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숭미 극우 길들이기
이경렬 전 외교관
2026. 7. 2
특정 지역 주민에 대한 비난의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비틀린 생각에 대한 분석이요 처방이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압구정동은 국민의힘 후보 오세훈에게 84.8%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였다. 서울시 전체 읍면동 중 최고치다. 2022년 선거 때에는 88.7%였다. 압구정동, 도곡동, 대치동 등 강남의 핵심 부촌 라인을 합치더라도 국힘 후보의 득표율은 75%-80%를 상회하는 압도적인 수치다. 서울 전체 평균 득표율과 비교했을 때, 강남구의 보수 정당 지지율은 늘 20-25%p 이상 높은 격차를 유지한다. 이들은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율만 높은 것이 아니라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투표율 내지 결집력을 보인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1899년에 발표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이라는 경제학 고전이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행태와 계급 구조를 비판한 책이다. ‘유한계급’이란 한마디로 놀고먹으며 부를 누리는 상류층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재화를 소비하고,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로 과시적 여가를 누린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타인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는 ‘차별적 명성’(invidious distinction)이다. 남의 질투를 끌어내려는 부단한 몸짓을 뜻하는 말이다.
유한계급은 현재의 경제 구조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보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기득권을 지켜야만 한다. 남들이 그들을 치고 올라서는 순간 ‘차별적 명성’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적 변화나 제도적 혁신에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압구정동 주민들로서는 집값 하락을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이란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자주적인 외교라든가 남북 간의 평화 논의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넘어 적대적이다. 그들의 부를 가능케 한 한미동맹만이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정신적 타성’이다.
숭미 극우세력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권위와 자신을 철저히 동일시한다. 성조기라는 미국의 기호를 공유함으로써 나 역시 우월한 서열에 서 있다는 망상을 즐긴다. 패권국의 ‘자발적인 하인’이 됨으로써 주인국의 권위를 나누어 가지려는 노예적 허영심이다. 유한계급의 정신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들을 서열화하여 ‘차별적 명성’을 얻으려는 그들은 국제사회 역시 철저한 서열로 인식한다. 미국과 서구는 일류 유한계급이고 그 외의 국가나 민족주의 세력은 삼류 야만이다. 한국이 미국의 반열에 오르는 길은 굴종적 숭미동맹뿐이다.
현 체제 기득권의 총아 압구정 숭미 극우 유한계급은 모든 변화를 ‘품위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들에게 탈냉전, 남북 화해, 대등한 한미관계와 같은 변화는 자신들의 정신적 안식처를 뒤흔드는 대재앙이다. 이들은 미국의 패권 그늘 아래 안주하던 과거의 냉전 구조를 영속화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현 구조를 바꾸려는 모든 진보적 시도나 제도적 혁신을 ‘빨갱이들의 폭동’이나 ‘문명을 파괴하는 행위’로 매도하면서 사회의 역사적 진보를 가로막는 정신적 바리케이드 역할을 자임한다. 이들에겐 숭고한 사명감이다.
2030 극우 청년들이 보이는 각자도생과 스펙 만능주의 역시 베블런식 속물성의 비틀린 현대판 진화다. 가족, 사회, 국가에 대한 연대감을 상실한 지 오래다. 오직 ‘강자의 줄에 서는 것’과 ‘내 몸값을 올리는 것’(스펙)만이 생존 전략이다. 약자를 보호한다거나 평등을 추구하는 가치란 무능한 자들의 ‘찌질한’ 논리일 뿐. 이들은 서열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명성과 부를 독식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유한계급적 약육강식 논리를 체화했다. 압구정 주민들처럼 이들의 인식에는 자주도 민족도 없다. 세계의 ‘짱’ 미국과의 숭미동맹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압구정 숭미 극우의 투표성향을 보는 세 개의 관점이 있다. 먼저 마르크스다. 강남 주민들에게 선거는 세금 폭탄을 피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철저한 실리 투쟁의 장이다. 다음은 베블런이다. 우월적인 지위에 선 이들에게 부의 재분배나 복지 확대 같은 진보 진영의 담론은 ‘야만적인 침해’다. 마지막으로 막스 베버다. 강남 주민들은 하나의 공고한 ‘신분 집단’을 형성한다는 얘기다. 요약하면 압구정의 압도적 극우 성향은 재산권을 지키려는 ‘마르크스적 본능’, 남들과 다른 상류층임을 증명하려는 ‘베블런적 과시욕’, 그리고 자신들만의 성채를 유지하려는 ‘베버적 신분 의식’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유한계급이 아닌 숭미 극우세력도 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글로벌 유한계급의 권위를 대리 소비하며, 국내의 기득권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고 진보를 가로막는 정신적 퇴행 집단이다. 이들의 숭미주의는 자신의 실존적 불안감을 강자의 권위에 기대어 보상받으려는 자기비하와 자학의 노예 심리학이다. 물질적 부가 없으면서도 상류층의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마르크스의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자 베블런의 ‘금력적 모방’(pecuniary emulation)이다.
압구정이나 강남의 극우에게 ‘민족 자주’나 ‘역사적 당위성’ 같은 진보 문법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베블런, 마르크스, 베버의 논리를 역이용해 그들의 세계관 안에서 모순을 짚어내야 한다. 첫째, 베블런식 ‘위신’ 프레임이다. “맹목적 종속은 글로벌 삼류의 상징이다”라고 찌르는 것이다. “당신 같은 우아한 상류층이 어떻게 굴종적 숭미주의로 부끄러운 약소국 멘탈리티를 드러내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무조건 상대를 따르는 모방 외교는 명품 짝퉁을 들고 다니는 부끄러움이죠.”
둘째, 마르크스식 ‘실리’ 프레임이다. “미국 올인은 강남 자산을 붕괴시키는 최악의 포트폴리오다”라고 찔러 준다. 강남 주민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토대는 부동산과 주식이다. 이들에겐 자주외교를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한 헤징 전략’이라고 설득할 일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면, 그 보복의 직격탄은 한국 경제가 맞는다고 말이다. “미국의 총알받이를 자처하다가 위기가 오면 선생님의 아파트와 주식 자산이 가장 먼저 폭락합니다. 외교 다변화는 ‘리스크 분산’ 전략입니다.”
셋째, 막스 베버식 ‘합리성’ 프레임이다. 베버의 핵심 개념인 ‘합리성’과 ‘능력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강남 보수층이 가장 신봉하는 “능력과 기여도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국제정치에 적용한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전 세계 군사력 순위 최상위 권에 위치한 초고스펙 국가다. 이런 국가가 외교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거래다. “우리의 국력만큼 미국에 당당하게 요구하고, 국익에 따라 선택하는 외교야말로 실리주의이자 시장 원리에 부합하는 합리적 태도입니다.”
이들과 대화할 때는 ‘정의’, ‘자주’, ‘우리 민족끼리’ 같은 단어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대신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격조”(베블런), “자산 가치 수호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마르크스), “국력 스펙에 걸맞은 합리적 국익 추구”(베버)라는 세련된 ‘우파적’ 언어로 포장해야 하는 것이다. 자주외교를 ‘반미’가 아닌 ‘똑똑하고 계산 빠른 일류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렇게 해서라도 이들을 설득할 필요나 실익이 있는 것일까. 사실은 없다. 하지만 나쁠 것은 없다. 그들의 언어를 빌려 그들의 ‘정신적 타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