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구속
성경 말씀: 출애굽기 25:10-22; 로마서 3:19-31
요약
구속은 하나님의 약속에 수반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은 세상의 변화 가운데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구속되어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조건적으로 주어질 때 제기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후손의 번성과 그들이 살 땅에 대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조건적임으로, 세상 조건 가운데 구속적으로 서사되었습니다. 죄로부터 구속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타락되게 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죄로부터 구속입니다.
언약에 수반된 구속
구속은 인질이나 양도된 땅을 속량물을 주고 도로 찾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구금된 사람이나 판매된 땅을 도로 찾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속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구속이 언약의 설정에서 말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는 두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번성하리라는 것과 그들이 살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그의 후손, 곧 언약의 백성이 가나안 땅, 곧 언약의 땅에 정착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지역 다른 종족에 의해 억압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정상 유업 된 땅이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은 언약의 백성이고 그들이 사는 땅은 언약의 땅임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과 언약의 땅을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주신 그분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분 이루심은 이루어진 약속의 구속을 내포합니다.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종족의 지배 아래 있을 수 있었고, 그들이 사는 가나안 땅은 뺏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효화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은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세우는 것을 뜻합니다. 언약의 백성과 언약의 땅은 하나님에 의해 다시 찾아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의 삶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삶은 구속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구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에 사는 것으로 설정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옛 언약은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에 사는 것에 대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은 옛 언약에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과 가나안 땅의 구속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가나안 땅은 세상에 조건적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한 종족이고 그 땅은 세상 지역의 한 부분입니다. 옛 언약과 그에 수반된 구속은 세상 조건으로 표현됩니다. 구약의 삶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조건의 삶을 세상에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새 언약은 옛 언약으로부터 떠나게 되기 때문에, 새 언약에 수반된 구속도 또한 옛 언약의 구속을 떠나게 됩니다. 새 언약과 그에 수반된 구속은 조건적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 조건으로부터 떠남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따른 바울의 구속 이론은 새 언약의 내용을 구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함께로 죽음입니다. 혹은 하나님 함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하나님 함께의 세워짐을 뜻합니다.
그 세워진 십자가는 새 언약만이 아니라 그 구속을 보입니다. 즉 십자가로 새 언약의 삶이 말해지고, 또한 십자가로 죄 사함을 통한 새 언약의 삶으로 구속이 말해집니다. 즉 십자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언약이지만, 세상으로부터 새 언약으로 구속입니다.
속죄의 구속
세상에서 죄에 처한 이들은 죄 사함을 통해 구속됨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함께는 세상에 이루어진 구체적 ‘사건’입니다. 그 사건의 파급으로 죄에 처한 이들은 죄 사함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구속은 죄의 사함을 뜻합니다. 즉 속죄의 구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의 속죄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새 언약은 하나님의 구속과 사람의 속죄를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세상의 어떤 조건도 내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함께와 죄의 사함만 담습니다. 죄 사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함의 삶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에 새 언약은 예수님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의미는 세상 죄인들이 죄가 사해져 하나님과 함께 구속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구속의 뜻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구속된 죄인들의 하나님과 함께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집니다.
속죄의 구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새 언약의 구성요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되어 구속된 이들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된 구속은 세상의 조건으로 보이게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 조건이 아닌 그들의 속죄로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시면, 그들은 속죄됨으로 구속되어야 합니다. 이 설정은 창조의 배경에서 말해집니다. 즉 속죄됨으로 구속은 하나님께서 타락된 사람과 함께하려고 뜻하실 때 제기됩니다. 따라서 죄인들은 여기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는 세상 방식으로 보여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함께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 타락된 상태로 있는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되어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에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구속의 문으로 세워집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세상에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구속을 이루십니다. 죄로 사는 이들은 그들의 죄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속죄의 구속으로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구속적인 것을 십자가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속죄로 구속하심으로 함께하십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함께는 관계로 설정될 수 없습니다. 죄는 관계에 내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함께는 죄를 배경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떻든 세상에 죄를 보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죄는 죄 된 세상에서 부각됨으로, 오히려 하나님이 뜻하시는 속죄의 구속으로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구속
하나님의 함께는 구속된 함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함께는 십자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함께의 좋은 소식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는 십자가로 알려집니다. 좋은 소식은 구속적으로 알려집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는 죄인들에게 알려집니다.
십자가 때문에 사람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로 죄가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주체성 때문에 죄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개인에 의해 바라보아지는 십자가는 개인의 처형 형틀일 뿐입니다. 즉 예수님이 개인들에 의해 보이는 한, 개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만이 속죄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죄인들은 개인들로 의식되지 않습니다. 개인들은 타락됨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음입니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의식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속죄의 구속은 개인의식의 지속을 가로막습니다. 사람은 개인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가 개인으로 머무는 한, 죄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속죄는 그에게 의미 없습니다. 따라서 구속도 또한 그에게 의미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 개인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개인으로 말해질 것이 없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주체성을 지니기 때문에, 속성과 관계성으로 말해집니다. 즉 개인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은 관계성으로 모임을 이룰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속죄된 죄인들이 하나님과 함께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속죄됨으로 구속된 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됩니다. 그들은 새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로 예수님을 따름은 예수님이 보이신 새 언약의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옛 언약의 백성, 곧 아브라함의 후손은 구속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은 구속된 백성입니다. 그의 후손이 옛 언약의 백성이라고 말해지는 한, 구속은 그들이 조건적 세상에 언약의 백성으로 유지되기 위해 수반됩니다. 구약에서 그런 점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은 구속된 죄인들입니다. 조건적 구속은 반복되지만, 죄의 구속은 반복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세상에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반복된 구속이 말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은 유지나 지속의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구속이 세상에 어떤 상태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언약은 세상 상태로 서사되게 되지 않습니다. 복음서에 보이는 예수님의 삶은 세상에 사는 예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은 세상에 지혜로운, 혹은 도덕적인 삶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새 생명으로 서사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잘 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언약의 삶은 새 생명으로 펼쳐집니다. 새 언약은 새 생명의 언약입니다. 구속은 새 생명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단지 새 생명으로 서사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구속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에 안주된 삶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에 안주로 향한 저희 삶이
아버지와 함께로 구속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나아짐을 향한 저희 눈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세상에 설정될 수 없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의 시각이 저희에게 동트게 하옵소서.
저희 삶의 자취가 구속의 자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