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의 배후 - 문례봉,용천봉,어비산
조개골에서 바라본 용문봉
더 올라갈 수 없는 암벽에 부닥쳐 되돌아온다.
산 밑에 돌아와서 잘 했으면 능히 돌파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잘못 판단해서 공연히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분통이 터지고 만다. 그러면서 즉시 다시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힌다.
―― 장 코스트(Jean Coste, 1904~1926, 프랑스 등반가), 『알피니스트의 마음』
▶ 산행일시 : 2019년 11월 24일(일), 흐림, 오후에는 가랑비
▶ 산행인원 : 3명
▶ 산행시간 : 8시간 18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4.7㎞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용문역으로 가서, 버스 타고 용문사 입구로 감
▶ 올 때 : 유명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버스 타고 서울 잠실에 옴(요금 4,800원)
▶ 구간별 시간
07 : 00 - 상봉역
08 : 16 ~ 08 : 35 - 용문역
08 : 52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산행시작
09 : 12 - 유격훈련장
09 : 48 - Y자 계곡, 왼쪽으로 감
10 : 50 - 718m봉, 휴식
11 : 50 ~ 12 : 34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2.5m)
13 : 00 - 798.5m봉,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봉미산 쪽으로 감
13 : 18 - △728.8m봉
13 : 27 - 709.8m봉, 가랑비 내리기 시작함
13 : 43 - 안부, 임도
14 : 26 - 용천봉(龍川峰, △677.4m)
15 : 00 - 어비계곡, 임도
15 : 57 - 어비산(魚飛山, △827.0m)
17 : 02 - 국립유명산자연휴양림
17 : 10 - 국립유명산자연휴양림 입구, 산행종료
18 : 52 - 잠실, 저녁, 해산
1-1. 산행지도(문례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용천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3. 산행지도(어비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 산행 고도표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2.5m)
‘용문산의 배후’라고 산행기 제목을 정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용문산 뒤쪽
산들이나 용문산 뒷산들, 용문산 뒤에 있는 산들 등이 일감으로 떠올랐으나 너무 밋밋하고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용문산의 배후’라고 하자니 ‘배후’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
가 마음에 걸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배후’를 (1) 등의 뒤, (2) 어떤 대상이나
대오의 뒤쪽, (3) 어떤 일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3)의 설명인 ‘배후’에는 정치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배후의 세력이니 배후의 인물이니 하는
쓰임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우선인 (1)과 (2)의 설명을 사서 썼다. 또 ‘용문산 배
후’라고 할까 아니면 조사 ‘의’를 넣어 ‘용문산의 배후’라고 할까 고심했다. 전자는 간결하지
만 하나의 산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후자는 여러 개의 산이라는 은근한 느낌이 들어
이를 택했다. 어쩌면 장고치고 묘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산행은 17년 전인 2002년 9월 15일(일)에 약간 맛을 보았다. 그때는 용문봉에서 문례
봉, 용천봉, 어비산으로 진행했다. 그 이전인 2002년 4월 11일(목)에 킬문 님이 단풍 님과
둘이 갔던 용문봉에서 마유산(유명산)까지의 산행을 나도 가보려고 했다. 나 혼자 갔다. 공
평동 중앙지도사에 들러 주민등록번호 적고 1/25,000의 지형도를 구입하여 미리 도상산행
도 하였다.
킬문 님과 단풍 님은 거기를 7시간 49분에 주파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나는 어설픈 독도로
서너 차례 길을 헤맨 끝에 어비산을 내린 유명계곡에서 중포했다. 그것도 9시간이나 걸렸다.
오늘은 출발시간이 늦었고 해가 짧은 겨울철이라 문례봉을 가장 빠른 길인 조개골로 올라 마
유산까지 가려고 한다. 아울러 문례봉의 그간 식생상태를 살펴보려고 한다.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에 내리자마자 미로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유격훈련장이다. 철조망 문
이 굳게 잠겼다. 전에는 철조망 문과 땅바닥 사이에 틈이 있어 포복하여 그리 어렵지 않게 드
나들었는데, 철골을 덧대어 통과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군대시절 유격훈련의 철조망 통
과다. 납작하니 누워 등밀이 하여 들어간다. 유격훈련장 연병장 지나고 임도에 들어 산행복
장을 가다듬는다.
조개골.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조개골’이라고 하기에 여태 ‘조계골’의 오기인 줄로만
알았다. 한자는 ‘鳥溪’일 터이고. 또한 골 바로 오른쪽의 용조봉은 ‘龍鳥峰’이겠고. 그런데 내
가 잘못 알았다. 조개골이 맞다. 조씨(曺氏)가 사는 마을로 일명 ‘조계곡(曺溪谷)’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용조봉도 조씨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龍鳥峰’이 아니라 ‘龍曺峰’이다.
3. 용문 가는 길에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백운봉
4.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문산
5. 조개골에서 바라본 용문봉
6. 조개골
조개골 임도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놓아서인지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다. 너덜길이다. 계류
는 며칠 전 비가 와서 큰물이 흐른다. 계류 건너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물이끼 낀 너덜 징
검다리를 일일이 발로 만져보아 미끄러운 상태를 확인한 연후에 딛고 건넌다. 곳곳 와폭과
여울은 우당탕 소리 내지르며 흐른다. 너덜 길 가다말고 때 아닌 물 구경 한다.
