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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자기가 자기 주장을 뒤집은 사례라고 일반인들은 오해할 수 있겠지만,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평생 주장했던 이론이라도 실제 결과가 맞지 않을 때 망설임 없이 뒤집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3. 자기합리화의 필요성
자살은 월별로 보면 10~12월 사이의 증가 폭이 큰데 '계절성 우울증'이 생기는 시기이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소녀도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되어 죽을 뻔 하다 자기합리화로 살아난다. 노인 화가는 비록 '거짓된 희망'일지언정, 소녀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선물을 베푸는데 우울한 사람에게는 냉혹한 '팩트'보다 따뜻한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그것이 사람에게 이성 외에 감성도 존재하는 이유중 하나이며, 그렇기에 사람은 감정 없는 인형처럼 살 수 없는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죽음은 최후의 수단이니 뭔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구조요청의 암시를 남기는데, 그래서 자살한 사람이 힘들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바빠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걸 자책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은 비록 거짓된 희망일지라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어하기에 팩트폭행으로 "넌 루저야, 실패했잖아, 여자들이 널 거들떠도 안보겠지"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오히려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에, 노인화가처럼 자기합리화를 시켜주는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서 다들 차갑게 외면할 때 그 종교에서는 비록 다른 목적이 있을 지언정 일단 겉으로는 가식적으로라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위로해주니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비합리적인 자기합리화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기에 문제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한 것도 문제다. 현직의사가 쓴 칼럼에서 '이유만 알아도 견딜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유 없는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찾아온 분들께 '그 놈의 코로나가 문제'라고 하면 환자들이 잘 털어내고 좋아진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라도 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관계의 끈을 놓지 말자고 당부한다.# 핑계라도 대며 합리화시켜주면 마음의 상처가 일정부분 치유(힐링)된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 최민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펑펑 울었다. 오히려 은메달을 딴 훈남 오스트리아 파이셔가 최민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고, 파이셔의 품에 안겨 최민호는 펑펑 울었다. '승자'의 등을 다독여주며 위로해주는 '패자' 파이셔의 매너가 화제가 되어 실질적인 승자는 파이셔라는 의견도 있었다. 파이셔도 패배하여 속이 쓰렸을텐데, 패배한 선수 앞에서 최민호가 자기 밖에 모른다는 비판의견도 있었을 정도다. 한데 최민호에게 뭐라 할게 아닌게, 그만큼 금메달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 동메달을 땄던 최민호는 이 정도면 어디냐며 스스로에게 자기합리화를 하여 만족했는데, 기자들과 국민들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여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1등주의' 한국에서는 패배자가 만족하는 모습은 비웃음당하며, 오직 1등이면 다 용서가 되는 사회였던지라, 동메달 따고 만족하던 최민호는 정신승리나 하는 바보취급 당하며 조롱당하고 외면받았고 금메달 딴 선수들만 왕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최민호가 이를 악물고 4년간 지옥의 훈련 끝에 드디어 금메달을 따냈기에,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간 무시당했던 설움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흘렀던 것이고 상대선수를 배려하거나 매너를 지키거나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장 금메달 못따면 본인이 죽게 생겼는데, 상대선수에 대한 배려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였을 수도 있다.
그나마 최민호야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만, 만약 최민호가 파이셔에게 져서 끝내 올림픽 왕좌를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정글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루저들은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경쟁열차에서 뛰어내린 뒤 번아웃 증후군처럼 질려버려 폐인이 되거나, 아예 '인간 혐오증'에 걸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회와 손절하고 혼자 사는 삶을 택할 수도 있다. 파이셔처럼 패자라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승자에게 손을 내밀며 위로해줄 수 있는 문화가 아닌, 패자는 사람취급도 못받고 손가락질 받으며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문화에서 상처받은 루저라면 비참한 심정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또 흙수저를 자녀에게 물려주면 자녀 역시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을 것이 뻔하니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미안해서 출산을 기피할 수도 있다.
