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원수리 출토 순금제 불상의 앞면.
뒷면.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사지(源水里寺址) 출토 순금제 석가여래좌상
益山市 源水里寺址 출토 순금제 석가여래좌상은 라마(喇麻)식 여래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 광배 뒷면에 ‘남선인 신축정월일 김세소(男善人 辛丑正月日 金世昭)’이라는 명문이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명문 중의 ‘辛丑’은 1361년(공민왕 10)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순금제 석가여래좌상은 높이 5cm에 불과한 소형으로 앞판과 뒤판을 따로 만들어 타출로 두드려 만든 작품이다. 소형에 순금제 라는 재료의 특이성 때문에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새로운 조각의 요소들을 잘 보여준다.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올수록 좁아지는 얼굴형,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쳐지면서 몸 중심으로 둥글게 내려오는 右肩偏袒의 大衣, 覆蓮과 仰蓮의 연꽃잎이 상하 대칭을 이루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대좌, 광배의 덩굴풀[蔓草] 문양 등은 라마교(喇麻敎, Lamaism) 불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요소들이다. 특히 광배에 새겨진 꽃이 계속 반복되면서 굽이져 올라가는 만초 문양은 1345년에 완성된 원(元)나라의 쥐용관[居庸關] 입구에 조각된 문양이나 불상 광배를 비롯해 항저우[杭州] 링인스[灵隐寺] 비래봉(飛來峰)의 마리지천상(摩利支天像) 감실 외곽 문양(사진 1) 등 원대 라마교 도상의 불교조각에서 폭넓게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고려 후기의 경우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불감(사진 2) 뒷면에 새겨진 연화만초문양이라든가 화엄사 동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소형금동광배(사진 3)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즉 이 문양대는 원대에 유행한 새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시원은 역시 티베트로 불상의 광배나 티베트 고격왕조(古格王朝, 10~17세기) 古城의 門(사진 4) 裝飾紋樣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이 순금제 불상과 유사한 불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금동석가여래좌상(사진 5)을 들 수 있다. 다만 같은 변형식편단우견(편단우견에서 오른쪽 어깨에 대의가 살짝 걸린 형식)이지만 왼쪽 어깨 위에 3개의 사선 주름이 있는 대의라든지 가슴에는 승각기가 표현되어 있는 점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은우, ‘원과 고려후기에 나타나는 라마도상의 불교조각’, <실크로드 문화와 한국문화>,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7.2. 437~474쪽.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 189~190쪽. 재수록.)
사진1. 飛來峰石窟 第70龕室 摩利支天像
사진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불감 뒷면에 새겨진 연화만초문
사진3. 화엄사 동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소형금동광배
사진4. 티베트 古格王朝(10~17세기) 古城의 門 裝飾紋樣
사진5. 금동석가여래좌상, 14세기, 높이 5.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동원 1841)
[익산의 재발견]
익산 원수리 출토 순금제 불상을 아시나요?
“이 불상은 도대체 뭐지?”
작은 순금제 불상이 올여름 ‘국립전주박물관 10대 유물 선정 이벤트’에서 관람객이 가장 선호한 전시품(총 2,700명 관람객 432표)이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익산 원수리 출토 순금제 불상’이란다.
이 불상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관람객이 선호한 까닭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주국립박물관에 따르면, 이 순금제 불상은 1963년 8월 여산면 원수리에 살던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발견하였다. 금은방에 팔려 금반지가 될 뻔 했는데 기대 이하 금액을 쳐주겠다고 돌아서는 찰나 순경이 이를 발견해 그 운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발견된 곳은 여산면 원수리 삼양마을 북쪽 용화산 중턱에 있는 도신사터(도승사터라고도 함)라고 전해오는 절터다. 높이 5㎝정도의 이 불상은 2층의 연화좌대에 앉혀있고 등 뒤로는 주형의 화염문과 당초문으로 꾸며진 광배가 붙어 있다.
불상은 크고 긴 눈, 짧은 코와 작은 입을 가졌고, 머리는 육계가 없는 나발을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걸쳐있는 법의는 부드럽게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무릎 위를 덮었다.
부처의 모습이 새겨진 앞면은 순금제의 얇은 금판을 문양이 조각된 틀에 대고 안팎에서 두들기는 타출과 금속판에 원하는 모양을 그려 넣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을 모두 오려내는 투조법으로 표현하고 뒷면은 얇은 금판으로 덧씌워 마감하였다. 뒷판의 상단 중간과 하단 좌우측에 끈을 꿸 수 있는 작은 고리가 있다.
연당초문 그리고 기타의 수법 등과 불상의 광배 뒷면에 ‘남선인 신축정월일 김세소(男善人 辛丑正月日 金世昭)’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만든 시기를 12세기 전후로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올해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정한 ‘관람객 뽑은 10대 유물’ 속에는 1위 익산 원수리 출토 순금제 불상에 이어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관모와 신발과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각각 2, 3위를, 미륵사지 출토 녹유기가 8위를 차지했다.
오명관 기자
익산시민뉴스 2012.12.20 16:16:52
聞慶 內化里 三層石塔 舍利具 중 순금제보살입상
통일신라 9세기, 국립대구박물관, 보물 제51호
금제보살상은 불과 2.9cm의 소형이지만 두광, 연화대좌, 신체의 천 표현이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두광의 머리 주위로는 어자문이 표현되었고, 정부는 뾰족하게 처리되어 보주형을 이루고 있다.
보살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고 눈, 코, 입을 모두 표현하였다. 상체는 나선형으로 천의가 어깨에서 양발 측면까지 흘러내리고 있으며, 무릎에서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신체는 허리부분을 매우 잘록하게 표현하여 소형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모델링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좌는 단판 8엽으로 복련만 처리되었는데, 자엽의 끝부분이 살짝 반전하고 있어 일면 고식의 연화문을 보는 듯하다. 연판의 윗부분에는 두광에서 표현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자문이 둘려져 있다. 탑 내에서 금제불상이 발견된 예로는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의 것과 이 내화리 삼층석탑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보물 제51호) 사리공의 위치
첫댓글 늘 공부하고 연구하시나 봅니다. 후배 선생님들께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백수라 마냥 놀 수만 없어서 담배값을 아껴 책을 사 봅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