조개골은 깊은 협곡이다. 왼쪽은 용문봉이 날카롭게 솟았고 오른쪽은 용조봉이 그에 뒤질세
라 험준한 암벽과 암릉, 암봉을 드러낸다. 첫 번째 Y자 갈림길. 계류 건너 왼쪽 길로 간다. 흐
릿한 인적이 앞서간다. 아마 문례재로 이어질 듯. 돌길 축축하니 젖은 낙엽 헤치며 오른다.
두 번째로 만나는 Y자 골짜기에서도 왼쪽으로 들어서고 용문산의 숨은 폭포인 쌍폭을 처음
대한다.
우리 가는 길이 언제 어디 순탄한 적이 있었던가. 문례재로 돌아가느니 문례봉을 직등하자고
계류 건너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널찍하고 평평한 터가 나오고 주변은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둘렀다. 암자가 있었던가 보다. 배산임수 산자락에는 아마 줄을 맞춰 조림했을 지금은 거목
인 잣나무 숲이 방풍하고 볕 잘 드는 남향이다. 그 뒤의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일보전진하려다 이보후퇴를 반복하며 기어오른다. 발밑에 쌓인 깊은 낙엽을 쓸어 발 디딜 곳
을 마련해가며 오른다. 파출소를 피하려다 경찰서를 만난 격이다. 산행에 왕도가 있을까마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용문봉을 넘을 것을 후회막급이다. 고도 280m를 게거품 물고 냅
다 올려쳐 718m봉이다. 한 그루 노송 그늘 아래에서 휴식한다.
잠시 가파름이 누그러진다. 원추리 동산이더라고 한다. 더산 님이 지난 봄날에 여기 왔을 때
갓 나온 원추리가 하도 흔전하여 솎아서 나물로 해먹었는데 상큼하고 매끈한 것이 영락없이
파를 데쳐 무쳐놓은 맛이더라고 한다. 이 겨울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입
맛만 다실뿐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몇 번 미끄러져 엎어지고 나서 낙엽 쓸며 오른다.
한 번은 붙들 잡목이 마땅치 않아 미끄러지며 뒤로 5m나 굴렀다. 그 자리에 대물급 더덕이
있다. 그냥 가면 어떡하느냐, 부디 나를 데리고 가시라 내 발길을 붙들고 통사정하는 것 같
다. 모른 체 할 수 없는 일이다. 기꺼이 데리고 간다. 가까스로 한강기맥 길에 올라서고 헬기
장 지나 문례봉 정상이다. 지난주 문례봉은 비 뿌리고 스산했는데 오늘은 따스한 봄날이다.
양광 가득한 정상 공터에 둘러 앉아 점심밥 먹는다.
7. 조개골
8. 조개골
9. 조개골
10. 문례봉에서 바라본 용문산
▶ 용천봉(龍川峰6, 77.4m)
문례봉에서 북진하여 내리는 길. 되게 가파르다. 낙엽과 사태 져서 내린다. 지난주에 길을 잘
못 든 데를 예의 살펴서 왼쪽으로 직각방향 꺾는다. 한 차례 더 뚝 떨어져 내렸다가 그 반동
을 살려 대번에 오른다. 798.5m봉. ┣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은 봉미산으로 간다. 우리
는 직진한다. 당분간은 부드러운 숲속 길이다. 봉미산도 수렴에 가렸고 용문산도 발 촘촘한
수렴에 가렸다.
줄달음한다. 여러 나지막한 봉우리 넘고 넘는다. 돌이 발에 차였나 했더니 삼각점이다.
△728.8m봉이다. 낙엽 쓸고 판독한 삼각점은 ‘442 재설, 76.8 건설부’이다. 금세 사방이 어
두워지고 비 뿌린다. 갈잎 낙엽이 후드득 소리 내며 먼저 알아챈다. 원경은 물론 근경도 흐릿
하다. 굳이 오룩스 맵 지형도를 들여다 볼 필요조차 없이 멀리는 보이는 첨봉이 어비산인 줄
알았다. 용천봉은 이미 지나쳤다고 착각했다.
산간고개 임도가 지나는 안부로 내리고 곧바로 씩씩대며 오른다. 비가 쉬는 틈에 우리도 잠
깐 쉰다. 이때만 해도 마유산을 오르자는 우리들의 의기는 양양했다. 맨 앞장 선 더산 님이
줄곧 견인하여 오른다. 지난주 산행 때 차디찬 비바람에 달달 떠는 호된 영금을 보았기에 오
늘은 준비를 단단히 했다. 바지도 두툼한 겨울용 바지를 입었고 호주머니에는 핫팩을 까서
넣었다.
그러니 비보다는 땀으로 젖을 수밖에. 눈 못 뜨게 비지땀 쏟아 어비산이다. 아니 용천봉이다.
