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중에 피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의 말로 하는 피정이었으니 제
대로 알아들은 바 없이 농아 체험을 철저히 한 셈이지만 인도 출신인 예
수회 사제의 확고한 피정 안내 주제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이제까지 살았던 생애 중에, 그러니까 하느님 현존체험과 인간관
계 체험에서 무조건 좋은 것만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의식이 먼
저 살아나는 피정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고통에 약해 수난 체험이 버거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었지
요. 오래 살아온 내 삶의 리듬을 따라 좋은 것만 기억하다 보니 감사해
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상 강조되는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렇게 감사드리다 보니 용서 청해야 할 일도 더불어 많아진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면담을 청했는데 아니, 영어로 말을 잘 못하는 나를 열어
보이고 싶은 원의가 간절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
느님은 용기도 더불어 주셨습니다. 모세가 사명을 받기 전에 말 못한다
고 머뭇거리다가 말은 내가 한다는 야훼를 떠올리며 주님께 간절히 매달
렸습니다. 알아듣기 힘든 짧은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시고 반복하
여 물으셨던 이국의 사제에게서 죄송스러움보다는 깊은 감명을 받았는
데, 그때 흘린 눈물이 인도의 갠지스강과 한국의 한강을 합친 양이라며
피정이 끝난 후 농담을 건네셨습니다.
이스라엘 믿음의 선조들처럼, 첫째 날부터 8일째 끝나는 날까지 초지일
관 용기를 주신 그때 그 피정 지도 신부님을 기도 중에 기억합니다.
김선예 수녀(가톨릭대 성가병원 의학정보실,서울 성가소비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