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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했던 외식경험
김 선 구
음식문화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인류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른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적응하여 왔기 때문이다. 자연히 음식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고, 먹는 방식이 다르게 발전하였다. 따라서 식사예절도 나라마다 또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독일에 도착하여 한동안은 다른 식습관 때문에 눈치를 봐야했다. 독일인들은 음식이 입속에 들어가면 입술을 꼭 오므려 닫아서 오물오물하다가 삼켰다. 식사 중 음식 씹는 소리를 내면 실례라고 했다. 심하면 ‘돼지하고 함께 밥 먹기 싫다“하고 자리를 피해버린다고 들었다.
식사가 전식(前食), 주식(主食), 후식(後食)으로 나누어 제공되었다. 전식으로 제공되는 수프를 먹고 난 후면 그릇에 붙어있는 잔재까지 빵조각으로 닦아내어 먹는 것을 보았다. 마치 우리나라 절에서 하는 식사예법과 같았다. 절에서 공양할 때 김치 한 조각을 남겼다가 그것을 이용하여 밥그릇을 다 씻어내어 전부 먹던 일이 떠올랐다. 독일 사람들이 밥상머리교육이 철저함을 엿 볼 수 있었다.
주식으로 주어진 고기나 생선음식은 포-크와 나이프로 살코기만 골라먹고 뼈는 그릇에 남겨두고 식사를 끝냈다. 특히 닭고기를 먹을 때면 이런 방식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 좀 거북하게 여겨졌다. 뼈에 붙어있는 고기들을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생선뼈까지 말끔하게 빨아먹고 버리는 우리나라의 식사습성이 훨씬 알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부독일에 위치한 킬 대학에 여장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 대학 산부인과 병원 메틀러 교수가 동독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열리는 학회에 함께 가자고했다. 그녀는 체외수정분야의 저명한 교수였다. 동서독이 통일된 직후여서 나는 학술대회보다는 관광에 더 흥미가 댕겨서 동행키로 하였다. 공산치하에 있던 동독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피상적으로나마 보고 싶어서였다. 킬을 출발하여 함부르크, 베를린을 거쳐 라이프치히에 이르는 긴 여정 속에 철의 장막을 걷어낸 동독의 주변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였다.
라이프치히는 동독에서 베를린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교통의 요지로서 이미 15세기부터 유럽 각국의 거상들이 참여하는 무역박람회가 열려 이름을 떨쳤다. 음악의 거장 바흐의 탄생지이며, 멘델스존, 바그너, 슈만, 리스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활동무대였다. 이들 중 특히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요한 볼프강 괴테였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바이마르에서 정부관료로 활동하다가 그 곳에 묻혔다. 라이프치히에 머무는 동안 그는 불후의 명작인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시내 중심가에 들어서니 화려하게 장식을 한 바로크식 건물이 돋보였다. 옛 증권거래소 건물이다. 그 앞에 버티고 서있는 괴테의 동상이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궂은 날씨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이곳은 쇼핑 몰이 몰려있는 지역이다. 동상 앞에 매들러파사주(Mädler Passage)라는 거대한 상가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 지하에 그 유명한 식당 아우어바흐켈러(Auerbachs Keller)가 있었다. 1525년 창업되었으며, 괴테가 학생시절에 자주 와서 식사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괴테가 영감을 얻어 파우스트 집필하였고, 파우스트 중 한 장면,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이 식당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서있었다. 파우스트로 보이는 조각의 왼쪽 구두가 유난히 빛이 났다. 그것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시로 만졌기 때문이다.
식당은 지하에 있었지만 내부 공간은 넓고 쾌적하였다. 높은 천정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주변 벽들도 소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식당 한편 쪽에는 커다란 맥주통이 진열되어 있고 그 위에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실물크기 인형이 앉아 있었다. 이 역사 깊은 공간에서 우리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함께하기로 초대 받았다.
