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Ludwig Van Beethoven 1770.12.16 -1827.3.26 )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영웅적인 기백에 백절불굴의 투지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을 실천한 인도주의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기 위해 엄한 교육을 시켰다. 그는 모차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었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빈으로 갔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빈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귀병을 앓고 있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성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다.
귀의 통증으로 자살을 결심하여 유서를 제자에게 남기기도 했던 베토벤은 자살로서 자신의 삶과 음악을 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유서를 쓰는 동안 나락 깊숙이 빠져있던 비참한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죽음이 자신을 막을 때까지 신이 부여한 사명을 쫓아 인류를 위해 창작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의 작곡은 이제까지의 것과는 전혀 달라졌다 전통적인 형식보다는 자유롭게 표현된 그리고 단순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강렬하고 웅대한 힘의 표출이 넘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정열과 힘이 넘치면서 드높은 기상과 진지함을 띠고 있다. 베토벤은 오페라를 제외한 전 영역에 걸쳐 많은 곡을 남겼다. 특히 베토벤 음악의 진수는 교향곡 9곡에 물씬 배어있다. 교향곡 제1번은 30세 때 만들었는데 내용에 깊이가 있으며 제3번 영웅에 이르러서는 독창적인 품격이 크게 비약하였다. 이 곡은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한 곡이었다. 교향곡에 웅대한 낭만주의를 가미한 선구적 작품으로 경묘한 스케르초가 잘 어우러져 가히 교향곡 사상 금자탑을 세운 작품이다. 제5번 운명은 열정적이고 화려한 표현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6번 전원은 전원 생활의 추억이 묘사된 평화와 감사의 정이 풍기는 목가적인 노래이다. 제9번 합창은 그의 평생을 결산하는 대작으로 평가된다. 실러의 환희에 합창을 붙인 마지막 곡이 유명하며 성악과 기악을 교향곡에 함께 도입하여 낭만주의 교향곡 역사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명작이다.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바흐의 48곡의 평균율 피아노곡집을 구약에 비교하여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릴 만큼 뛰어난 걸작이 많다.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절망의 실의 속에서 굴하지 않고 예술 속에 자신의 혼신을 다해 위대한 음악을 후세에 남긴 거장 베토벤의 인간승리에 질풍노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존경의 침묵을 나타낸다.
상식의 오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 테레제에게 바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1808년에 작곡된 이 유명한 피아노곡의 원본은 유실됐다. 그러나 베토벤이 그 시기에 말파티라는 빈 출신 의사의 딸 테레제에게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바치기로 했다. 다만 이 악보의 인쇄작업에서 알아보기 힘든 베토벤의 필체가 잘못 읽히는 바람에 ‘테레제’가 ‘엘리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영화 Death in Venice나 Kiss Me Stupid, Fearless, Rosemary's Baby에 그리고 불멸의 여인(Immortal Beloved)에도 실려있는 베토벤의 이 사랑스런 피아노 소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헌정받은 여인은 테레제 폰 말파티(Therese Malfatti)로 알려져 있답니다.
테레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그는 한때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지요. 테레제는 베토벤이 친하게 지내던 빈의 대지주의 딸로서 빈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대단한 미인이었답니다. 머리와 눈동자가 흑갈색인 명랑한 성격의 잘 웃는 아가씨였다고 합니다. 그는 틈만 있으면 테레제의 집을 방문했고 또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답니다. 이때 베토벤은 40세, 테레제는 23세 아래로 아직 17세의 젊은 나이. `엘리제를 위하여'는 그가 40세인 1810년 봄에 테레제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작곡되었다는 일화입니다.
평생을 통해 베토벤은 많은 여인들과 교류를 갖고 애정을 느꼈지만 끝내 그 어떤 여인과도 맺어질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음악가라는 신분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베토벤 스스로가 천성적으로 괴팍하고 고집이 세어 사교력이 결여된 채 자신을 안으로만 묶고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이 아름다운 소품은 너무도 유명한 것이 오히려 불운으로 작용하여 한 때 청소차가 왔다는 신호음악으로 사용된 적도 있고, 전화기에서 대기중이나 휴대폰의 수신 신호를 알려주는 전자 음악에 남용되는 수난을 겪고 있지요. 이 사례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엘리제를 위하여'의 음률은 사랑의 멜로디의 최고봉을 차지하는 깜찍한 名曲임에 틀림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