정윤수 스포츠문화 칼럼니스트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위대한 체념'을 언급했다. 한만청 서울대병원장이 발간한 책에서 ‘암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 놈과 친구가 되라’고 충고했듯이 어쩌면 상실과 결핍을 극복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감싸안고 어루만지는 것이 약이 되는 수가 있다고 한다. 상실과 결핍은 인간의 숙명이기에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며,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고통이라면 어차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껴안고 가야하므로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위대한 체념’으로 끌어안는 것이 운명이라고 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1등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며, 엄청난 성과를 올려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번보다 더 완벽한 성취를 이루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가 끝없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질주하고 있는데, 뭐든지 완벽하게 완성하려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의 무결점 심리때문이라고 한다. 욕망의 열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바로 자기합리화다. 내가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성취에도 기쁘게 생각하며, 사소한 일상에도 무한한 감사를 표명한다면 큰 성공만이 성공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갭 모에처럼 나보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을 바라보면 그만큼의 갭으로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근거있는' 합리화다. 또 '곡선의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하는데, 곡선의 마음은 자신과의 경쟁을 즐긴다고 한다.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라며 행복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 있다고 한다. 마치 게임에서 엔딩을 보면 현자타임을 느끼고, 엔딩까지 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과 같다.
과거 한국에서 올림픽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패배자'처럼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강초현이라는 어린 고등학생 선수가 2000 시드니 올림픽 사격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좋아하는 모습으로 신선한 문화충격을 줬다. 올림픽 은메달로 만족하면 정신승리니 자기합리화니 하며 비웃고 더 채찍질해야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으나, 유영만 교수는 오히려 1등을 해야만 성공이라고 해석하는 성공 중독증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강초현도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는 순간 탄식하며 울기도 했었으니, 정말 솔직한 마음이라면 속상할 것이다. 하지만 시상대에서는 이내 밝은 모습으로 좋아했는데, "은메달이라도 어디냐"라고 생각하며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고 금메달에 대한 욕망만 내세웠다면 시상대에서 죽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직선의 마음은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지만 곡선의 마음은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믿는다며, 비록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탄력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만약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자기합리화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영영 못일어나며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다.
보성 어부 살인 사건 가해자의 아들은 자살했다. 일본에서도 가해자의 형제나 부모들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신 사과하고 자살하기도 하는데, 유럽 등지에서는 가해자의 가족을 보호하는 NGO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돌보다가 손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사하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애인을 불렀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내가 부르지 않았다면 살았을테니 내가 죽였다며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폐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가 사고를 치든 사고를 당하든 '내 잘못'이라고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일이 많다.
이런 사례들은 오히려 주변 지인들이 자기합리화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운이 없었을 뿐이야"라고 위로해주나, 자기 책임이라고 죄책감에 빠지기 시작하면 극심한 정신적 고통 끝에 끝내 자살하기도 한다. 이때 어느 정도 자기합리화를 해야 마음의 위안이 되며 살아날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말들을 "그저 예의상 위로일 뿐"이라며 무시하고 자기합리화는 싫다고 거부하다간 죄책감을 못이겨 자살을 택할 수도 있다.
김종인/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굽는 걸 보고, 먹고 싶은데 돈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겠어?"##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탐스러워 보이는 포도를 어떻게든 따먹으려 노력하던 여우가 도저히 안되니까 "어차피 신포도일꺼야"라며 룰루랄라 떠났다는 얘기다. 정신승리 내지는 자기합리화로 인용되긴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애초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은 채 신포도라고 외면해버렸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도저히 안된다면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명언처럼 자기합리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드래곤볼의 크리링은 인조인간 18호라는 미인 아내를 얻으나, 사실 처음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차였었다. 냉정한 18호가 "웃기는 소리 하지마, 손이라도 잡아달라는 거냐? 애늙은이 같은 놈"이라고 차갑게 내뱉고 떠나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낙담한다. 하지만 이내 어차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꽃미남 17호가 함께 있어야 제격이라며 오히려 둘이 잘되길 응원한다. 여우가 신포도를 깨끗하게 단념하듯 크리링도 쿨하게 포기했기에 스트레스에서 해방됐으나, 만약 차였음에도 계속 집착한다면 폐인이 되거나 스토커가 되는 등 현실부정을 하며 정신이상까지 올 수도 있다. 심지어 실연당한 후 충격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하면 더 멀어진다'는 말처럼, 오히려 스토커처럼 달라붙는다면 더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군대명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도 바람직한 자기합리화의 예이다. 물론 피할 수 있다면 굳이 받아들여 즐기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장일단'이라고, 안좋은 일에도 잘 찾아보면 작지만 장점은 있으니 그걸로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실제 '긍정 강사' 김미경은 모든 불행은 반드시 방향을 두개 갖고 온다면서 이것때문에 잘못될 방향과 한단계 도약할 방향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불행이 나한테 주는 선물을 고민해보라고 하는데, 김미경 강사 역시 IMF때 폭망하여 자살 생각을 했으나, 오히려 IMF와 관련된 책을 써서 히트치며 스스로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냈다. 한때 잘나가던 김미경 강사는 IMF때 직격탄을 맞아 허름한 집으로 옮겼을 때 정말 절망스럽고 죽고싶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는데, 만약 계속 예전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정말 폐인이 되거나 신변비관으로 자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신포도의 여우'처럼 그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동아줄을 찾아 스스로 부여잡아 재기할 수 있었다.