킬 대학 산부인과 병원과 라이프치히 대학 산부인과 병원은 설립자가 같았기 때문에 친자매처럼 지내왔다. 통일 전에도 서로 방문교류가 이어져 왔다고 했다. 킬 대학 병원멤버들이 학회참석차 내려왔으니 형제의 의리로 초대한 자리였다. 나는 메틀러 교수의 배려로 특별손님으로 참석하였다. 독일인들의 식사초대는 음식의 맛이나 양보다는 장소의 특별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것 같았다. 괴테의 체취와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음식을 주문받았다. 모두 햄과 소시지로 된 요리를 시켰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좀 더 비싼 생선요리를 주문하였다. 커다란 접시에 광어처럼 넓적한 생선 한 마리를 가져왔다. 처음 대하는 요리였다. 조그만 빈 접시가 함께 제공되었다. 순간 나는 빈 접시는 생선뼈를 골라 넣으라고 주는 줄 알았다. 생선 한쪽을 잘라 낸 다음 살을 골라먹고 뼈를 빈 그릇에 넣었다. 일행들이 나의 행동을 보고 무어라고 수근 거렸다. 메틀러 교수가 “생선살을 떼어내어 작은 접시에 옮겨 담은 다음 먹으라.”고 귀띔해 주었다.
이때부터 생선과 사투가 시작되었다. 이 커다란 생선을 어떻데 토막 내야 할지 몰랐다. 나이프와 포ㅡ크로 생선을 건드려 봤지만 등뼈가 세어서 토막 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냥 접시에 놓은 채 한쪽 면 살만 골라먹었다. 반대쪽 살을 먹기 위하여 생선을 뒤집어 보려했지만 너무 커서 포기했다. 모두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나이프고 포ㅡ크고 걷어치우고 손으로 생선뼈를 부러뜨린 다음 입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목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생선 뒤쪽은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식사를 끝냈다. 식당 아가씨가 이상하게 여겼는지 “쉬맥 굿(맛있었어요)?”하고 말을 건 냈다. “야, 당케(그래, 고마워)!” 마지못해 대답하고 식당을 나왔다.
저녁에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베푸는 리셉션에 참석 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만 시립동물원으로 안내 받았다. “냄새나는 동물원에서 만찬행사를 하다니.”하고 의아하게 생각 하였다. 실내에 들어서보니 사방이 유리벽이고 가운데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간이테이블을 몇 개 놓고 만든 임시연회장이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들고 유리벽 쪽으로 가서 기대어 섰다. 음식을 먹다가 뒤돌아보니 팔뚝만한 뱀이 유리로 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바로 내 옆에서 누어있었다. 기겁하여 뒤로 물러섰다. 들여다볼수록 소름이 끼쳤다. 그 곳은 뱀 사육장이었다. 크고 작은 뱀들이 만찬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사람들 취향이 무엇이 길래 이런 곳을 만찬장으로 정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뱀들과 함께한 식사가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여행은 체험을 통하여 배우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여행 중 먹고 자는 것만은 불편이 없어야 좋다. 호기심을 갖고 온 동독의 땅에서 외식 때문에 곤혹스런 신고식을 치렀다. 특히 생선요리 때문에 겪은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옆 사람을 따라 같은 요리를 주문했으면 될 것을 괜히 유난을 떨었다는 자책감도 생겼고, 육지 깊숙한 땅 라이프치히에서 생선요리를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잊어버릴 때도 되었다. 그래도 아내가 튀겨준 광어를 식탁에 올려놓고 젓가락질 할 때면 문득 떠오르는 가십거리로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2016. 04. 20)
첫댓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명언이 생각나네요. 모르면 현지인들과 같은 식사를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의 음식문화와 외식 문화를 체험 할수있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빈틈없고 야무진 사람들만 산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성인들만 산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현장감 넘치는 필체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성격이 대범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시민은 주위 눈치를 보게 마련입니다.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때로는 긴장할 때도 있습니다. 식사예절이 스웨덴, 프랑스에서 더 까다롭고, 이들에 비하면 독일은 촌스러운 편이라 합니다.
좋은 경험하셨네요. 낯설고 재미있고 황당스럽기도 하고...
그 생선 소화시키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귀한 식 습관을 경험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조심스러운 자리에서는 색다른 매뉴를 주문하는 것 보다는 평범하고 먹기 쉬운 음식을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색다른 음식을 주문했다가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새로운 문화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