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길을 건너려면 계단 밖에 없었다. 건널목도 없고 승강기도 없다. 찾아보려 두리번대다 물었지만 지하도로 가라고 한다. 내가 못 찾았는지 모르나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다니 의외다.
5.18광장에 내리니 5.18 감옥체험과 법정체험자 모집 현수막이 붙어 있다. 넓고 평탄한 길은 캄캄하고 걷는 사람도 없는데 호텔은 찜질방처럼 건물 전체가 푸른빛이 번쩍인다.
호텔 로비에는 외국사람들이 줄을 서서 방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한참을 서 있어야했다. 내국인 관광객들도 단체로 들어온다. 모두 들떠 있고 즐거운 표정이다.
모임을 마치고 거리로 나가니 5.18전야제라고 사람들이 몰려간다.
가방이 무거웠지만 우리는 양림동 역사 문화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양림동 입구에서 만난 젊은 여자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서 동사무소 짐 맡길 곳을 찾아 갔으나 6시가 다되어 맡아 줄 수 없다고 한다.
작은 돌을 깔아 운치 있게 만든 길을 가방을 끌고 걸으니 소리 요란하여 온 동네가 들썩인다.
대구, 군산, 전주 보다 야트막한 언덕과 구부러진 오솔길 등 녹지가 많고 도심과 떨어진 곳에 있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푸른 길공원이라는 곳은 비록 아파트 옆 가로수 길이지만 도심에 그렇게 길고 우거진 산책길을 만들어 놓다니 눈이 시원하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오래된 기와집들은 조용한 골목길에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잘 가꿔진 정원수들은 대문 틈으로 엿보고 싶게 만든다.
지방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된 이 장우 가옥은 대문간, 행랑, 곳간, 안채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ㄱ자형 팔작집으로 서울 북촌 으리으리한 양반집 보다 크고 멋지고 아름답다. 골목 끝에 있는 최 승효 가옥은 더 넓고 더 높은 담으로 둘러쌓여 있다. 항일 운동 거점으로 삼았다는데 미공개 가옥이어서 정말 아쉽다. 만일 개방한다면 광주의 대단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그 외 회색벽돌 네덜란드 선교사 사택과 오웬 기념관 건물, 유진벨 선교 기념관 등은 건물들이 언덕 위 푸른 잔디밭과 수목들 속에 외국풍경 처럼 남아있어 초기 선교활동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
10년 만에 다시 가본 전주가 민박과 상점의 난립으로 근대한옥 마을 고유의 감동을 깨뜨려 버렸다면 광주는 안목 높은 공무원을 배치하어 주름진 얼굴에 분화장하는 듯한 배끼기 정책이 아닌 세련된 문화거리의 지평을 열었으면 좋겠다.
광주는 보수적이어서인지 찢어진 청바지, 엉덩이가 삐져나오는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은 사람이 없다. 긴치마를 입고 부채를 들고 걸어 다니는 여자들을 따뜻한 마음이 되어 바라본다.
전주 한옥 마을에 갔을 때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던지 분홍저고리와 초록 치마를 입어도 예쁘게 보일 텐데 여자들이 번쩍이는 금박 무늬와 허리에 커다란 리본을 맨 이상한 한복을 입고 남자애들도 기생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담배를 피우고 해서 놀이 삼아 한다지만 외국인도 많이 오는데 한복이 너무 훼손되는 것 같아 보기가 안 좋았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 빵집으로 가서 빵을 사서 먹어 보니 너무 부드럽고 맛이 깨끗해서 이것이 바로 TV에서 줄을 서서 먹는 자연발효 빵 맛인가 발동이 걸려 종류대로 사서 먹어보니 치즈에 단맛을 섞은 거라 입속에 더 집어넣고 싶지 않고 너무 달고 등등. 시행착오는 언제나 씁쓰름하다.
라면이 이천원이라고 씌어있다. 볶음밥, 김치 찌게, 된장찌게는 사천원이다. 이렇게 싸다니 어떤 맛인지 궁금해지고 노란 알루미늄 냄비에 센 프로판 가스불로 끓인 꼬들꼬들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니 나이든 여주인이 인상을 팍 쓰고 쳐다본다. 그릇을 던지는 것처럼 소리 내서 설겆이를 해서 신경 쓰이게 만든다.