4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계절성 우울증'[3]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도 여주인공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울증이 점차 악화된다. 계절성 우울증의 증상은 대개 가을과 겨울에 시작되어 봄에 회복된다고 한다. 신체도 환절기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감기에 걸리는 등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데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도 군대 명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자기합리화'가 일정부분 필요하다. 마치 새로운 집에 이사가거나 직장을 옮겼을 때 낯설어서 모든게 다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때는, 계속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는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게 최선이듯 말이다. 계속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해봐야 우울증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집에서도 반팔과 반바지에서 긴팔과 긴바지로 바뀌어 둔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빨리 적응해서 불편을 못느끼도록 하는게 최선이다. 실제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겼거나, 과거 잘나가다가 명예와 부, 애인을 잃은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폐인이 되거나 자살하기도 하는데, 긍정강사 김미경처럼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만이 우울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일요일'이란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자기 합리화를 활용한다. 빡센 학교에 온 학생이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기숙사 생활에 무척 힘들어하는데, 그의 유일한 낙은 바로 일요일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숨쉴틈 없는 하루일정 속에서 유일한 '보상'인 일요일에 뭐하고 놀까, 고민하면서 보내는게 낙이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기다렸던 일요일에 이거하기엔 아깝고, 저거하기엔 아깝고 각만 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가 저물어가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일기장에 "그래도 내일부터 다시 일요일을 기다리는 희망은 있다"고 써놓으며 끝을 맺는데, 마찬가지로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기보단 "다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 우울증세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뜻하는 '항상성'은 심리학에서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어도 친숙한 대상은 항상 같게 지각되는 현상'으로 정의하는데, 한번 싫다고 여기면 계속 싫게 느껴지거나 점점 더 싫어지며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장일단'이므로 분명 가을과 겨울에도 장점은 있으므로, 그 장점을 찾아 위안하는게 최선일 수 있다. 심지어 계절성 우울증이 심하고 건조한 환경에 피부 트러블이 심한 경우는 에버그린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살고싶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처럼 본인이 싱가포르에 이민가서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야 이민을 희망으로 삼아 버티면 된다. 하지만 본인이 이민갈 처지가 안되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싱가포르에 집착하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것처럼 우울증만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 차라리 그냥 쳐다보지 말고, 마음에서 내려놓고 한국에서 장점을 찾아 자기합리화라도 해서 '즐기려는 노력'을 통해 우울증을 완화시키는게 최선일 수 있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다. 예를 들면 모태솔로들은 애인만 생겨도 좋겠다고 하고, 심지어 여자 손만 잡아봐도 좋겠다고 하지만 막상 애인이 생기면 이제 애인을 당연하게 여기고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대부분 결혼하는 선에서 만족하나, 배우자의 모든걸 '소유'해야한다고 여겨 의처증과 의부증에 걸리며 배우자의 사생활을 통제하기도 한다. 행복강사들이 '놓아주라'고 하는데, 과도한 집착, 배우자가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집착하면 본인이 괴로울 수 있다. 굶어죽기 직전에 짜장면 한그릇 먹으면 감동할 수 있으나, 최고 맛있는 어머니의 집밥에 눈높이를 맞추면, 아무리 맛있는 맛집에 가도 불만족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욕구도 끝이 없다. 빠삐용은 그저 지옥같은 감옥에서 탈출한 것만으로 무한 자유의 쾌감을 만끽했으나, 결혼을 하면 자유를 잃고 억압적인 생활을 한다며 프리하게 살 수 있고 생활비도 적게 들어 월급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솔로만을 고집하거나, 아나키스트처럼 국가의 존재 자체가 억압이라며 국가해체를 주장하기도 한다.[4] 아무리 돈을 가져도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며 만족하지 못하여 '돈의 노예'가 되는 사람처럼, 아무리 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도 '완벽한 자유'가 아니라고 괴로워하며 '자유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자유란 불가능하다. 자유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명품을 다 가지고 원하는 이성을 다 사귀고 심시티처럼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주무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평생 못가진 것을 바라보며 괴로워하다 죽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합리화'이다.
