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코로 〈광야의 하갈〉 1835년, 41 x 132cm, 프랑스 파리 G.Renand 컬렉션
아브라함이 후처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다. “떡과 물 한 가죽 부대”가 위자료다. 여자 어깨에 올려진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는 금세 떨어졌을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바닥났다는 건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 죽을 것 같은 자리에서 하갈은 그저 울었다.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창 21:16). 하갈이 이스마엘과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어린 아들을 포기하는 행동이다. 우연히 지나가는 누군가가 데려가 주기를 희망했을까, 혹은 들짐승의 공격을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며 절망했을까. 희망 아닌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고 끔찍한 절망에 이르지도 않았는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1796-1875)는 탈진해 널브러진 이스마엘을 바위 위에 눕힌 채 왼 손바닥을 하늘로 들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하갈을 그렸다. 하갈이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하갈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이유는 큰 그늘이 하갈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카미유 코로는 이스마엘을 눕힌 바위를 중심으로 크고 두터운 그늘을 펼쳐 놓았다. 가죽 부대의 물이 다 떨어진 때에 광야의 태양은 치명적이다. 눈을 뜬 채 고개를 들어 태양을 마주 보는 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광야에서 “낮의 해”는 대단히 치명적이고 자칫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그늘을 펴서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를 “낮의 해”에서 지켜주신 까닭에 하갈은 하늘을 볼 수 있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6).
화면 중앙 상단에 천사가 날아오고 있지만 하갈은 아직 천사를 보지 못했다. 하갈에게는 아직 천사가 보이지 않고, 아들 이스마엘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힘이 되진 않는다. 카미유 코로는 죽은 듯 널브러진 아들과 멀리 있어 작게 그려진 천사를 통해 하갈의 외로움을 표현했다. 또한 외로움 속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낸다. 하갈은 혼자 있지만 사실 혼자가 아님을 그림을 보는 이는 안다. 구름이 “낮의 해”에서 하갈을 지키고, 아직 도착하진 않았지만 천사가 날아오잖은가.
하나님께서 “그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신다(창 21:17). 아이 이스마엘은 말로 구성된 기도를 올리지 못해 그저 울었고 그러다 탈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탈진하도록 흘린 눈물을 받으시고 우물을 보여 주신다(창 21:19). 우물을 그리지 않은 카미유의 그림은 미완성이다. 어깨에 놓였던 “물 한 가죽 부대”는 무겁기만 했는데, 하나님께서 마르지 않을 “우물”을 주신다. 눈물이 우물이 되었을까. 여기 우는 자들의 뜨거운 눈물은 마르고, 시원한 우물이 흐르게 하소서.
첫댓글 여기 우는 자들의 뜨거운 눈물은 마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원한 우물이 흐르게 하소서.. 아멘!!
아멘
하갈, 이스마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여기에 우는 자들에게도 마르지 않을 우물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