어비산에는 분명 너른 공터에 이정표와 정상 표지석이 있는데 여기는 숲속 좁다란 공터다.
이정표도 정상 표지석도 보이지 않는다. 어리둥절하여 사방 둘러보니 누군가 ‘용천봉’이라
쓴 표지판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11. 도일봉
12. 중원산
13. 문례봉 정상에서, 대물 퍼포먼스
15. 문례봉(폭산, 천사봉) 정상에서
▶ 어비산(魚飛山, △827.0m)
용천봉에서 지도의 군계(양평군, 가평군)인 2점 쇄선을 따라 서진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
여 잘못 가면 어비계곡 기슭의 깊은 절벽에 막히는 수가 있다. 더산 님의 예리한 눈썰미는 정
상에서 북진할 듯 살짝 돌아서 서진하는 군계 희미한 인적을 찾아낸다. 낙엽 미끄럼 타며 쭉
쭉 내린다. 내리막이 잠시 주춤한 577.0m봉에서 왼쪽 넙데데한 사면으로 방향 튼다.
어비산 또한 마유산으로 착각했다. 반공을 가린 준봉으로 보이기에 마유산이 틀림없다고 여
겼다. 그 뒤 삐쭉 솟은 봉우리는 중미산이겠고. 셋이 다 그렇게 보았다. 그렇다면 어비산은
어디로 갔을까? 용천봉에서 어비산을 거치지 않고 마유산을 갈 수 있나? 우리가 방금 전에
용천봉을 내릴 때 혹시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 지도를 다시 찬찬이 들여다보자 어비산
이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827.0m봉이 어비산이다. 그 너머 계곡이 유명계곡이고.
급전직하 내리쏟는다. 발동작 제동하느라 땀난다. 깊은 절벽과 맞닥뜨린다. 왼쪽 골짜기가
더러 잡목이 보여 떨어지더라도 걸릴 수 있기에 낫다. 발밑 부슬거리는 잡석에 쓸려 내린다.
어비계곡. 대천이다. 검은 암반 훑는 계류를 징검다리 위아래로 고르고 골라 건넌다. 얼레,
너덜 지나 임도로 올라서려는데 철조망이 길게 둘러쳐 있다.
별 수 없어 타고 넘으려고 다가가자 누군가 철조망 몇 가닥을 구부려서 약간의 틈을 낸 게 보
인다. 운이 좋았다. 임도로 올라서고 곧장 너덜 사면 더듬어 어비산을 오른다. 어비계곡 지계
곡의 사방댐 둑을 지나고 임도 같은 너른 등로와 만난다. 이 너른 등로는 계속해서 지계곡을
거슬러 오르고 오른쪽 가파른 사면에 등산로 유도선인 듯 하얀 고정밧줄이 보인다.
이제 어비산 정상까지 고도 450m를 극복해야 한다. 고개 들어 공제선을 올려다보기 겁난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추적거린다. 어깨에 멘 카메라는 벗어 배낭에 넣고 행동의 자유를 확
보한다. 그러고 나서 마라토너이기도 한 더산 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가파른 데는 보폭을 짧
게 하고 호흡과 박자 맞춰 꾸준히 오른다. 슬랩이거나 가파를만하면 굵은 고정밧줄이 달려
있다.
밀림인 잣나무 숲 지대를 지나고 사면 비스듬히 질러 오르면 더욱 잘난 능선 길이다. 마지막
피치도 길게 매인 밧줄 붙잡고 오른다. 어비산. 너른 공터 한 가운데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사방 저녁안개에 가렸다. 용문산도 마유산도 캄캄하다. 마유산을 어찌할까? 거리는 이
대로 하산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유산을 내내 붙들었기에 차마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 더산
님을 제발 고정하시라 달랜다.
하산! 북진한다. 길 좋다. 젖은 낙엽이 흩날리도록 지친다. 부엉바위 전망대는 어비산의 최고
의 경점이다. 마유산의 너른 품과 인근의 산세를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절벽 위 너른 암반이
다. 728.0m봉은 한 폭 그림처럼 노송과 어울린 암봉이다. 울창한 잣나무 숲길을 내린다. 산
중 이런 아름다운 길은 미음완보함이 마땅하여 잰걸음을 한껏 늦춘다.
그런데 전에도 길이 이랬던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향착오다. 왼쪽 사면을 대 트래버
스 한다. 어둑한 산길 한 차례 더 길을 잘못 들고 나서 지도에 눈 박고 간다. 440.7m봉을 넘
고 숲 사이로 동네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반갑다. 이윽고 유명산자연휴양림 구내에 들어선
다. 운동장, 잣나무 숲속 야영장 지나고 유명산1교 건너 버스정류장이다. 10분 후에 서울 잠
실 가는 버스가 출발한단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냉수 들이켜 마른 목부터 추기고 땀에 전 웃옷을 갈아입는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
브는 버스 안에서 나눈다. 서울 가는 길. 버스 윈도우 브러시는 빗물 훔치기에 바쁘다.
16. 수렴에 가린 용문산
17. 어비산 정상
18. 어비산 하산 길 부엉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유산(유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