3.1.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 진통제[편집]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말이 있는데, 종교가 망상이니 정신승리라는 것이다. 자기합리화 역시 일종의 정신적 진통제이다. '통증'은 나쁜게 아니라, 우리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경보장치같은 것이다. 그래서 통증은 원인파악과 근본치료가 우선이다. 자기합리화가 문제가 되는 사례들은, 마치 통증만 있으면 바로 진통제에 의존하는 격으로 과유불급에 해당한다. 사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그간 쌓아온 사회적 평판이나 인지도, 부 등 잃을 게 많다. 또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이나 잘못된 제도를 깨닫고 바꾸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므로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모른 척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당장 회피하려 자기합리화를 하며 무시하다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마치 통증을 무시하고 진통제를 남용하다보면 병을 키워 나중에 손을 못쓸 정도로 악화되는 격이다. 어떤 문제의식이나 불만, 욕구도 처음부터 자기합리화를 해서 없애기보다는, 일단 해결하려 본인이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안될때 최후의 방편으로 시도를 해야하는 것이다.
실제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귀울림)'의 치료법도 근본치료가 원칙이지만, 난치성이거나 원인불명이라 치료가 힘든 경우엔 차선책으로 긍정적 사고와 자연의 소리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치유로 해결한다. 이명을 냉장고 소리나 컴퓨터 소리와 같은 중립적인 신호로 적응시켜주는 ‘이명재활치료법(TRT)’을 통해 생활속에서 습관화시키면 궁극적으로는 이명을 인식하지 않는 단계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명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갖게 되면 증상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평소에는 생활소음에 묻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완전히 방음된 공간에서는 약 95%가 20dB이하의 이명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평소 이명이 있어도 그냥 누구나 다 있는 건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의식하지도 못하다가, 이명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글을 보거나 잠들기 전 조용할 때 문득 ‘이명’이 있음을 처음 감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한번 이명이 들리기 시작하면 계속 신경이 쓰여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 게 특징이다.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처럼 새삼 자각하니 계속 의식되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영명 소리이비인후과 원장은 이명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없애고 ‘머리 속의 자연스럽고 중립적인 소리’로 반응하도록 도와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원래 이명에 길들여져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이 어쩌다 인식하게 되어 괴로워지면, 다시 이명에 길들여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이명은 평소 너무 조용한 환경은 증상을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하라고 조언하는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속담과 흡사하다. 즉, 의식될 수 있는 환경을 피하란 것이다. 사실 애완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산책을 자주 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시키지마라고 하는데, 한번 마음에 불을 지르면 계속 산책시켜줘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욕구불만으로 낑낑대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빈민가족들도 금수저 상류층이 사는 부촌에 한번 가봤다가 눈이 뒤집혀서 범죄까지 저지른다. '안고수저'란 사자성어가 있는데 눈은 높지만 손은 낮다는 말이다. 견물생심이라고, 보면 마음이 생기므로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로워진다. 그래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란 격언도 있는데, 가질 수 없다면 의식되는 환경을 피하는게 최선이다. 술과 담배도 모를 땐 전혀 불만없이 살다가 한번 맛을 본 후에 끊으려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에 금연, 금주를 하는 사람들은 아예 술과 담배를 쳐다도 안보려 노력한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의 눈 앞에 치킨이 있으면 자꾸 의식되어 괴로우니 눈에 안띄게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할 때는 자기합리화가 필요하다. 작은 불을 큰 불로 제압하여 꺼버리듯 외부의 소음으로 이명을 묻히게 해 의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애인을 잃어 괴로운 사람이 계속 집착하면 더 괴로워지니 다른 취미를 가지면서 잊으려 노력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소시민의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불면증을 앓게 되어 의사와 상담하자 의사는 불면증으로 죽을 일은 없으니, 정말 고통이 뭔지 알고 싶으면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에 가 보라고 한다. 주인공은 환자인 척 참석해 안도감을 느낀 뒤 잠을 설치지 않게 되었다. 