24시간 가동할 수 없었다. 패트리엇 레이더 전원을 꺼뒀을 때 후티 반군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연합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다.
이스라엘 견제에도 UAE 수출 성공
그래서 UAE는 새 방공체계를 찾아다녔다. 한국은 천궁을 24시간 한눈도 팔지 않는 방공체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UAE에 강조했다. 협상은 물 흐르듯 잘 굴러갔다. 2020년 9월 15일까지 말이다. 이날 미국의 중재로 UAE와 이스라엘이 수교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 체결됐다.
직후 UAE는 이스라엘에 대한 선물로 이스라엘제 방공체계 구매를 검토했다. 함대공 미사일 바락(Barak)을 지대공으로 개조한 이스라엘의 바락 8이 검토 대상이었다.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UAE에 강하게 따져 들었다. “막 수교한 이스라엘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한국 중 어느 나라를 더 믿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고심한 UAE는 한국의 천궁을 최종 낙점했다.
UAE는 이미 한국서 들여와 실전배치한 천궁Ⅱ를 현지서 시험발사했는데, 천궁Ⅱ가 목표 탄도미사일을 정확히 직격해 완전파괴했다. 정치적 고려를 빼고 순수히 군사적 관점으로만 고른 천궁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은 앞으로 UAE에 보낼 천궁의 레이더를 수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PESA)에서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AESA)로 개량하고 있다. AESA는 PESA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며 관리·운용이 더 편리하다. 그리고 UAE의 천궁 레이더는 기존 천궁 레이더가 공기로 열을 식히는 공랭식인 데 비해 특수 액체를 쓰는 수랭식이다.
천궁은 미래 K방산 수출을 이끌 유망 종목이다. 디펜스 시큐리티 아시아는 지난 3월 말레이시아 공군이 중거리 방공 시스템(MERAD)으로 천궁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도 천궁을 눈여겨보고 있다. 천궁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영공을 지키는 ‘하늘이 내린 활’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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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와 군사안보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빠르고 정화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이철재의 밀담'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 매달 '전쟁과 평화'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 못 믿냐” UAE에 따졌다…이스라엘 제친 ‘천궁Ⅱ’ 전말 | 중앙일보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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