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르도바 토후와 이집트 왕국이 동시에 전쟁을 걸어 왔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는 기분 좋게 남쪽으로 소풍을 간다.

콘스탄티누스는 소풍을 가면서 곳곳에 자신의 관대함을 선보이자, 그것을 본 아랍 사람들이 "과연 대인배로구나!" 라며 칭송하였다고 한다.

한편, 콘스탄티누스는 소풍 뿐만 아니라 뱃놀이도 좋아했다. 그래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뱃놀이를 하다가 만난 곳에 배를 대고, 다시 소풍길에 올랐다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관대함은 저 먼 타브리즈에까지 미쳐 크리미아를 번영하게 해 주었다.

소풍은 계속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소풍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그의 관대함은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2세가 죽었다. 관대함을 더 보이려고 무리를 해 소풍을 또 나갔다가, 큰 숫사슴의 뿔에 치여 죽은 것이었다.
미성년자인 아들, 니콜라우스 달라세노스가 니콜라우스 1세로 크리미아-비잔틴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니콜라우스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또 하나의 재앙이 찾아왔다.
폐 페스트가 당도한 것이다!
아비도스는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인근의 사모스, 레스보스, 에우보이아, 니코메디아로 도망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또다시 사신의 낫이 사람들을 베고 다니게 되었다.
어린 니콜라우스도, 아버지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케르손으로 피난을 갔다.

그 와중에도 니콜라우스는, 크리미아-비잔틴 황제의 전통, 영토확장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니콜라우스 1세는, 중부 이탈리아에 큰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페라라 공화국을 공격한다.
아드리아 해를 건너, 또는 레조에서 진군하여...

크리미아의 병력집중에 페라라는 일격에 무너졌으며, 페라라 공화국의 아놀포 통령은 크리미아-비잔틴의 지배를 받기로 했다.

시간은 흘러흘러, 니콜라우스가 성년이 되고,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 광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또다른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집트와의 전쟁,
니콜라우스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집트와 전쟁을 하기로 한다.

크리미아의 위대한 군대는, 이슬람의 제 2성지인 메디나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아라바이 펠릭스 지방을 거의 장악하였다.

아스완 지역도 거의 다 장악하였다.

십자가의 힘은 대단했다!! 이슬람이었던 알모하드 왕국이, 정교회로 개종을 한 것이었다.
정말 신의 은총이라 할 수 있었다.
이 후, 이집트와 평화 협정을 맺고, 수많은 반란이 일어났지만,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반란을 토벌하던 중, 니콜라우스는 튜튼 기사단을 정벌하고, 튜튼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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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재미없어지는 글, 그래서 생략도 많아지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셨다면 패라독스 연대기 투표에서 "크리미아"를 투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기사단장;(그거 카톨릭 기사단 아님?)
기왕 하는김에 메카까지 ㄱㄱ싱
로마의 호수 지중해를 탈환하는 최고의 프로젝트 성공하기를 빌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