의사의 처방은 일종의 '자기합리화' 권유였는데, 실제로 '봉사활동'도 이런 기능을 한다. 아프리카 잠비아 봉사활동 기사에는 참가자가 잠비아에 있으면서 제일 그리웠던 것이 세탁기라며, 세상에는 정말 감사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놓치고 부족한 것들만을 좇아 불평, 불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인터뷰가 있다. 현실을 즐기고 행복을 추구하는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왔다는 참가자는 물, 전기, 인터넷 등 이전에는 당연시 여기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세상은 감사할 것들로 꽉 차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전기가 없어 밤이 되면 칠흑처럼 깜깜한 아프리카에 있다가, 밤에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서울의 야경을 바라볼 때 아름답다거나 공항 내에 환하게 밝고 온갖 먹을 것이 넘쳐있는 편의점을 볼 때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군부대 시설 근처나 황량한 광야 같은 교외지역에서 밤에 편의점 하나만 발견해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폐쇄된 우한에서 칠흑같은 어둠속에 불 밝힌 편의점이란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행복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 있다는 한양대 교수의 칼럼에도 일정부분 자기합리화를 활용하는 것을 권고한다. '곡선의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하는데, 사실 원하는 걸 바로 얻을 수 있는 능력자라면 굳이 돌아갈 것 없이 '직선의 마음'을 가져도 상관은 없다. 문제는 '안고수저'로서 능력은 안되는데 가지려고 노력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명품을 마련하기위해 몸을 팔거나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할 정도다. 마음은 급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더디다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괴롭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열차에서 뛰어 내려 자신과의 경쟁을 즐기고 내가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조언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이전의 나와 비교하며 이전보다 발전해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자기합리화의 속성이 있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여유롭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승리하는 재미와 쾌감'을 느껴도 되기 때문에, 굳이 억지로 경쟁열차에서 내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자, 즉 루저는 경쟁이 재밌지가 않고 괴로우니 그냥 아예 남과 비교하지말고 '이길 자신이 있는' 이전의 나와 비교하며 발전하는 재미를 느끼라는 것인데, 조영남의 '도시여 안녕'처럼 너무 지쳐 아예 사회와 손절해버리고 싶을 지경이라면 일정부분 자기합리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블레어 쉐퍼드 교수는 16살 소년들의 사망 원인 중 하나는 자살이라며 소셜미디어의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인터넷 시대에는 유명인들이 '익명의 힘'을 빌린 무자비한 악플에 상처를 받아 자살하거나 SNS의 발달로 남과 비교하며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버리는 '라이벌 증후군'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셰인 로펜스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의 존재는 롤모델로서 동기부여를 통해 가능성을 넓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자기 참조형'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한다. 자기 참조형 인간은 자신을 평가할 때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성과만을 문제삼는다.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들고, 그러다보면 출혈경쟁을 벌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렇게 해서 하늘의 구름 위에 올라섰다면 모를까, 개천의 가재로 전락했다면 좌절감에 자살을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고 하는 것인데 '우물 안 개구리'가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처럼 느껴지는 심리를 활용하여 당장은 못가지면 죽을 것 같더라도, 또 다른 목표나 이성에 마음을 붙이고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하듯' 자연스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견물생심'처럼 자기가 보는 것에 마음이 생기므로 못가진 것을 마음에서 놓아주고 자기가 노력하면 가질 수 있을 만한 것을 바라보며 마음을 붙이는 것이다.
마음에서 내려놓고 집착에서 해방되라는 무소유 철학도 자기합리화의 속성이 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말처럼 위너를 바라보며 열폭하며 부러워하는 루저들의 반응이 위너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되어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된다. 관종에게는 무관심이 답이라는 말처럼, 위너가 기껏 자랑하려고 인증샷 올렸는데(명품이든 애인이든) 남들이 관심없으면 '악플보다 더 무서운게 무플'이란 말처럼 민망해서 상처받을 수 있고 특권의식이 약화될 수 있다. 이들에게 질투난다면 아예 자기합리화를 통해 관심을 꺼버리고 외면해버리는게 차라리 데미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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