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을 보고
4730537 의예과 전지예
사실, 교수님께서 대구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시내를 나가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동성아트홀 이라는 곳에 영화를 보러 가라고 하셨을 때,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교양을 선택할 때의 포부대로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닌 읽어보자는 결심을 가지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에 갔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무슨 영화를 볼까 라고 검색했을 때 [각각의 작품마다 파스빈더의 놀라운 재능이 빛나는 … 파스빈더의 도발적이고 강렬한 영화세계와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라는 글귀가 나를 확 사로잡았었다. 약간 귀에 익은 감독이었지만 할리우드영화나 한국의 코믹물만 접하는 나에게 파스빈더 감독은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감독이었기 때문에 이 글귀는 나에게 큰 기대감을 주었고, 그래서 이왕 보는 거 색다른 것을 보자 라는 심산으로 수상도 가장 많이 하고 홀로 b&w 라고 적혀진,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을 선택하게 되었다. 흑백영화는 도덕시간에 본 '모던타임즈'가 다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길 기대하면서 동성아트홀로 향했는데, 같이 간 사람들 모두 '헉' 하고 놀랄 정도로 현대의 멀티플렉스영화관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동성아트홀. 다시 한 번 열악한 독립영화의 환경에 대해 괜한 자괴감을 가지고 영화표를 끊고 영화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본 팜플렛에 있는 파시즘, 필름누아르적, 오마주… 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 때문에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조금 겁을 먹기도 했었지만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조금 섬칫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아늑하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영화가 조금 노란빛을 띨 것이라는 요원의 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거의 맨 뒷줄에 앉은 나는 엄청나게 큰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한번 더 산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보통 영사실 안에서 필름을 돌릴텐데; 여기서는 실제로 뒤에서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뛰었다.
1955년 독일이 배경인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옛스러운 약간은 촌스러우면서 웅장한 음악과 돌아가는 필름, 뒷 장면부터는 거의 음악이 나오지 않고 필름만 돌아가면서 적막이 흐르다가 자동차의 엔진소리만 크게 들리면서 간간히 대사가 이어지고, 다시 비슷한 음악이 깔리고, 음산하고 어두운 흑백의 필름은 계속돌아가고.. 이것은 팜플렛에서처럼 '필름누아르적이구나!'를 몸소 깨닫게 하였다. 헨리에테라는 여자친구가 있는 신문기자 로베르트. 그는 비오는 날 헤메이는 베로니카를 우연히 만나 그녀가 한때의 톱 스타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우산을 씌워준다. 베로니카는 다른사람는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을 대해주었던 로베르트에게 약간의 연정을 품게 되고, 로베르트는 베로니카가 한때의 톱스타인 것을 알고 망가진 여배우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점차 베로니카에게 접근하다가 로베르트 역시 점차 연민과 동정 그리고 사랑을 그녀에게 느끼게 된다. 사실 베로니카는 전 재산을 그녀의 친구 신경과 의사인 카츠에게 넘기고 대신 모르핀 처방을 계속 받고 있었는데, 그녀가 더 이상 모르핀을 댈 돈이 없자 카츠에게 보석이 아직 많다고 구걸하기도 하고, 단역배우로 나가기도 했지만 계속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찍는 장면은 보는 나에게도 측은함을 주었다. 어느 날 베로니카의 집을 방문한 날 로베르트는 가슴을 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베로니카를 그녀의 친구 카츠가 운영하는 병원에 데려다 주고는 베로니카의 전남편을 만나 베로니카가 모르핀 중독임을 알고 여자친구와 함께 병원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처방전으로 모르핀을 받아 내나 빠르게 알아챈 카츠가 사람을 시켜 병원 앞에서 헨리에테를 차동차로 사고사 시킨다. 이에 로베르트는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게 되고 카츠는 더 이상 돈도 대지 못하고 인기도 없이 마약중독에 쩔어 있는 베로니카가 소용없게 되자 그녀를 방안에 가둔 채 알약을 서랍에 두고 휴가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베로니카가 그 약을 먹게 하여 간접적으로 그녀를 죽인다.
