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어원에 대하여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는 집을 ‘절’이라 한다. 이 절이란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절의 고어는 ‘뎔’이다. 훈민정음해례의 용자례에 ‘뎔 爲佛寺’라 되어 있고, 유합(類合)이란 책에 寺(사) 자를 풀이하여 ‘뎔 ᄉᆞ’라 하고 있다. 그러니 이 말은 ‘뎔>절’의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이 ‘절’의 어원에 대해서는 지금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한자어 ‘찰(刹)’에서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묵호자가 신라에 불법을 전한 집인 ‘모례(毛禮)’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례라고 주장하는 이의 의견을 먼저 살펴보자. 절이란 말은 신라에 불법을 전한 묵호자와 관련 있는 ‘모례’의 이두식 발음인 ‘털래’의 ‘털’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털’이란 말이 변하여 ‘절’로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寺(사)를 ‘tera’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테라’는 인도 범어(梵語)인 ‘dera’에서 온 것이지 ‘털’에서 온 것은 아니다. 또 ‘털’에서 ‘뎔’이 되었다는 것은 국어의 음운변화 법칙상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양주동은 절이 ‘찰(刹)’에서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 모례설을 부정하였다. 그는 모례(毛禮)를 ‘터리’라고 해석하면서 ‘털’이 ‘절’로 변했다는 것은 부회한 속설이라 하였다. 그는 ‘찰(刹)’의 음이 변하여 ‘절’이 되었다고 하였다. ‘刹(찰)’은 범어의 Ksetra인데, 한자 대역(對譯)은 ‘체다라(掣多羅), 차다라(差多羅) 흘차달라(紇差怛羅)’ 등인데 이때 음이 단축된 한자음을 수입하여, 그 하반어음인 ‘다라(多羅) 달라(怛羅)’만을 취하여 이것이 ‘뎔’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주장이다. Ksetra(크쉐트라)의 ks가 공연히 단축되었다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그 하반음인 ‘다라(多羅) 달라(怛羅)’가 변하여 ‘뎔’이 되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더구나 차다라(差多羅)는 ‘땅’이란 뜻의 kṣetra가 아니라, ‘양산(陽傘)’이란 의미인 차트라(Chattra)의 음역이라는 것이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건축역사연구’ 제32권에 실은 논문 ‘사찰 찰(刹)의 어원 규명과 불교계 통용 오류 검증’에서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사찰(寺刹)의 ‘찰’ 표기에 명백한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사찰의 찰은 찰다라(刹多羅)에서 비롯됐고 이는 ‘양산(陽傘)’이란 의미의 차트라(Chattra) 음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사전이 사찰을 표기할 때 ‘땅’이란 뜻의 크쉐트라(kṣetra)로 번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다 도쿠노의 ‘불교대사전’(1917), 오기하라 운나이의 ‘범한대역불교사전’(1915), 히라카와 아키라의 ‘불교한범대사전’(1997) 등 사전에 따르면, 찰은 범어 kṣetra의 번역어로 전(田)·토전(土田)·처(處)의 뜻이다. 음사어로는 찰다라(刹多羅)·차다라(差多羅)·체다라(掣多羅)·찰마(刹摩)·흘차달라(紇差怛羅)·찰마(刹摩)이다. 번역어로는 ‘전(田)·토전(土田)·처(處)·불국토’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찰(刹)의 어원이 국토나 땅인 크쉐트라(kṣetra)가 아니라 양산을 뜻하는 차트라(Chattra)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도에서 양산은 왕에게 씌워주는 존엄을 나타낸다. 이에 아쇼카왕이 조성한 산치대탑 꼭대기에도 양산을 씌워 붓다에 대한 존엄을 드러냈다. 맨 꼭대기 양산 ‘찰’이 점차 탑 전체를 확대 지칭하게 되면서 찰은 곧 탑이 됐다. 5세기까지 절은 탑사(塔寺)로 불렸고 탑찰을 거쳐 사찰로 변했다. 이 교수는 “초기 북위까지는 낮은 승원을 의미하는 사(寺)와 높이 솟은 공경의 탑(塔)으로 구성돼 ‘탑사(塔寺)’로 불렸다. 어순만 바꾸면 현재 우리가 쓰는 사찰(寺刹)이 된다”고 했다.
아래 스투파(탑)의 사진을 보면 맨꼭대기의 차트라(CHHATRA)가 양산(UMBRELLA)으로 씌어 있다. 즉 차트라는 양산이란 뜻이다. 그리고 스투파는 부처님의 유골을 묻은 곳이다.
그렇다면 차트라(양산)의 음사인 ‘찰(刹)’이 어쩌다 크쉐트라(땅)라는 단어로 오기됐을까. 그는 “한국 불교계를 지배하던 ‘찰’의 오류는 일본 근대 선학자들의 사전이 원인이었고 이는 마치 고구마 뿌리 캐듯 당·송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긴 기간의 오류였다”고 했다.
6세기 북위(北魏)시대까지 찰(刹)은 음사어 찰다라(양산)로 표기돼 왔다. 하지만 7세기 당(唐)에 접어들며 현응(玄應) 스님이 경전 용어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던 ‘일체경음의’에 찰(刹)을 토(土)·국(國)으로 번역하고, 이를 차다라(差多羅)라고 잘못 기재하면서 오기가 시작됐다. 여기에 송나라 법운(法雲) 스님의 ‘번역명의집’(1143)의 오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여전히 동아시아 불교계에는 양산 탑을 의미하는 사찰의 찰을 불토(佛土)나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사찰에 불국토 의미를 담고 싶다면 찰(刹)을 과감히 덜어내고 체다라(掣多羅)의 ‘체(掣)’나 흘차다라(紇差多羅)의 ‘흘’로 바꾸는 것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 ‘절[寺]’이란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절은 ‘절[拜]’에서 왔다고 생각된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 우리말에 ‘절집’이란 단어가 있다. 이는 ‘절의 집’ 곧 ‘절하는 집’이란 뜻이다. 절은 부처님께 ‘절하는 집’이다. 우리말에 ‘∼집’이란 말들의 의미를 새겨보면 이들 말은 다 ‘∼하는 집’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 예를 보자.
꽃집:꽃을 파는 집
잔치집:잔치를 하는 집
도갓집:도가(都家)로 하는 집
살림집:살림을 하는 집
오막살이집:오두막에서 살림을 하는 집
기와집:기와로 인 집
술집:술을 하거나 파는 집
음식집:음식을 파는 집
문집:문을 만드는 집
밥집:밥을 파는 집
달집:달을 맞이하는 집
닭집:닭을 기르는 집
이와 같이 집이란 말이 붙은 합성어는 죄다 ‘무엇을 하는 집’이다. ‘절집’은 당연히 ‘절을 하는 집’이다. ‘절집’을 뒤집어 그 의미를 유추해 볼 때 절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절은 절하는 집이다. 찰(刹)은 그냥 한자어 ‘찰’일 뿐이다. 그 ‘찰’이 ‘뎔’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한자어 사찰은 사찰일 뿐이다. 언어학상으로 사찰은 사찰일 뿐 우리말 ‘절’이 아니다.
첫댓글 마치 이기문 교수의 '신라어 복동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읽는 듯하였습니다. 福童의 '복'은 우리말 '아이'라는 뜻이고, '동'은 한자어로 뜻을 나타내기 위해 가져온 말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 말이 아이들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로 고착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절하는 집이라서 '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