단무지는 참기름과 고추가루를 뿌려져 있고 김치는 신 냄새가 진동한다.
파가 듬뿍 든 뜨거운 라면을 건져 먹고 나서 빵을 라면 국물에 찍어 먹는다. 예전에 울릉도 배안에서 식빵을 김치와 먹으니 옆자리 남자들이 나이가 든 티가 나요 했던 거 기억나나 하면서 우리는 또 킥킥대며 웃는다.
잔돈이 없다고 카드로 계산하라고 한다. 혼자 일해서 힘든가 봐요 하니 그때서야 조금 웃는다. 이 무슨 필요 없는 말을 하고 있나 싶어 고개를 흔들며 나를 책망한다.
사람들은 서울로 떠나고 혼자 남았다. 고속버스는 40분 뒤 아홉시 막차 하나 남았다. 미리 차 시간을 알아두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없나. 왜 머릿속에는 잡다한 생각들이 휘젓고 있어 몽롱한지 알 수 없다.
기다리던 여행도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이리저리 한없이 걷는 시간은 내게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다가오고 지나가는 풍경은 영화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어떤 스토리를 만들고 어떤 장치를 만들고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홀로 남겨진 시간이 되면 그네에서 내려진 아이처럼 생소한 표정이 되어 손에 들려진 버스표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늙는 다는 것은 아이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첫댓글 한국의 예향이며 빛고을 광주는 전라의 남쪽에
자리잡은 맛의 도시로도 알려져있지요.
호남출신이 아니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재직 중 광주에 수차 다녀온 적이 있는 바 제일
인상깊은 것은 우선 음식맛이 뛰어나다는 점 입니다.
제가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지 못한 제일 큰 원인은
바로 깊은 맛이 있는 우리음식 때문이기도 한데
호남 광주의 음식은 그 중 선두급이 아닐까 합니다.
잔잔한 정이 스며드는 수준높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광주에서 육전과 생선 조림을 먹었는데 오래 기억에 남아 다시 갔을 때도 큰 못이 옆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또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전주나 광주가 미세먼지가 많이 심해진 겁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무심코 쓴 제목이 광주가 들어가니 관심이 쏟아진듯 합니다
그리운 고향 광주에 대한 글이 나를 멈추게 했습니다.
떠나 온 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양림동은 내 기억에 어렴풋이 남을 뿐입니다.
어딘들 모두가 내 마음 같기야 하겠습니까.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 닷는대로 잘 다녀 오셨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광주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무등산을 입구만 가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제대로 걸어보려고 합니다
전라도 남자들은 절대로 처자식을 굶기지 않는다하고 여자는 음식 솜씨 좋고 애교가 많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사돈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엣생각 더듬으며 한번 다녀 오시면 그리움이 반가움으로 다가올 성 싶습니다.
@스페샬 정겨운 내용이 가득한 글 감사합니다.
누군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조만간 짬을 내어 무등산도 올라가고
그리운 이들과의 정담어린 시간도 갖으면서
육전에 막걸리 한사발하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월광주라고해서 무슨정치적인 말씀인가했는데, 다소 무거운내용아닐까하는 예상과는달리
그저 여행자의 눈에보이시는데로 담담히적어놓으신 글이라 반가웠습니다.
편안하게 저도 같이 여행했습니다.....
전국 도시에 사는 아는 분들이 돌아 가면서 모임을 주최합니다. 각자 애향심을 발휘하여 오는 분들이 많이 듣고 보게 합니다.
해외여행도 좋지만 국내여행이 더 오래 기억되고 나라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사는 고장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발걸음이라 생각됩니다.
봄에는 대전 현충원과 한밭 수목원을 다녀 왔는데 안 가본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답니다. 5월 초에는 이팝나무가 눈송이 처럼 활짝 피어 올랐고 수목원 울타리가 모두 찔레꽃으로 되어 있으니 6월이면 향기가 가득할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써 주신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네요^^
좋은글 감사함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낯설어도 고향은 그 이름만으로 푸근하고 정겹습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일기를 쓸 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쓰신 것 같습니다.
5월 광주 그 자체를 느끼면서 다녀오신 게 신선하고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