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베드로가 - 물 위를 걸은 기록은 이곳에서만 나온다. 이 부분은 14-17장 가운데서 베드로가 예수께 특별한 취급을 받는 세 경우 중의 하나로서, 베노이트)는 이 기사에서 이미 베드로가 수석 제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주시어든 - 앞에 '에이'는 접속사이며, 뒤에 '에이'는 '...이다, 있다'의 뜻인 '에이미' 동사의 2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 형태이다.
그런데 접속사 '에이'는 가정적 조건문에서는 '...인지, 아닌지'의 뜻을 갖지만, 본문의 경우와 같이 결론이 확실한 내용에서 도출되어 직설법 동사와 연합되는 경우에는 토론적으로 사용되어 '과연 주님이시므로'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만일 주시어든'이라는 말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는 사람이 주님이신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한 의도에서 한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지금 물 위로 걸어 오신다고 하는 사실과 주님의 명령과 그 능력에 의해 그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직설적이고 열정적인 베드로의 일면을 보여준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베드로가 '나로 하여금 물 위로 걷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의 '명령'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분 자신의 말씀보다 그분의 초자연적 능력을 더 신뢰하는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친지를 창조하셨으며, 말씀이신 예수께서 육신이 되셔서 그 말씀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천국 비밀을 선포해 주심과 같이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 한 마디에 의해 자신이 그 무엇이라도 할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물 위를 걸으라고 하는 허락과 능력이 주어지기를 요구하는 베드로의 행동은 비록 순간적이기는 했지만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그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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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오라 하시니...배에서 내려 - 예수의 '오라'는 명령에는 이미 당신을 믿고 오는 자에 대해 보호와 안전을 마련해 두고 계신 권위에 찬 명령이다. 한편 신앙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전인격을 복종시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과 같다.
아브라함도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오라' 부르시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믿음으로 알지 못하는 세계 풍랑이 휘몰아치는 바다로 나아갔다.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바람을 보고 - 충동적인 성격의 베드로가 예수에게로 나아가는 동안 관심의 대상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믿음'의 고갈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었지만 폭풍의 위험에도 침착히 인내할 수 있을 만큼의 더 큰 믿음이 없었다는, 즉 믿음의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정녕 그는 예수만 바라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밑)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삼킬듯이 달려드는 풍랑에 대해 두려워 하게 되었다.
정녕 온전한 믿음의 눈은 결코 두 개의 초점 을 가질 수 없다.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 베드로는 예수와 그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앙하는 믿음의 빛을 잃었을 때, 그 즉시 예수의 보호권에서 벗어나 중력에 의해 빠져드는 자연 현상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실로 신앙 세계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물 위가 아니면 물 아래 둘 중 하나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의 뜻인 '소손'은 '구원하다'란 의미인 '소조'의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그때의 상황이 매우 긴박했음을 시사해준다.
물론 본문에서의 이 말은 물에 빠지게 된 베드로 자신의 몸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종종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영혼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났던 죄인이
그 죄악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기를 원할 때 부르짖는 소리이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한계를 깨닫고 절망 가운데서 비로소 주님께 돌아설 때 하는 첫 마디에 해당한다.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 주님의 신속한 구원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물에 빠지는 그를 건지기 위해서는 단 한 마디의 명령으로 충분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붙잡으셨다고 하는 이 말은 특별히 주의 '붙잡으시는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로 거친 죄악의 세상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즉시 붙잡아 주시는 주님에 의해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존,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믿음이 적은 자 - 이 표헌은 신약성경에 모두 다섯 번 나오는데, 항상 제자들에게 말할 때 사용되었다. 이는 가장 믿음이 깊어야 할 그들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예수로 하여금 그들을 책망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마태는 막 4:30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표현을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마태가 제자들이 이미 예수의 제자가 된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문에서 베드로는 비록 충동적이나마 그리스도와 그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소유했던 터였다
한편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은 '오라'하신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전적으로 신뢰하는 참 믿음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책망은 믿음의 양(적다, 많다)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 중에도 그리스도께 대한 영속적 신앙을 간직하는 것, 곧 그 믿음의 질적 측면을 강조한 말이다.
왜 의심하였느냐 '왜'라는 말은 히브리어 '레마'에 상당 하는 말로 대개의 일반적인 표현인 '디아 티'와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디아 티'는 '무엇 때문에'라는 의미의 '새'이며 '에이스 티'는 '무엇을 위하며라는 의미의 '왜'이다. 즉 '에이스 티'는 '디아 티'의 물음에 비해 보다 호의적인 의도에서의 물음이다.
즉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왜 의심하였는지 그 의심의 원인을 알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무슨 목적으로', 즉 '무엇을 위하여' 의심하였는가를 물으신 것이다. 예수가 손을 내밀면 잡을 듯한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한 베드로는 무엇을 의심하였는가?
한편 여기서 '의심하였느냐'란 말의 원뜻은 '이중적으로 하다'는 의미로서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다혈질적인 베드로의 심히 당황해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이다.
[마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바람이 그치는지라 -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기적이 풍랑 중의 첫번째 기적이라면 배에 오르자 마자 즉시 바람이 그친 것은 두번째 기적이다. '수고', '고통', '피곤'을 의미하는 '코포스'에서 나온 '그치다'라고 하는 동사는 바람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 고통 속에서 헤어나와 잠잠케 되고 평온함을 찾은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막 4:41은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라고 표현하였다. 정녕 예수는 모든 만물을 지배하시는 만유의 주이신 동시에 모든 혼란과 두려움을 잠재우시는 질서와 평화의 왕이시다 그가 거하시는 장소, 그가 머무시는 인격에는 영원한 샬롬만이 있을 것이다.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절하며( - 헬라어의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경배하였다고 하는 말로, 이번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달아 알므로써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전적인 신앙 고백의 준비가 마련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 이는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칭호에 상당하는 용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완전한 칭호로 예수를 불렀던 첫번째 경우이다. 물론 이 칭호는 3:17에 나타난 하늘의 성에서 계시된 바 있고, 광야 시험 중 사단도 이 칭호를 사용한 적이 있다. 또한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아들'이라 부른 경우도 있다 . 실로 예수께서는 하늘과 흑암의 세력과 또한 땅의 무리들 및 자신이 스스로인정하시는 완전한 구주요 메시야이셨던 것이다.
[마 14:34]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게네사렛 -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자리잡고 있는 기후가 온화할 뿐 아니라 비옥한 평야지대이며 북쪽에는 가버나움이, 남쪽에는 디베랴가 위치해 있다. 한편 게네사렛 사람들이 즉시 예수를 알아보고 그에게 모여 들었다고 하는 사실은 예수의 사역 범위가 얼마나 넓었는가를 말해준다.
[마 14: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 '통지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아포스텔로'는 사자를 보내어 소식을 전한다고 하는 뜻으로 게네사렛 사람들이 이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 다니며 주님이 그들의 동리에 오신 사실을 가르쳐 주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이는 마침내 예수의 공적인 사역의 범위가 온 유대 전역에까지 미치게 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 14: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옷가에라도 손을 데게 하시기를 - 예수의 신성에 대한 엄청난 소문은 9:20의 혈루증의 여인의 경우와도 같이 그분이 입은 옷을 손으로 대기만 하여도 병을 낫게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따라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므로
예수께서 한 사람씩 차례로 만져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던 그들은 비록 예수께서 만져주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자 자신이 그분에게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는 강렬한 믿음을 소유하였던 것 같다.
나음을 얻으니라 - '완전히 구원을 받다' 의미로 병자들이 육신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 즉 죄된 세상의 여러 욕망이 주는 고통 속에서도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