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31)-맥주 세병 안주 하나
- 문체는 종합이다 -
권대근
문학박사, 중)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
어떤 작가는 줄거리와 구성이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비평가는 인물 형상이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한다고 강조하며, 일부 문장이론가들은 문체야말로 문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서술의 관점, 주제 의식, 작품의 품격 등 특정 요소를 중심에 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어느 한 요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줄거리, 인물, 문체, 관점, 주제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형성한다. 따라서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요소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이 모든 요소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일이다.
문체는 이러한 요소들을 통합하는 중심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문체는 단순히 문장을 꾸미는 기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휘와 구문, 구두법을 비롯하여 작가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표현 방식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문체는 주제와 시각, 그리고 작품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체의 형성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는 어휘의 선택이다. 길고 전문적이며 세련된 어휘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짧고 평이하며 구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글의 분위기와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수필체, 소설체, 논문체가 구분되는 것도 결국 이러한 어휘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어휘 선택과 더불어 단어의 음악성 또한 중요하다. 적절히 배열된 단어들은 일정한 리듬과 장단을 형성하며, 이는 곧 문장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율동은 독자의 호흡과 맞물리며, 글을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문장의 길이와 구조 역시 문체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길고 복잡한 문장은 사유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지만 자칫 난삽해질 위험이 있으며, 짧고 간결한 문장은 명료성과 속도감을 제공하지만 지나치면 단조로워질 수 있다. 이처럼 문장의 길이와 구조는 서로 대비되는 문체를 형성하며, 작가는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이를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문체가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체에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정서에 가장 적합한 표현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방식이 모든 작품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복잡한 내면을 탐구한 윌리엄 포크너의 문체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극단적인 내면의 갈등과 사유를 다루는 인물을 지나치게 단순한 문체로 표현한다면, 그 깊이는 제대로 드러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문체는 내용과 분리된 독립적 요소가 아니라, 내용과 함께 호흡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문체는 문법적 장치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구두법에서 쉼표와 마침표는 단순한 문장 부호가 아니라,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는 장치다. 적절한 쉼표의 사용은 문장에 음악적 흐름을 부여하고, 독자의 읽기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동사의 시제 역시 문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면 현장감과 긴박감을 높일 수 있고, 과거 시제를 사용하면 회상과 성찰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처럼 세밀한 문법적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문체를 완성한다. 문체는 단순한 표현 양식이 아니라 글쓴이의 사고와 감수성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문법적 장치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다루는 습관이 글의 개성과 설득력을 결정짓는다.
글쓰기에서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이들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에만 작품이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문체 또한 다른 요소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문체는 인물, 배경, 사건과 긴밀하게 맞물리며,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술의 관점은 문체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문체는 관점을 규정한다. 화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화법이 달라지고, 그 화법은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전개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물의 사회적 위치와 성격은 그가 처한 상황과 행동을 결정하며, 이러한 요소들이 다시 문체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문장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를 넘어 작가의 인격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매개다. 따라서 글 속에는 작가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이 스며 있어야 한다. 경박하거나 피상적인 표현은 글의 깊이를 약화시키며, 독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수필은 작가 자신의 체험과 내면을 드러내는 장르이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고 절제된 문장이 요구된다. 동시에 수필은 여유와 낭만, 그리고 감각적 섬세함을 함께 지녀야 한다. 문체는 곧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장치이므로, 각자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수필에서는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체, 온화한 정서를 담아내는 유려한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수필은 형식적 제약이 비교적 적은 장르로, 작가의 내면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이 때문에 수필은 본질적으로 고백적 성격을 띤다. 김진섭이 “수필만큼 쓴 사람 자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은 없다”고 한 말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김광섭이 수필을 “진실한 태도로 인생을 관조하는 글”이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필가는 객관적인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담아내지 않을 수 없다. 그 고백 속에는 삶의 진실과 미적 정서가 함께 녹아 있다.
이러한 특성은 표현 기법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수필은 소설처럼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거나, 시처럼 극도로 압축된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정서를 섬세하게 형상화하며,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데 그 미학적 가치가 있다. 수필의 함축성과 여운은 의도적인 미완의 결말이나 상징적 장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독백에서 형성된다. 독자는 그 여백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하며, 작품과 깊이 교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장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의 상상력과 사유를 자극하는 매개체가 된다. 결국 수필의 힘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보다, 작가의 내밀한 성찰과 이를 담아내는 언어의 섬세함에 달려 있다.
한편 유머는 수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머는 글의 긴장을 완화하고, 독자에게 친근감을 제공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통찰을 부드럽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독자들은 지나치게 무겁고 난해한 글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유머는 글의 수용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과 현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유머는 때로 문장의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적절히 배치된 재치 있는 표현은 글의 단조로움을 깨고, 독자의 집중력을 유지하게 만든다. 따라서 수필에서 유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글 전체의 생명력과 읽는 즐거움을 높이는 전략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좋은 글쓰기는 다양한 요소들의 조화 속에서 완성된다. 줄거리와 인물, 문체와 관점, 주제와 정서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될 때, 작품은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살아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언어가 있으며, 문체는 그 언어를 조직하는 핵심 원리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실한 태도와 깊은 성찰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독자에게 오래 남는 수필이 탄생한다.