유연하지 못하고 급하고 갑작스럽게 필름장면이 넘어가고, 다른 외화보다 자막을 읽기가 괜히 더 힘들어 영화를 보면서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파스빈더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을까?
팜플렛에 적힌 '독일 현대사 3부작의 마지막작품'이라는 글귀를 토대로 하여 나름대로 영화해석을 해 보기로 했다. 독일은 반마르크스, 반자유, 반의회주의적인 극단적이고 미성숙하다고 평가되는 이데올로기인 파시즘을 가졌던 나라로, 한때 무기를 최대량 보유하고 산업혁명도 성공한 매우 근대적이고 강한 포스를 가진 나라였지만 2차 세계대전의 참패와 이데올로기간의 마찰 때문에 급작스럽게 붕괴된 나라이다. 독일의 얘기가 베르니카 포스와 연관되지 않는가? 독일을 배경으로 한 독일감독이 만든 독일영화라고 염두에 두면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나치 전성기의 대스타였던 나이든 여배우의 몰락이 (중학교때 배운) 파시즘독일의 말년을 떠올리게 하여 감독이 혼란스러운 독일 현대사를 통찰력 있게 배우의 일생으로 이입시킨 것을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스타였던 베로니카의 삶이 아니라 점점 몰락해가면서 모르핀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베로니카의 노년기를 중점적이고 묘사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일 말기에 국민들에게 광신적 공포로 다가온 파시즘을 마약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이 영화를 해석하면서 나는, 독일의 시대적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영화를 해석해 버려서 괜히 감상문을 쓰는데 부끄럽습니다 교수님-_ㅠ) 베로니카가 왜 모르핀에 중독되었냐로 베로니카의 인격적 모순이나 자신이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자괴감에서의 회피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 보았지만 이것은 감독이 정확히 제시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깔아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짚지 않고 넘어가겠다.
또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시대의 대 스타였던 노마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녀를 기억하지도 찾지도 않게 되자 화려한 영화계 복귀를 꿈꾸면서 대본작가인 조와 만나 사랑을 하고 결국 조를 죽여버리는 (결말은 조금 다르지만;) 이런 내용을 가진 빌 리와일더의 <선셋 대로>의 오마주이다(노마를 베르니카포스로, 조를 로베르트로). 사실 오마주 라는 말을 영상시간에 흘려들었었지만 이렇게 선셋대로의 줄거리를 검색하여 내가 보았던 베르니카포스의갈망과 비교해보니 확실히 개념이 잡히고 몸소 느낀 것 같아 굉장히 뿌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오마주영화'가 아니라 조금의 다른 쪽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베로니카포스의 갈망'은 여배우의 몰락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독일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여 영화를 만든 것만도 아니다. 감독은 여기에 오마주라는 기법까지 사용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배우와 독일의 화려했던 과거와 비참한 몰락, 그리고 잊혀져 가는 영화를 다시 상기화 시키는 장면들.. 감독이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는 이것으로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인생의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다루고있으며 노년기의 허무함과 허탈함을 또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베로니카포스의 갈망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영상이 있는 할리우드SF영화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멜로코믹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준 영화였다. 영상시간에봤던 물안경같은 실험적인 독립영화와는 또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만들어진 년도가 많이 차이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영시간의 차이와 우선 영화를 보는 내 태도가 달라서 더 큰 상큼한충격 주었던 것 같다. 영화를 반달정도 전에 보았는데 보고나서 영화를 제대로 곱씹어보지 못하여 지금은 대체적인 줄거리와 중간중간의 음악과 몇몇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무척 아쉽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를 읽는 안목을 좀 더 키운 것 같아 개인적으로 뜻깊은 기회였던 것 같아 기쁘다. 줄거리를 보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도 보고싶었지만 지금생각해보면 '베로니카포스의 갈망'을 보지 않고 그것을 보았으면 후회했을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스스로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며 이만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